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말 한마디
영화 ‘우아한 거짓말’(2013, 감독 이한)에서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난 주인공 천지(김향기)가 이웃집 고시생 추상박(유아인)에게 가족한테도 안 한 말들을 한 것을 듣고 놀라는 언니 만지(고아성)에게 하는 말, “살다 보면 엄한 사람한테 속 얘기할 때도 있는 거야. 엄한 사람은 비밀을 담아 둘 필요가 없잖아. 내가 바로 그 엄한 사람이야”라고 말한다.
매일 얼굴 보고 함께 생활하는 가족이 제일 모를 때가 있다. 또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한다는 생각은 때로는 서로를 구속하거나 속박할 수 있는 핑계가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시시콜콜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기 때문에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하는 것들을 모르는 게 더 문제일 때가 많다. 가족 구성원들이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지, 어떤 꿈을 가지고 있는지,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나 생각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했는지, 학원은 갔는지, 공부는 몇 시까지 했는지, 누구와 밥을 먹고 술을 마셨는지와 같은 시시콜콜한 것들, 그렇게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서로 신뢰하고 존중해야 할 매우 사적인 영역일 수도 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이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한다면 다른 이름의 구속일지도 모른다. 진정 가족끼리 서로 알아야 하는 것들,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 할 것들은 가족 구성원들의 고민, 꿈, 관심, 가치, 소중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tvn,2014)
가족이라는 이유로 시시콜콜한 것들을 모두 알아야 하는 것보다는 서로가 얼마나 애정을 가지고 서로를 응원하고 신뢰해주는가가 더 중요한데 말이다. 심지어 꿈을 이루기 위해 치열하게 살다가 문득 지칠 때라도, 설령 짜증을 내는 한이 있더라도 묵묵히 믿음으로 받아주고 인내해 주는 것이 가족이 할 일이다. 왜 그런지 속속들이 알면 속은 시원해질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가족이기 때문에 더 불편해질 수도 있다. 또한 가족이기 때문에 스스로의 자정력을 기다리지 못하고 무리하게 나서지 않을 수 없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일을 더 크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얘기를 못할 때가 있다.
친구, 동료, 선후배, 연인 등 그 순간만큼은 영원할 것 같지만, 상대가 있는 모든 관계는 이런저런 이유로 언젠가는 무너질 수도 있는 관계일 뿐이다. 하지만 핏줄로 맺어진 가족은 최소한 언제나, 어떠한 경우에도 마지막 남은 내편이라는 절대 믿음이 있기 때문에 무너지지 않는다. 가끔 무너져 보일 때가 있지만 그렇지 않다. 그 가족 구성원 혼자만의 일탈일 뿐이다.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믿음, 그게 가족이다. 또한 절대적인 믿음과 기대가 있는 만큼 가족으로부터 가장 많이, 가장 쉽게 상처 받을 수도 있다. 자연적인 삶이 함께 하는 동안만큼이라도,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도 서로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후회하게 된다. 하지만 뒤늦은 후회가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따뜻한 말 한마디, 우리 곁에 있을 때 잘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