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애인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지난해부터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사회적 논란 속에서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말로 마치 부인이 하는 일은 모두 남편이 알고 있는 것처럼 단정적으로 표현한 내용이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었다. 부인의 일이나 투자에 대해 꼰대들 말처럼 베갯잇 송사로 모두 알고 있지 않겠느냐는 나름 합리적인 의심인 것이다.
우리 스스로를 돌아볼 때 과연 그렇게 서로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나 또한 합리적인 의심이 들었다. 나는 삼십 년을 넘게 함께 치열하게 생활해 왔지만 가끔 아내가 하는 일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내의 정체성이 아니라 아내가 하는 일을 모두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몇 년 전 개봉했던 영화 ‘완벽한 타인’의 부부 관계로 오해할 필요는 없다.
나는 한 번도 아내가 하는 일을 모두 다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고, 모두 다 알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다. 특별히 집안 대소사나 아이들에 관한 문제를 공유하는 것을 제외하면 오히려 서로를 모두 낱낱이 알기를 원한다면 더 이상 건강하고 발전적인 관계로 진행되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아이들의 문제도 부모라고 해서 A부터 Z까지 모두 알아야 한다는 생각은 서로가 힘들어질 수도 있다. 물이 스스로 자정력을 갖는 것처럼 기다려주지 않고 개입하면 개입할수록 더 일이 꼬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성인이 되고 결혼을 했는데도 아이를 육아하듯이 개입해서 서로 불편해지는 경우를 많이 본다. 상호 신뢰가 있다면 서로를 배려하는 따뜻한 무관심이 필요할 수도 있다.
부부 일심동체라는 말의 넓은 의미가 아닌 협의의 말뜻대로 일심동체가 된다면, 도 아니면 모가 될 수도 있다. 오히려 연애할 때는 일심동체일 수는 있어도 결혼 생활에서는 일심동체가 된다면, 예를 들면 육아나 재테크에서 안정성을 추구하는 것은 힘들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엄마 아빠가 똑같은 생각과 관심으로 아이에게 대한다면 아이는 숨이 막힐 수도 있다. 부부가 똑같은 장밋빛 전망과 함께 부동산이나 주식에 투자한다면 리스크를 회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부부 관계에 있어서 두 사람은 언제나 같은 편이긴 하지만 또한 언제나 서로에게 건강한 비판과 조언을 해줄 수 있어야 좋은 관계일 것이다.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쓴 것처럼 서로 신뢰가 있다면 좋고 싫고, 옳고 그름에 대해 자기의 생각을 솔직하게 서로 대화하고 합리적인 생각이라면 설득당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삶과 결혼 생활의 상승과 안정의 조화를 이룰 수 있게 된다.
돌이켜 보면 내 마음대로 했으면 아마 내 경우에는 비디오 가게를 운영했을 것 같다. 아니 지금쯤은 세상의 변화 속도에 밀려 비디오 가게는 폐업하고 또 다른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삼십 대 초반에 슬럼프가 올 때마다 회사 가기 싫을 때가 있었다. 영화를 좋아해서 동네 비디오 가게를 운영하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으로 스스로 합리화해 나가던 시절이었다. 그때마다 아내로부터 주어진 현실을 피해 우회하거나 합리화하지 말고 정면 돌파하라는 비판을 받곤 했다. 그리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고 무조건 당신 편에 서겠다고.
회사 생활에서 슬럼프나 스트레스가 많을 때 정답은 알지만 그냥 하는 말인데 따끔하게 현실을 깨우쳐 줄 땐 많이 서운하기도 했지만 더 강해질 수 있기도 했다. 주변에서 부동산이나 주식으로 많은 돈을 가질 수 있게 된 사람들의 얘기를 들었을 때 내가 생각한 대로 모두 투자했으면 아마도 나는 지금까지도 전셋값을 올려줄 생각에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 번은 아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몇 년간 부은 적금을 해약한 돈으로 주식투자를 해서 원금의 절반도 아닌 그 주식이 감자를 당하고 휴지조각이 되어 버린 아픈 수업료를 낸 적이 있었다. 그때 또 한 번 깨달았다. 나는 내가 딱 일한 만큼만 먹고살 수 있는 운명이란 것을 알고 치열하게 일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시대가 달라졌다. 자웅동체인 달팽이도 아니고 부부는 절대로 일심동체가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가끔 서로 생각을 공유할 뿐 상호 독립된 인격체로서 서로 존중받고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 먼 길을 함께 가는 동반자로서 늘 응원하고 걱정해 주는 존재여야만 한다. 부부 일심동체의 의미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정말 현실에서는 한마음 한 몸으로 움직일 필요도 없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된다. 커피 광고 카피의 “때로는 애인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서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지켜볼 수 있는 기찻길 같은 일정한 간격이 필요하다.
어느 일방이 또는 쌍방이 서로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한다는 소유나 종속 개념으로는 건강하고 발전적인 부부 관계를 유지할 수 없고 또한 결혼 생활의 안정성도 해칠 수 있다. 러시아 문학이론가 빅토르 시클롭스키의 “사람들은 친숙한 사물에 주목하지 않는다."는 말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낯설게 하기, 익숙한 대상을 다르게 보이게 만들어야만 사람들의 눈길을 끌 수 있다는 뜻이다. 가끔씩 꺼내 열어보는 깊숙이 숨겨놓은 보석 상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