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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만사가 인사다

인사가 만사가 되는 나라로

by THERISINGSUN Mar 09. 2025

제나라 선왕(宣王)이 물었다. “어떻게 하면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습니까?” 맹자가 답했다. “어진 인재를 등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왕은 어진 인재를 가까이하고 간신을 멀리해야 합니다. 어진 인재를 잘 등용하면 태평성대를 이룰 수 있지만 신하를 잘못 면 나라가 혼란에 빠집니다.”


선왕이 다시 물었다. “인재를 어떻게 알아볼 수 있습니까?” 맹자가 답했다. “왕이 신하를 가까이하고 그들의 말과 행동을 직접 살펴야 합니다. 간사한 자들이 중간에서 농간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진정한 어진 인재는 백성들 사이에서도 명성이 높기 때문에 백성들이 존경하는 사람을 등용하면 나라가 평안해집니다. 그리고 작은 직책을 맡겨보고, 어떻게 수행하는지 살펴서 성과가 좋으면 더 큰 일을 맡길 수 있습니다.” <맹자> 양혜왕(梁惠王)편과 공손추(公孫丑)편에 나오는 제나라 선왕과 맹자의 인재(人材)에 대한 대화다.


인재는 모든 자리에 필요하지만, 대한민국에서 특히 인재 등용이 중요한 기관은 어디일까. 검찰이다. 검찰은 수사를 총괄하는데, 수사는 나라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의 종착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사는 그 사건들과 연관된 자들의 입을 막고, 손발을 묶고, 가둘 수도 있다. 또한 수사는 보안을 이유로 그 과정을 공개하지 않고,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도 공개하지 않는다. 어떤 사건은 바로 착수하고 또 어떤 사건은 몇 년씩 캐비닛에 넣어두기도 한다. 역시 그 이유도 밝히지 않지만, 어느 누구도 문제를 삼지 못하고, 바로잡지도 못한다. 대한민국의 모든 사건들은 검찰로 모이는데, 모든 사건들이 어떻게 처리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검찰은 모든 억울함의 발원지가 될 수도 있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다. 사람의 일이 곧 모든 일이라는 뜻이다. 모든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니 일을 잘되게 하려면 사람을 잘 쓰라는 뜻이다. 그만큼 인사가 어려운 일이라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대한민국에서는 만사가 인사다. 모든 일이 인사권(人事權)으로 귀결된다. ㉠누군가가 ㉡무엇을 ㉢어떻게 했을 경우, 그건 Ⓐ그를 그 자리에 앉힌 자, Ⓑ그가 가고 싶은 자리, Ⓒ그에게 그 자리를 줄 수 있는 자와 관련이 있다.


㉠특수부 검사가 ㉡기업인의 횡령사건을 ㉢덮었다. 그 이유는 첫째, 자신을 특수부 에이스 검사로 키워준 Ⓐ검사장의 지시사항이기 때문이다. 둘째, 그는 이번 정기인사에서 Ⓑ부장 승진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승진인사의 결정권을 가진 Ⓒ법무부장관의 뜻을 거스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검사장과 법무부장관은 다시 어떤 자리, 그 자리에 대한 인사권을 가진 자와 연결되어 있다. 대한민국에서 만사는 인사다.


만약 특수부가 순수하게 검사의 능력과 적성에 따라 발령 나는 곳이어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필요가 없다면, 만약 Ⓑ승진은 순수하게 검사의 능력과 성과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으로, 인사권이 법무부장관에게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단지 법률상의 권한일 뿐이고, Ⓒ승진, 전보 등 제반 인사가 공정하고 투명한 시스템에 의해 이루어진다면, 그랬다면 ㉠특수부 검사는 ㉡기업인의 횡령사건을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했을 것이다. 누구에게 보은을 하고, 승진을 하고, 승진을 시켜줄 권한을 가진 자에게 잘 보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만사는 법과 원칙이 될 것이다.


한발 더 나가보자. 대한민국에서 검사라는 자리가 갖는 상징성은 두 가지다. 정의와 권력이다. 검사가 되려는 자는 사회정의를 실현하고 싶은 의도를 가진 자이거나, 권력을 가지고 싶은 자, 즉 검사라는 자리를 정치로 올라가는 사다리로 여기는 자이다. 후자는 정치를 추구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모든 사건들을 정치적으로 처리할 것이고, 자신의 궁극적 목표인 정치로 올라가는 데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처리할 것이다. 본질은 사건의 처리가 아니고, 사건을 이용해서 어떻게 정치를 할 것이냐가 다. 자리가 갖는 본질 자체가 추구하는 가치가 될 때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모든 문제는 자리가, 다른 것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전락했을 때 발생한다. 만약 검사였던 자는 절대 정치를 할 수 없도록 제도를 만들면 어떻게 될까.


검사가 사건을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해 사회정의를 구현하고자 할 때는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모든 문제는 사건을 정치적으로 처리해서 정치로 올라가는 수단으로 이용하려 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아무리 “검사는 법과 원칙을 따라야 하고 정치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외쳐봐야 소용이 없다. 따라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정의를 실현하는 검사라는 탈을 뒤집어쓰고 정치를 하는 일이 더 이상은 일어나지 않도록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이다.


제도의 핵심은 이렇다. 검사는 정년을 보장한다. 실력이 뛰어난 검사는 정년 이후에도 임금피크제를 적용받으며 1년 단위 계약직으로 계속 일할 수 있다. 퇴직 후에는 재취업을 할 수 있으나 직업으로서의 정치는 금지된다. 단 검사 임용 후 3년 이내에 퇴직할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정의 실현이라는 검사의 본질을 추구하는 자들만 검사가 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검사의 임용 단계에서 정치성을 배제했다면 다음은 검사 인사에서 정치성을 배제해야 한다. 누구에게 보은을 하고, 승진을 하고, 승진을 시켜줄 권한을 가진 자에게 잘 보일 필요가 없게 만들어야, 사건이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될 것이기 때문이다. 먼저 대통령, 법무부장관, 검찰총장으로 이어지는 인사권의 사슬을 끊어야 한다. 법무부장관은 대통령이 자신의 국정철학에 맞는 자를 선택하겠지만, 검찰총장의 인사에 대해서는 어떠한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현재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가 검찰 독립성 강화를 목적으로 도입되어 운영되고 있지만, 대한민국의 합의제기구들이 얼마나 허울뿐인지는 ‘합의제의 죽음’에서 밝힌 바 있다. 검찰총장과 정치의 사슬을 끊지 못하면, 검사장도, 검사도 정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정치의 사슬을 끊어내고, 평생 정의 실현만을 추구한 검사, 단 한 번도 정치적이지 않았던 검사, 대한민국에서 제일 좋은 검사를 검찰총장으로 뽑는 유일한 방법이 있다. 다시 <맹자>의 선왕과 맹자의 대화로 돌아가 보자. 선왕이 “인재를 어떻게 알아볼 수 있습니까?”하고 묻자, 맹자는 이렇게 답했다. “①왕이 신하를 가까이하며 그들의 말 행동을 직접 살펴야 합니다. 간사한 자들이 중간에서 농간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②진정한 어진 인재는 백성들 사이에서도 명성이 높기 때문에 백성들이 존경하는 사람을 등용하면 나라가 평안해집니다. 그리고 ③작은 직책을 맡겨보고, 어떻게 수행하는지 살펴서 성과가 좋으면 더 큰 일을 맡길 수 있습니다.”


①검사를 가까이하며 직접 말과 행동을 살필 수 있는 들은 누구인가. ②검사 어짊과 명성을 익히  수 있는 들은 누구인가. ③검사가 법과 원칙에 따라 사건을 처리했는지, 얼마나 성과를 냈는지 가장 잘 아는 이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바로 그 검사가 평생 함께해 온 검찰의 구성원들이다. 그의 상사, 동료, 부하들이다. 특정인 한 사람 또는 친분이 있는 몇 사람이 아닌, 검사인 그를 알고 경험한 모든 이들, 집단지성이다.


상사, 동료, 부하 등 모든 조직의 구성원들이 참여하는 평가를 다면평가라고 한다. ‘성과급’에서 한 부서의 구성원 12명으로 진행했던 다면평가 실험의 결과를 밝힌 바 있다. 단 12명이었지만 대상자의 업무성과에 대한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평가가 결과가 나왔었다. 또한 한 중앙행정기관 오랫동안 실시하고 있는 ‘베스트 상사와 워스트 상사 투표’도 다면평가의 정확도를 증명하고 있다. 투표는 리더십, 능력, 소통, 인격 등의 평가항목을 중심으로 진행되는데, 공식적으로 공개된 ‘베스트 상사’의 리스트와 비공식적으로 공유되는 ‘워스트 상사’의 리스트는 언제나 대다수 직원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투표의 전통은 2004년에 시작되어 20년 이상 이어져 내려오고 있고 최근 다른 기관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한편 30년 이상 공직에 복무한 후 정년퇴직한 시니어강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항으로 후배 공직자들에게 강조하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공직사회에는 비밀이 없다. 마치 벌거벗고 유리 상자 안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자신 모든 것을 상사, 동료, 부하들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정확하게 맞는다. 둘째, 절대 적을 만들지 마라.


공직사회에서, 맹자가 제시한 ‘가까이 있으면서 직접 말과 행동을 살피고,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성과를 냈는지 가장 잘 알면서, 그 명성을 익히 잘 알아 인정하고 때로는 존경할 수 있는그렇게 인재를 정확하게 알아보는 왕이자 백성은 누구인가. 앞서 예를 든 세 가지 사례들에서 알 수 있듯이, 1년 365일을 옆에서 지켜보며 함께 생활한, 그리고 평판을 형성하는 상사, 동료, 부하들이다. 특정 개인이나 그룹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이 축적되어 독단, 편견, 오해, 담합, 포섭 같은 오류들이 보정된 진실에 수렴하는 전체다. 다면평가는 수치화, 계량화가 불가능한 공공부문의 평가에서 특히 효과를 발휘한다. 평가대상자 어떤 일을 하는지, 그 일이 국가와 국민을 위한 일인지, 성과가 어떠했는지 등 업무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얼마나 모범적인지, 헌신적인지 등 인성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측정해 내는 것이다.


다만, 검찰총장 같은 엄중한 자리의 경우 인기투표처럼 전 직원이 참여하는 단순 투표만으로 선정하기보다는, 현재의 후보자 추천절차처럼 우리 사회 각계각층의 원로들의 의견 반영하고, 일단 후보자 풀을 만 후 검증 등을 거쳐 결선투표를 진행하는 방식도 적용할 수 있 것이다. 또한 공공부문 전반으로 확대할 경우에도, 그간 다면평가의 평가 오류를 방지하기 위한 많은 연구와 실증이 진행됐고 상황별 장점과 단점도 도출된 바 있으므로 특이한 분포를 보이는 최고 최저 점수 제외, 대상자와의 근무 경험에 따른 평가 비중 차등 적용 등 구체적 방안은 보다 면밀한 검토와 설계를 거칠 필요가 있다. 핵심은 대상자를 가장 잘 아는 상사, 동료, 부하들의 집단적 평가를 반영한다는 데 있고, 이러한 방식은 합의제, 다수결 등을 근본 원리로 하는 민주주의 정신과도 닿아있다.


정의 실현을 위해 검사가 되려는 자만을 검사로 뽑아 임용단계에서의 정치성을 배제하고, 검찰 인사 전반에 다면평가를 도입해 실제 업무 성과에 따라 공정한 평가가 이뤄지도록 함으로써 검사들의 승진, 전보 등에서도 정치성을 배제한다면, 검사들은 법과 원칙에 따라 사건을 처리하고 대한민국 검찰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또한 검찰의 수사로 인해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들도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공공부문 전반의 인사에 다면평가 도입된다면 모든 문제는 사라지고 모든 게 정상화될 것이다. 누군가가 무엇을 어떻게 했지만, 더 이상 그건 그를 그 자리에 앉힌 자, 그가 가고 싶은 자리, 그에게 그 자리를 줄 수 있는 자와 관련이 없을 것이다. 또한 공공부문의 모든 자리가 갖는 본질 자체가 추구하는 가치가 되고 더 이상 다른 것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전락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영전, 승진, 성과급, 유학, 표창 등 모든 보상과 처우가 그 자리에 앉은 자가 그 자리가 갖는 본질적 가치를 얼마나 잘 달성했는지, 정확하게 그 결과에 따라서만 결정될 것이다. 더 이상은 만사가 인사가 아니고, 인사가 만사가 될 것이다.


‘정치가 문제다’, ‘정치의 효용’, ‘권력의 속성’, ‘국가의 역할’, ‘국정과제의 탄생’, ‘세금에 대하여’, ‘중앙행정기관과 공공기관’, ‘합의제의 죽음’, ‘정부업무평가’, ‘지방자치제도’ 등에서 대한민국 정치와 행정의 부조리에 대해 지적했다. 부조리의 근원과 발생 원리는 일관된다. 첫째, 대한민국의 정치는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닌 권력 획득을 위한 정치다. 둘째,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서부터 말단 실무자의 자리까지 인사권의 사슬로 연결되어 있다. 셋째, 그러다 보니 법과 원칙에 따라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인사권을 쥔 자의 뜻에 따라 일한다. 나에게 그 자리를 준 자, 내가 가고 싶은 그 자리를 줄 수 있는 자의 뜻에 따라 일하게 되는 것이다. 넷째, 모든 성과의 측정과 평가도 그러한 인사권의 먹이사슬에 따라 이루어진다. 다섯째, 결과적으로 정치에도 행정에도 국가와 국민은 없고, 일의 시작인 목적에서부터 끝인 평가에 이르기까지, 권력과 자리로 대변되는 인사권만 있을 뿐이다.


이제는 만사가 인사인 현재의 인사시스템을 혁신해서 인사가 만사가 되도록 해야 한다. 맹자는 선왕에게 인재 등용의 중요성을 강조함으로써, 왕도 정치의 요체를 전하고 그를 통해 이상 사회를 건설하고자 했지만, 선왕은 듣지 않았고 희망이 없음을 깨달은 맹자는 결국 제나라를 떠난다. 여기 검사 선서가 있다. 검사라는 자리가 갖는 본질에 대한 기록이다. 맹자가 이루고자 했던 왕도 정치와 이상 사회, 그것을 위한 전제가 되는 인재의 전형(全形)이다. 이제는 검사 선서가 검찰에서 실현되고, 뿐만 아니라 모든 정치인, 공직자의 선서가 되어 실현되고, 더 나아가 정의, 진실, 명예, 따뜻함, 바름 같은 가치들이 추구의 대상이 아닌 우리 사회 전반에서 일상이 되는, 그런 나라가 되어야 한다.


나는 이 순간 국민의 부름을 받고 영광스러운 대한민국 검사의 직에 나섭니다. 공익의 대표자로서 정의와 인권을 바로 세우고 범죄로부터 내 이웃과 공동체를 지키라는 막중한 사명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나는 불의와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 있는 검사,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따뜻한 검사,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바른 검사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국민을 섬기고 국가에 봉사할 것을 나의 명예를 걸고 굳게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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