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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Oct 08. 2020

언제나 그랬듯 세상은 나보다 빠르다

바람직한 부부관계에 대한 단상


 얼마 전 외교부 장관의 부군이 미국으로 해외여행을 떠났다고 언론에서 비난하고, 그 아내인 외교부 장관은 송구하다며 연일 사과하기에 바빴다. 사실 관계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한 개인의 사생활을 이렇게까지 기사화하고 노출시키는 게 맞는지 조금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 내용을 여기저기서 살펴보니 그분이 모대학 교수를 은퇴하고, 그 학교의 요트 동아리 지도교수를 한 인연으로 대서양을 요트로 항해하는 꿈을 꾸어 왔던 모양이었다.


 단지 출국 시기가 마침 코로나로 인해 방역이 강화되고 외교부에서도 특별한 일이 아니면 해외여행을 자제하라고 당부할 때였다. 그러니 외교부 장관도 국민들께 송구할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 남편분께서 여행 일정을 조금 늦추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개인적인 일을 가지고 과도하게 전파와 지면을 낭비하면서 까지 난리를 칠 사항이었느냐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공인도 아닌 한 개인의 사생활을 파헤쳐서 기사를 터뜨린 그 기자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늘 국민정서법이라고 해서 OECD 국가 중 가장 신뢰도가 낮은 언론의 실정법을 뛰어넘는 감정적 여론몰이가 비일비재하니 놀랄 일도 아니다. 그 국민정서법에 따르면 비난받아야 마땅한 일이다. 외교부 장관도 송구하다며 연일 사과하고 있고  “제가 말린다고 말려질 사람이 아니고요.”라고 말하는 대목에 있어서는 충분히 공감하고 웃음이 빵  터졌다. 세상은 언제나 나보다 빠르게 변한다. 어느 여론 조사기관에서 진행한 그의 ‘미국 출국 부적절 여부 찬반’ 여론조사에서 찬성(부적절) 34.5%, 반대(적절) 52.5% 라고 한다.



“아무리 빨리 이 새벽을 맞아도
어김없이 길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남들이 아직 꿈속을 헤맬 거라 생각했지만
언제나 그랬듯 세상은 나보다 빠르다”



드라마 미생(2014, tvN) 중에서




 부인이 공직에 있다고 해서 자기가 평생을 열심히 일하며 꿈꿔온 요트 항해를 더 미루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면 누구나 납득이 가지 않을 것이다. 곧 나이 칠십이 가까워지는 그의 나이에는 코로나 사태가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일이니, 그 여행이 ‘특별한 일’이고 조바심이 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 어떤 일은 누구나 살다 보면  참고 미룰 만큼 미루다 어느 날 갑자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질 때가 있다.


 국민 정서적으로는 그의 미국행이 T(time), P(place), O(occasion)에 맞지 않았으니 비난받을 법 했지만 이제 그만큼 비난받았으면 충분하다. 이왕 그렇게 무리해서 나간 여행이니 그가 계획한 대로 평생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응원하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그를 두둔하거나 칭찬할 일은 아니라서 더욱 조심스럽긴 하지만, 사실 지금도 매달 15,000명 정도가 미국 여행을 가고 있다고 한다.



 건강한 부부 관계에서는 우리는 보이지 않게, 또는 말하지 않아도 서로 넘지 말아야 할 경계가 분명히 존재한다. 성문법이 아닌 불문율로서 관습헌법 같은 룰이 존재한다는 것을 서로 인정해야 한다. 그 장관이 푸념처럼 한 말이 그런 경계를 인정하는 건강하고 바람직한 부부관계이지 않나 추측한다.


 건강한 부부는 서로의 꿈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게 하지 못하고 힘의 우위에 따라 또는 경제력의 여부에 따라 어느 일방이 부부관계를 지배하고 있을 때가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고, 가끔은 사회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다못해 집에서 키우는 반려견조차도 그런 일방적인 지시, 명령 관계는 스트레스를 주고 부작용을 일으킨다.



 각자 어른으로서 스스로의 의사결정권과 자아를 가진 가장 소중하고 가치 있는 동반자라면  더더욱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고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하물며 둘이서 낳은 자식도 내 마음대로, 내 생각대로 되지 않을뿐더러 그렇게 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건강한 부부 사이라면 더욱더 서로를 신뢰하고 존중해야 할 것이다. 어떻게 보면 부부라고 해서 둘이 ‘똑같음’을 우리는 서로 경계해야 할지도 모른다. 서로에 대한 건강한 비판과 긴장감이 없는, 말뜻 그대로의 일심동체는 이제 단세포의 아메바나 자웅동체인 달팽이를 지칭하는 말이 될 수도 있다.



 서로 다른 인격체로서, 또한 서로 다른 젠더로서 그 모든 것이 똑같아진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고, 그런 관계가 존재한다면 일방적인 복종관계일 수도 있다. 아니면 사이비 종교의 그 흔한 관계일지도 모른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그 차이를 상호 존중과 대화로서 좁혀가고, 함께 꿈을 꾸면서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사랑과 존중으로 맺어진 부부 관계의 건강하고 바람직한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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