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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업무평가

평가할 수 없는 것을 평하겠다는 억지

by THE RISING SUN

정부업무는 민간기업과 달리 근본적으로 평가가 불가능하다. 첫째, 기업은 매출, 수익률, 성장률 등으로 평가하지만, 정부는 수익률이 마이너스가 돼도 추진해야 하기 때문에 정량적 평가가 불가능하다. 둘째, 업무의 성과가 행정서비스 수요자의 주관적 만족도로 나타나기 때문에 정성적 평가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민간기업도 소비자만족도 같은 걸 조사하지만, 매출, 수익률, 성장률로 평가는 끝나는 거다. 철저한 시장논리다. 하지만 정부업무는 시장논리와 전혀 무관하다. 셋째, 정부업무는 수익률이 마이너스가 되거나 수요자의 주관적 만족도를 측정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업무들이 대부분이다. 이를테면 거대한 공공조직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인사, 조직, 기획, 예산, 결산 같은 업무들이다.


그런데 한 진보정권에서 굳이 정부업무에 대한 평가를 하겠다고 밀어붙였다. 당시 국정의 화두는 단연 ‘정부혁신’이었다. 지금이나 그때나 공직사회의 고질병은 무사안일, 복지부동이었기에 민간의 성과평가시스템을 도입해 역동적이고, 성과중심적인 조직을 만들겠다는 취지였다.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해 평가를 하고, 각 기관의 성과를 측정해서 그 결과를 장관부터 실무자에 이르기까지 보상과 처우에 반영하겠다는 아이디어는 그렇게 태동했다. 공공이 민간으로부터 벤치마킹한 ‘연봉제’, ‘성과급’ 같은 사안들이 모두 거기서 비롯됐다. 문제의식은 좋았고 방향도 맞았다. 단 취지대로 제도가 운영되고 그 목적이 달성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어떻게 그걸 실현하느냐가 관건이었다.


그렇게 「정부업무평가 기본법」이 제정됐다. 제1조는 “이 법은 정부업무평가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정함으로써 중앙행정기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통합적인 성과관리체제의 구축과 자율적인 평가역량의 강화를 통하여 국정운영의 능률성·효과성 및 책임성을 향상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정부가 일을 잘하고 있는지 평가해서 앞으로 더 잘하도록 하겠다.” 뭐 그런 뜻이다.


당시 추진된 정부업무평가 체계 수립의 기초가 됐던 것이 BSC(균형성과표, Balanced Scorecard)라는 개념이다. BSC는 로버트 캐플란 하버드대학교 교수와 컨설턴트인 데이비드 노튼 박사가 만든 ‘성과 측정 및 전략 실행 도구’다. BSC는 기존의 재무적 지표 중심 성과관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비재무적 지표들까지 도입한 것으로, 재무, 고객, 내부 프로세스, 학습과 성장 등 4가지 측면의 성과지표 체계를 확립하였고, 이를 통해 단기적 성격의 재무적 목표가치와 장기적 목표가치들 간의 조화를 추구하였다. BSC는 당시 민간부문에서 부서, 팀, 개인 등 조직 전체가 기업의 전략에 맞게 전사적(全社的)으로 행동하도록 유도하여 조직의 비전과 전략목표를 실현하는 성과관리 시스템으로 인정받으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다.


우리 정부의 적극적 호응 때문이었는지, 로버트 캐플란 교수는 2004년 한국을 방문했다. 당시 인터뷰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전의 경영혁신 도구들이 지닌 한계를 고쳐보기 위해서 BSC를 만들었다. 사실 70년대 정도까지만 해도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개념’이 통했다. 직원들이 자기 직무만 잘 알고 열심히 일하면 개인의 실력에 상관없이 효율적 조직을 갖출 수 있었다. 그러나 80년대 이후 변화가 빨라지고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는 문제가 달라졌다. 회사 차원의 명확한 전략설정과 그 전략을 제대로 실행하기 위한 방법론의 중요성이 높아졌다. 모든 직원들이 회사의 전략이 무엇인지를 알고 자신의 역량을 거기에 맞추려는 ‘전략집중형 조직(Strategy Focused Organization)’이라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판단했고 그 방법론으로 제시한 것이 바로 BSC다.”


“당시 직원들의 성과를 높이고 측정하는 시스템은 주로 재무시스템이 중심이었다. 그러나 재무적인 관점만으로는 고객과의 관계, 연구개발(R&D), 직원들의 교육 및 동기부여 등 무형자산을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재무시스템의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BSC를 제시한 것이다. 기업이든 비영리기관이든, 경영이란 기본적으로 측정할 잣대가 있어야 한다. 측정이 안 되면 관리할 수 없고 관리가 안 되면 발전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외부적 변화를 제대로 읽고 그 변화에서 앞서가기 위한 전략적 목표를 찾는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이를 위해선 전략담당부서(Office of Strategic Management)를 두고 전략을 찾고 전사적으로 그 전략을 실행하는 방법론을 모색해야 한다.”


로버트 캐플란 교수의 주장에 동의한다. 특히 “기업이든 비영리기관이든, 경영이란 기본적으로 측정할 잣대가 있어야 한다. 측정이 안 되면 관리할 수 없고 관리가 안 되면 발전의 여지가 없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또한 “재무적 지표를 통한 유형의 자산에 한정된 평가는 한계가 있으니, 비재무적 지표인 고객, 내부 프로세스, 학습과 성장 등과 같은 무형의 자산까지 평가해서, 개인, 팀, 부서 등 조직 전체가 유기적으로 전사적 전략목표와 비전을 달성하게 한다.”는 주장에도 동의한다. 그리고 “정부업무에 대한 성과 평가를 통해 역동적이고, 성과중심적인 조직을 만들어, 국민에게 더 좋은 행정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당시 정부의 취지에도 동의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정부업무 과연 평가할 수 있을지, 그 평가에 로버트 캐플란 교수가 주창한 BSC 적용이 가능한지 살펴보자. 당시 정부의 BSC 도입 발표에 대해 민간의 한 연구기관은 “민간기업에 초점을 두고 있는 성과측정시스템인 BSC를 공공기관에 적용할 때는 공익성 추구와 대국민 서비스 향상을 지향하는 공공기관의 특성을 고려해 공공부문의 평가목표 및 각 관점별 측정지표의 수정 및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완곡하게 표현했지만 BSC는 민간용 성과관리시스템으로 사실상 공공부문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었다.


또한 한 정부연구기관은 “성과관리제도가 제대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성과평가에서 성과관리로의 전환’, ‘변화관리 차원의 접근’, ‘성과관리를 전략 실행도구로 인식’, ‘BSC를 보완할 수 있는 관리방안 도입’, ‘BSC와 예산 및 인사의 연계’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는데, 정부업무는 근본적으로 수치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평가’가 아닌 ‘관리’로 전환해야 하고, 그나마 계량화가 가능한 예산, 인사 등과 연계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정부, 민간 연구기관 공히 우리 정부의 성과를 평가하고 관리하는 데 로버트 캐플란 교수의 BSC를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입장인데, 도입 결과 발생한 문제들을 살펴보자. 첫째, BSC는 재무적 지표에 의한 평가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비재무적 지표까지 성과관리에 포함시킨 방식이다. 그런데 정부는 재무적 지표에 의한 평가도 불가능한 조직이다. 1단계도 맞지 않는 분야에 2단계를 강제로 끼워 넣는 형국이다. 그러다 보니 2단계에 해당하는 고객, 내부 프로세스, 학습과 성장 같은 비재무적 항목들을 도출할 수는 있지만 1단계에 해당하는 수치적 평가와 수요자의 주관적 반응에 대한 계량화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2단계 평가는 따로 놀면서 연계가 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둘째, 민간에서 성공한 경영혁신 모델에 큰 감명을 받은 최고 권력자가 정부혁신을 주창하며 지시한 후 국정과제가 되고, 법이 만들어지다 보니, 조직과 인력이 마련되고, 예산이 투입되면서 엄청난 비효율과 낭비가 발생했다. 정부업무 전반에 대한 평과와 관리, 각 기관별 업무에 대한 평가와 관리, 그리고 기관 내 부서와 개인에 대한 평과와 관리까지 실시하려다 보니 실제로 하나의 기관에 해당하는 인력과 예산이 소요됐다. 다시 말하지만 이 모든 인력과 예산을 투입해서 정부업무에 대한 실질적 평가가 이뤄지고 발전이 된다면 얼마가 투입이 되든 추진해야 한다. 그런데 아무런 효과가 없는, 단지 업무를 위한 업무의 증가에 불과하다는 게 문제다.


셋째 ‘국정과제의 탄생’, ‘세금에 대하여’, ‘지방자치제도’ 등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을 강제로 추진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괴리가 발생하고, 그 틈을 파고드는 장난질이 등장한다. 아무런 평가 기능이 없는 평가체계는 단순히 상급자들에게 하급자들을 장악할 수단 하나를 추가해 주었을 뿐이다. 앞서 정부연구기관은 정부에 BSC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성과평가에서 성과관리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평가가 안 되기 때문에 관리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뜻이다. 관리는 장관, 국장, 과장 등 인사권을 쥔 자들의 영역이고, 지극히 주관의 영역이다. 평가대상자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평가 결과는 당사자들의 불만과 무력감, 조직 내 위화감과 불화를 낳을 뿐이다.


BSC를 근본원리로 하는 정부업무평가체계가 수립된 이후 20여 년이 흘렀고, 이제는 중앙행정기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 공공부문 전반에 자리를 잡았다.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 효과가 있다거나 성과를 내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문제의식도 반발도 다 사라지고 어쩔 수 없이 타성에 젖어 평가 절차를 진행하는 포기한 상태라는 뜻이다. 업무의 성과를 제대로 측정할 수 없는, 그래서 업무의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평가가 진행되고, 그 결과에 따라 성과급이 결정되며, 그 성과급이 연봉에 누적 반영된다. 어떻게든 좋은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실제 업무 성과와는 전혀 무관한 온갖 설계와 작전이 동원되고, 그걸 하느라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할 시간과 에너지는 다 소진된다.


앞서 로버트 캐플란 교수의 “기업이든 비영리기관이든, 경영이란 기본적으로 측정할 잣대가 있어야 한다. 측정이 안 되면 관리할 수 없고 관리가 안 되면 발전의 여지가 없다.”는 주장에 동의를 표한 바 있다. 정부에도 해당되는 얘기다. 측정해야 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20여 년 전 성과 평가와 관리를 통해 정부의 역량을 높이겠다는 진보정권의 취지도 맞다. 그러나 방법이 틀렸다. 민간의 BSC는 정부에 적용될 수 없다. 잘못된 평가체계는 측정, 관리, 발전의 선순환을 도출하기는커녕 역량을 잠식하다가 결국은 조직을 망가뜨릴 뿐이다. 이제는 정부업무의 성격에 부합하는 평가체계가 필요하다. 그런 평가체계를 수립해서 제대로 된 성과관리를 하고, 발전하는 정부를 만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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