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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May 21. 2020

이제 삼시 세끼는 필수가 아니고 선택일 뿐이다

가정의 달

 

 코로나 사태 이후로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확진자 아닌 확 찐자가 많이 생겨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일상의 생활 패턴이 무너지고 가정주부들의 루틴이 깨지면서 각 가정에서 이로 인한 스트레스가 쌓이고 고통받는 얘기들이 넘쳐나고 있다. 삶에서 자유의지대로 생활할 수 있는 주말을 제외하고는 정해진 루틴이 망가지면 혼란스럽고 일상이 흐트러진다. 지금 가장 힘들어하는 사람들은 가정에서 주부들일 것이다. 모든 가족 구성원들이 같은 공간에서 하루 삼시 세 끼를 함께 하며 온 종일 생활한다는 것은 그녀들에게 무척이나 힘들고 고된 일일 것이다.


 요즘 같은 풍요의 시대에 하루 삼시 세 끼를 먹는다는 것은 도시 생활인들에게는 이제  특별한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직업적으로 노동의 강도가 높은 직업을 제외하고는 도시인의 라이프스타일을 감안해보면 삼시 세끼는 어울리지 않는다. 농경 사회로 부터 시작된 삼시 세끼는 농부들의 하루 일과를 생각해보면 상상이 된다. 그마저도 요즘은 농기구의 발달로 어떤 농사일에 있어서는 기계식 농법으로, 예를 들면 공장식 수경재배나 스마트 농법의 영향으로 크게 육체적 노동을 요구하지 않는 농사일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가끔 아내가 집을 비울 일이 있을 때 집에서 한 두끼 식사를 준비해 아이들과 먹어보면 준비하고 만드는 가사노동에 비해서 순식간에 먹어치우고 설거지, 분리수거, 주방 청소 등 뒤처리가 더 많다. 지금의 도시 생활자들은 모두 운동량이 부족해 출퇴근 전후 따로 운동을 하거나 시간이 없을 때는 계단 오르기라도 하며 과도하게 섭취된 열량을 태우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생활 다이어트 시대가 되었다. 그런데 무얼 먹게 되든, 많이 먹거나 조금 먹더라도 꼭 하루 삼시 세 끼를 먹어야 한다는 의식에서 왜 해방되지 못하고 있는지 스스로도 궁금할 때가 많다. 오랜 식생활 습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매일 먹고 있는 간식과 주전부리, 영양보조제를 제외하더라도 이젠 한 끼 반이나 많게는 두 끼면 되지 않을까.


 십 년 전쯤 아이들도 성인이 되고 나서는 아내도 이제 밥하는 게 너무 지겹다고 선언할 때쯤 두 가지를 실천에 옮겼다. 평소 아내는 늘 홍콩 스타일의 식생활을 선호했다. 매끼를 밖에서 사 먹고 가정에서는 간단한 음식이나 차 종류를 마시는 그네들의 식생활 습관을 선망해오던 차였다. 또한 나도 주중에는 집에서 밥 먹는 경우가 한두 번 밖에 없고, 평소 비즈니스 때문에 저녁마다 너무 풍성한 식사를 밖에서 먹을 수밖에 없어 늘 고민스러웠다. 저녁 약속도 고깃집보다는 지방이나 콜레스트롤이 적은 일식집만 일부러 선호하다 보니 그 맛나던 신선한 회에서도 비린내가 나는 듯했다. 그리고 바로 그 두 가지를 실행에 옮겼다.



 첫 번째, 주말은 제외하고 모든 식구가 햇반을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기로 했다. 나름 장점이 많다. 2분만 데우면 되고 밥의 양이 일정해서 과식을 할 수가 없다. 기술의 발전과 함께 햇반이 정말 맛있어졌다. 반찬은 동네 아파트 지하상가 그 집 반찬만 이십 년째 먹다 보니 집밥처럼 입맛이 익숙해 졌다. 몇 년 전 반찬 가게 주인분이 건강이 나빠져서 조카분께 물려주고 시골로 요양하러 가시는 바람에 무척이나 혼란스럽고 힘들었었다. 다행히 최근에 다시 건강을 회복하시고 돌아오셨다.


  또한, 두 번째로는 일반 아파트에서 식당가가 지하에 붙어 있는 대로변의 주상복합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그리고 특별한 저녁 약속이 없는 날은 홍콩 스타일로 퇴근 후 운동복과 슬리퍼를 신고 지하 식당가로 내려가서 한식, 중식, 일식, 베트남 및 분식까지 그날의 테이스트와 스타일대로 저녁을 사 먹기 시작했다. 혼자서 밥 먹기의 즐거움은 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내가 주체적으로 먹고 싶은 메뉴를 골라 먹을 수 있고, 좋아하는 반찬을 누구 눈치 볼 것 없이, 예를 들면 내가 좋아라 하는 계란말이 다섯 개를 혼자 다 먹어도 뭐라 할 사람이 없다. 그래도 물론 주말저녁이나 평소에도 아이들이 집에 있을 때는 대개 아내가 집에서 먹고 싶은 요리를 하고 햇반 또는 밥을 해서 먹기도 한다. 지하 식당가에서 그날의 입맛대로 한식, 중식, 분식중에서 배달시켜 먹는 경우도 있지만.



 가사노동에서 일정 부분 해방이 되면 주부들도 보다 높은 생활만족도와 함께 스트레스가 사라지고 매 끼니를 만들어야 하는 매일의 루틴한 노동시간에서 조금은 더 자유로워질 수가 있다. 물론 아이들이 성년이 되고 난 후에나 가능한 일임은 틀림없다. 하루 삼시 세끼 20년 이상 밥했으면 해방될 자격이 충분히 있다. 또한 이런 식생활 스타일은 육체노동의 강도가 낮고, 정신적 노동의 강도가 높은 도시 생활자의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두 가지 규칙을 반영해서 식생활을 한다 해도 가사노동의 양이 이미 충분히 많기 때문에 주부들, 특히 전업주부들에게는 평소에 늘 고마움과 존중의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의 빈자리를 느끼며 뒤늦게 고마움을 떠올리는 순간, 그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 옆에 없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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