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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Oct 17. 2020

맛있는 요리도, 행복한 인생도 타이밍이 중요해

자발적인 가사노동 참여하기


 지난 연휴 이틀째 이른 아침, 라디오 FM 음악을 들으며 “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일상을 지키면 무너지지 않는다.”란 제목으로 글을 썼다. 올해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인터뷰 기사를 읽다가 그 황홀한 영광의 순간에도 일상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그 시인의 인터뷰를 보고 매우 놀라웠다. 새삼 매일의 평화로운 일상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다시 일깨워 주는 시인 루이스 글릭의 말을 찬찬히 음미하면서 글을 쓰고 있었다.


 두어 시간 브런치에 글을 써서 올리고 난 후 창가로 가을 햇볕이 들어오는 곳으로 재빨리 책상 위에 놓인 작은 붉은 꽃고추 화분을 옮겨 놓는다. 드립 커피를 내려놓은 줄 깜박 잊고 있다가 알레시 머그컵에 따라와서 세상 편한 자세로 거실 소파에 앉아서 ‘라디오 스타’ 재방송을 보았다.


 


 그때, 아내가 부엌에서 잡채를 준비하고 있다가 식탁 위로 싱싱한 가을 쪽파를 한단 들고 와서는 신문지에 펼쳐놓고 다듬기 시작한다. 일상의 소중함에  관한 글을 방금 써서 브런치에 발행하지 않았더라도 우리 나이가 되면 가끔은 자발적으로 가사노동에 참여하게 된다. 그래야 금방 만든 맛있는 따끈한 잡채를 먹는 마음 가짐의 자유를 얻는다. 물론 그 맛은 ‘팔도 밥상’의 맛에 뒤지지 않는 훌륭한 맛이다. 아내가 잡채의 여러 가지 재료를 준비하기에 분주할 때, 요청하기 전에 스스로 빨리 눈치 있게 움직여야 눈새(눈치 없는 새X )가 되지 않는다. 맛있는 요리도, 행복한 인생도 모두 타이밍이 중요하다.


 쪽파를 다듬어 본 사람들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쪽파 다듬기는 웬만한 채소 다듬기 중에서 최상의 고난이도와 눈물, 콧물을 동반한다는 것을. 대파에 비해서 그 크기도 작을뿐더러 뿌리 부분에 진흙이 묻어 있어서 쪽파를 다듬는 오른손 엄지와 집게손가락에 진흙이 옮겨 묻어 그 느낌이 금방 불편해진다. 그리고 처음 다듬기 시작할 땐 못 느끼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 갈수록 눈과 코가 간질간질하고 매워지면서 눈물과 콧물이 흐르는 고난도 수작업이 필요하다. 아내와 둘이 함께 다듬을 수도 없다. 둘이서 눈물 콧물 흘리면서 함께 앉아 있는 장면은 그리 아름다운 휴일 아침 풍경은 아니기 때문이다. 쪽파 한 단, 열 대파 다듬기보다 더 눈물 난다.



 우리 속담에 ‘봄 햇볕에 며느리 내보내고 가을 햇볕에 딸 내보낸다’는 속담처럼 제사를 준비할 때면 어머니는 꼭 쪽파 다듬기를 아내에게 부탁하곤 하는 모양이었다. 제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가끔은 아내가 웃으며 힘든 쪽파는 왜 맨날 자기가 다듬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컴플레인 아닌 컴플레인을 내게 하곤 했다.


 말은 하지 않아도 며느리들 중에 서열이 낮기도 했지만 아마도 아내가 제일 착하고 그 힘든 쪽파를 묵묵히 다듬을 수 있다고 신뢰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내의 평소 행동에 비추어보면 어머니가 미워해서 그런 건 아니라고 믿는다. 직접 쪽파를 다듬어보면,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면 다듬으라고 함부로 줄 수 있는 쪽파가 아니다. 아마도 아내가 회사 생활을 했다면 직장 상사가 그렇게 편하게 느낄 수 있는 직장 후배라면 최소한 임원은 달 수 있었을 것이다.



 어떤 일이건 직접 경험하고 해보지 않으면 이해는 할 수 있지만, 공감은 할 수 없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아픔과 상처에 대해 쉽게 위로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쪽파 한 단 다듬는 작은 일에서도 그러하거늘, 어떻게 경험해보지도 않고 그 사람이 받은 상처나 겪은 아픔에 대해 공감할 수 있겠는가. 우리 주변의 많은 사람들의 아픔과 상처에 대해 직접 당해보지 않으면 쉽게 판단할 수 없다. 오지랖 넓게, 상처 받은 사람들에게 더 상처 주지 않도록 입장을 바꿔 놓고 먼저 생각해보고 위로해야 한다. 또한 말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 가을은 요리의 계절인가. 이번엔 또 배추 겉절이를 한다고 삼 년 전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샀던 옹기 확독을 꺼내 아내가 처음으로 겉절이를 만들었다. 나는 거실 바닥에 깔아놓은 신문지의 쪽파와 함께 부추, 생강까지 다듬었다. 옛말에 “늙은 생강이 맵다”더니 눈물이 났다. ‘맑고 향기롭게’ 나이 들어가지는 못할지라도 맵게 늙지는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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