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의 이슈& 트렌드 따라잡기
지난겨울은 유난히 따뜻했다. 그 삼십 년 만의 이상기온만큼이나 오랜만에 Jtbc 슈가맨에 ‘리베카’로 재소환된 90년대 초의 반짝 스타였던 양준일이 다시 패션, 연예계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그때 90년대를 불타는 청춘(?)으로 살았던 대부분의 남자 꼰대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때아닌 이런 돌풍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한다. 심지어 못마땅해하기까지 한다.
반대로 노소를 막론하고 많은 여성들은 양준일에게 열광하고 무한한 응원과 지지를 보낸다. 이 지점에서 가부장적 마초이즘 문화를 세습해온 내 주변의 대부분 남자 꼰대들은 마음이 불편하다고 한다. 그들이 보기엔 양준일의 너무 여성스러운 외모와 몸짓, 말투 그리고 오십 대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양준일의 패션 등 모든 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다. 그들 또한 90년대에 양준일과 동시대를 살았고 ‘오렌지족’이란 신조어를 만들어냈던 불타는 청춘들이었지만 말이다.
작년 연말에 방송인 박경림이 진행했던 양준일의 첫 팬미팅 행사를 보았다. 따뜻한 지난겨울과는 어울리지 않게 매우 추웠던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전국 각지에서 뭉게뭉게 구름처럼 몰려들었던 양준일의 팬들은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열광의 도가니가 되었다. 상상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팬들은 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두 여성들이었다. 그녀들은 세계를 정복한 방탄소년단의 팬 아미들과 다를 바가 아니었다.
나름 페미니스트, 패션피플로서 자부심을 가진 나도 대충은 이해했지만, 정말 그 열광적인 리액션과 응원의 본질은 무엇인지 갑자기 알고 싶은 호기심이 생겼다. 옆에서 같이 TV를 지켜보던 아내에게 물었다. 아내는 몰입을 방해하는 나를 귀찮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그리고 보면 모르겠냐며, 당연한걸 왜 묻느냐는 핀잔과 함께 그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양준일의 겸손하고 부드러운 말투, 솔직하고 허세 없는 진솔한 얘기들, 선이 살아있는 멋진 패션감각(Armani Look)등 오십대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그의 태도와 몸짓이 그들을 열광하게 한다고.
그와 같은 동시대를 살아왔지만 생업에 뛰어든 이후 언젠가부터 우리도 모르게 몸에 체화된 가부장적 삶을 살아온 남자 꼰대들은, 반사적으로 여성들이 느끼는 양준일에 대한 응원과 지지에 대해 학습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 시대의 대부분의 여성들은 그런 마초이즘에, 또는 세습된 가부장적 삶에, 사회적으로 강요된 현모양처의 삶을 부역을 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런 꼰대들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세련된 외모와 허세 없는 오십 대의 양준일이, 90년대 패션잡지에서 막 튀어나온 모습으로 갑툭튀 했으니 그 여성들은 놀랄 만도 하다. 그녀들의 딸들도 놀라 기함하긴 마찬가지다. 평소에 알던 아버지 세대들에 대한 고정관념을 박살 낸, 오십 대의 허세 없고 진솔한 꽃중년 양준일이 나타났으니 많이 놀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대부분 집집마다 붙박이 장롱처럼 존재하는 도대체 말이 안 통하는 꼰대들과 다른 오십 대 청춘의 양준일이 나타난 것이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 양준일에게 나는 너무 고맙다. 그가 아니었다면 우리 오십 대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대책 없는 꼰대들로 몰릴 판이었으니까. 그래도 우리 오십 대 중에서도 양준일 같은 어른 사람이 현실에서 존재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그녀들에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간다고 모두 꼰대는 아니다. 꿈과 이상을 잃어버릴 때, 학습하지 않고 과거의 경험에만 얽매여 세상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할 때, 우린 그저 그런 꼰대로 늙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사무엘 울만의 시 ‘청춘’의 한 구절로 대신한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어떤 마음가짐을 뜻하나니 장밋빛 볼, 붉은 입술, 강인한 육신을 뜻하지 않고
풍부한 상상력과 왕성한 감수성과 의지력과 그리고 인생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참신함을 뜻하나니,
생활을 위한 소심성을 초월하는 용기 안이함에의 집착을 초월하는 모험심 청춘이란 그 탁월한 정신력을 뜻하나니 때로는 스무 살의 청년보다 예순 살의 노인이 더 청춘일 수 있네.
우리는 누구나 세월만으로 늙어가지 않고 이상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늙어가나니”(중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