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이야기
며칠 전, 결혼 28주년을 앞둔 미셸 오바마가 방송인 코난 오브라이언을 초청해 진행한 팟캐스트에서 이같이 밝혔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 등에서 기사가 되었다는 뉴스를 트위터에서 보았다. 지난 미국 대선 캠페인에서 트럼프 진영의 수준 낮은 공세에 대응해서 민주당 후보였던 힐러리 진영을 지지하는 연설에서 “When they go low, we go high.”라고 말해서 우리에게 말의 품격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집권하던 시절에도 언제나 품위 있는 언행과 품격 있는 행동으로서 세계인에게 그의 남편 오바마 대통령 이상으로 깊은 인상을 주곤 했었다.
그런 그녀가 결혼 생활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것에 대해 놀랐다는 것은 아니다. 겉으로 보기엔 늘 TV에 나오는 그녀의 품위, 품격이나 오바마 대통령의 아내인 그녀가 어떻게 이렇게 생각할까 하는 생각이나 놀라움은 1도 없다.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는 누구나 똑같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학교를 떠나는 순간 곧 알 수 있는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사회적인 성공을 거두었다고 해서 개인적인 삶의 각 부분에서 모두 성공을 거두는 것과는 또 다른 별개의 일이다. 우리에게 삶의 방향과 가치에 대해 지금까지도 우리의 정신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소크라테스일지라도 극복할 수 없었던 결혼 생활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흥미롭게 그 기사를 읽었다.
미셸 오바마의 기사를 읽고 내가 놀랐던 지점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민주주의 제도, 남녀평등의 이슈에서 늘 먼저 떠올리게 되는 그들의 삶 조차도, 그 미국의 퍼스트레이디였던 미셸 오바마마저도 결혼 생활에서의 역할과 성평등은 우리와 별반 차이가 없었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물론 지금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젊은 세대는 미셸 오바마 세대와 달리 무언가 달라졌을 것이고 진화되었으리라 짐작해 본다. 하지만, 어쩌면 지금까지도 별반 달라진 게 없지 않을까 의심도 든다. 우리나라에서도 몇 년 전 베스트셀러가 된 ‘82년생 김지영’(2018)이 영화로 개봉되었을 때의 반응과 작년에 미국에서 개봉되어 영화 기생충과 함께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까지 올랐던 ‘결혼 이야기’(2019)를 보면 더욱 그렇다.
두 번째는 유사 이래 진화하고 발전되어 온 남녀의
성 역할 문제는 선진국이 되어도, 또는 민주주의의 꽃이 피어도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특히 유교전통에서 전해 내려온 가부장제도의 세습이 원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미셸 오바마의 기사를 읽어보면 반드시 그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 오십이 넘어서야 겨우 아내를 개미 발톱만큼 조금이나마 이해를 한다고 생각하지만 지금도 타성과 관성의 법칙이 작용하는 것인지, 아니면 가정에서 누려온 기득권을 유지하고 싶은 건지 마음보단 몸이 먼저 반응을 하지 않는다. 아직도 집안일, 가사 노동을 알아서 스스로 해주기보다는 아내가 부탁을 하거나 지시를 받아야만 몸이 움직인다.
남자들이 사회적 역할을 끝내고 집으로 물러날 때쯤이면 보통은 사회에서 나름 수명 업무를 하기보다는 꽤나 명령이나 지시하는 업무를 하는 위치에서 대부분 마지막 사회적 역할을 마치다 보니 가정에서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리게 마련인 것이 아닌가 싶다. 특히 결혼하고 삼십 년 이상 사회적으로 강요된 성역할에 따라 치열하게 생활한 전업 주부들의 내공에 비하면 그 무렵 남자들은 집안일에 있어서는 당분간 신입사원도 아니고 그냥 비정규직 인턴 수준일 뿐이다. 그런 현실을 얼마나 빨리 깨닫고 노력하는 가에 따라 하루빨리 인턴을 벗어나고 제대로 된 한 사람의 정규직 가족 구성원으로서 자리 잡아 나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미셸 오바마,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