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힐링사이트 만들기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문득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특히 요즘 같은 봄날, 따뜻한 바람이 불고 새싹을 틔우느라 주변이 어수선할 때가 그렇다. 루틴한 일상에서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순간, 치열한 직장생활에 많이 지쳐있을 때, 또는 가까운 사람에게 뜻밖의 상처를 받았을 때가 더욱 그렇다.
회사생활을 하다보면 아침에 출근하다 말고 회사로 가지 않고 갑자기 차를 돌려서 동서고속도로나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무작정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오는 그 곳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지만, 김장독에 바람 들지 말라고 눌러 놓은 무거운 누름돌같은 가족과 생계를 위해 참아야 할 때가 수없이 많다.
하지만 우리는 그 어느 누구에게도 이런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성적이지 않은 감성적인 마음을 드러내 보이면 조직생활에 도움이 안 된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마음을 다독이며 회사에서 사원 복지 차원에서 마련해준 유명 수입산 커피메이커에서 만들어지는 커피향 짙은 아메리카노 한잔으로 위로받으며 씩씩한 척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겉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가끔 환기가 되지 않은 김칫독에서 뽀얀 곰팡이가 끼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도 리프레쉬되지 않으면 시름시름 우울해지거나 부정적인 생각이 업무의 집중을 방해할 때가 있다. 그래서 요즘 잘 나가는 회사들은 한 달에 한 번씩 주말에 더해 월요일에 리프레쉬데이를 운영하면서, 회사원들의 재충전과 심기도 관리하고 인건비도 절약하는 일석이조의 현명한 경영을 한다.
일이십 년 전만 해도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월화수목금금금이라는 자조 섞인 일주일을 보내곤 했었다. 추석 연휴나 설날 연휴가 아니면 삼일 이상 연속해서 쉬어본다는 것은 꿈같은 일이었다. 물론 지금도 업무의 특성에 따라, 혹은 회사의 규모나 성격에 따라 그러할지도 모른다. 그럴수록 휴식년이나 휴직은 생각도 못하지만, 우리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한 현실의 고달픔을 벗어나 어디론가 떠나서 몸도 마음도 위로받고 리프레쉬하고 싶은 그런 곳, 즉 힐링 사이트가 필요하다.
잠깐만이라도 들러서 아무 생각 없이 한두 시간만이라도 머물다 오고 싶은 곳, 상처 받은 마음을 위로받고 싶은 곳, 헝클어진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 곳. 그런 곳에 가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미리 준비해두지 않으면, 문득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 갑자기 나만의 그런 힐링사이트를 찾기란 쉽지 않다.
내게는 그런 힐링 사이트가 세 곳이 있다. 무언가 실타래처럼 엉퀸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때, 인간관계에서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 받았을 때, 문득 내 삶이 올바른 방향으로 잘 나아가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 아니면 갑자기 시간이 남거나 뜻밖의 휴일, 예를 들면 정기 공휴일이 아니라 미처 생각지 못했던 국회의원 선거일, 회사창립일, 노동절 등. 그런 잉여 휴일엔 내게 주어진 시간 안에 적절하게 다녀올 수 있는 나만의 힐링사이트로 혼자 출발해 위로받고 오곤 했다. 또다시 일상을 거뜬히 수행해 나갈 힘과 용기와 에너지를 얻는 그곳,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힐링사이트를 만들어 놓았다.
첫 번째는 팔당댐 북한강변이 내겐 그런 곳이다. 삼십 분이면 드라이브해 강가에 차를 세워놓고 작은 돌을 줏어 수제비를 몇 개 뜨곤 해 질 녘까지 기다린 후, 황홀한 노을을 바라보며 무념무상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올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이다. 서울 근교라 접근성이 좋고, 또한 가끔은 봄,가을 어느 햇볕 좋은 날 가족들과도 주말에 한국 실학의 대가 다산 정약용 생가터를 산책하고 강가에 있는 오동나무집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고 오곤 했다. 그리고 매해 연말마다 이른 종무식을 마치고 시간이 허락하면 묵은 한 해를 보내고 새해 각오를 다짐하면서 나만의 의식을 가졌던 곳이다.
두 번째는 속초에 있는 고찰 낙산사, 바다 소나무에 둘러싸인 절벽 위의 의상대가 그렇다. 탁 트인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의상대 관음송에 기대어 해풍과 함께 속세에 찌그러진 마음을 확 펴고 오고 그랬다. 물론 동서고속도로가 생기기 전에는 매우 먼 거리라 하루를 꼬박 할애해야만 다녀올 수 있던 곳이었다.
한 때 산불로 낙산사가 소실되는 모습을 볼 때는 내 마음도 함께 무너져 내렸다. 지금도 연말연시 추운 겨울, 교통체증이 없는 주말을 골라 명품 일출을 보러 다녀오곤 한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속초나 강릉에서 요즘 핫플레이스를 찾아 동시대 사람들의 관심과 이슈를 직접 체험하는 일이란 '체험 삶의 현장'처럼 생생하고 신선한 생활의 기쁨이 된다.
세 번째는 경주에 있는 감은사지와 제주도 성산 일출봉이다. 이 두 곳은 지리적 거리가 최소 일박이일이 아니면 다녀오기 힘들기 때문에 한 곳의 힐링사이트로 본다. 먼저 경주 토함산을 넘어 동해 감포 바닷가에 있는 천년이 넘은 폐사지인 감은사지는 두 쌍탑과 그 앞에 펼쳐진 들판이 너무 좋은 곳이다. 천년 세월을 버터 낸 두 쌍탑을 바라보고, 노란 가을 들판을 바라볼 때면 에너지가 샘솟는 그런 곳이다.
그리고 일본의 교토처럼 깨끗하고 품격 있는 신라고도 경주를 둘러볼 수 있는 것은 보너스다. 또한 제주도 성산 일출봉은 이른 아침에 비행기를 타면 하룻만에 도 다녀올 수 있는 ‘조금은 낯설고, 조금은 익숙한’ 그런 풍경들이 몸과 마음을 리프레쉬해주곤 하는 특별한 곳이다. 별도의 등산 준비물 없이도 이십 분만 걸어 오르면 정상에 닿을 수 있다.
1998년 3월 IMF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눈물의 회사 구조조정이 끝난 후 울적한 마음을 달래려고 당일치기로 제주도로 날아가 성산 일출봉을 올랐던 적이 있었다. 일출봉 정상에 오르는 수고에 비해 너무나 쉽게 세상을 다 가진 그런 느낌과 함께 우리의 온몸을 바닷바람이 깨끗하게 리프레쉬해준다.
사회생활, 대부분 조직생활을 하다 보면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스트레스와 상처, 화가 쌓여서 아무리 무거운 누름돌로 꼭꼭 눌러놓아도 막걸리 만들 때 효모가 발효되어 올라오는 거품처럼 쌓이고 또 쌓이면 폭발하고야 만다. 그때는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오히려 그렇게 폭발하지 않으면 상처 받은 마음이 병이 들고 스스로를 망가뜨릴 수 있기 때문에 더 위험할 수도 있다. 그럴 땐 뒤늦은 후회보단 스스로를 위로하고 받아들여야지만 다시 새 출발을 할 수 있다.
우리는 누구나 세월만으로 늙어가지 않고 , 생활 속에서 피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잘 매니지먼트하느냐에 따라 나이보다 더 늙어보일 수도 있고, 아님 제 나이보다 더 젊어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것이 반드시 더 좋은 모습이라는 것은 아니다. 신체 나이에 맞게 자연스럽게 나이 들어가는 모습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꿈과 이상을 잃어버리지 않고 좋은 모습으로 나이 들어 갈려면, 우린 누구나 스트레스 매니지먼트에 대해 자기만의 노하우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삶도 위험에 빠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처음 우리가 목표한 그 지점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가끔은 “정말로 그대가 재미없다 느껴진다면” 무작정 마음 가는 그 곳으로 떠나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