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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Sep 10. 2020

말을 하면 사라지는 것은 침묵뿐, 아무것도 없다

복.세.편.살


 생활하면서 우리는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참고 살 때가 많다. 괜히 말했다가 논쟁에 휘말리거나 주변으로부터 비난받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한다고 해서 오히려 속이 시원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정확한 사실관계 파악 없이 그때그때의 감정이나 진영 논리에 따라 쓸데없는 소리를 할 때가 특히 그렇다. 살면서 경험적으로 학습한 것 때문에 대개는 불편한 일이 있어도, 아니면 억울한 일이 있어도 우리는 당장 죽을 것 같지 않으면 입을 닫고 살 때가 많다.


 내게 주어진 모든 상황을 내가 온전히 받아들이거나 충분히 동의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오래전부터 일제 식민지 시대, 좌우대립의 결과였던 6.25 전쟁, 유신독재와 군부 정권을 경험하면서 Yes, or No의 어느 편, 어느 쪽인지를 강요받았던 시대를 살면서 경험적으로 유전이 된,  섣불리 나서기보단 침묵이나 중간만 가는 게 좋다는 생존 DNA 때문 인지도 모른다. 물론 요즘 환경오염 탓인지 여기저기서 말 같지도 않은 오염된 쓰레기 같은 말을 내뱉는 돌연변이들도 많지만.



 상황 파악하느라, 정확한 사실관계를 알아보느라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고, 또는 특별히 의사표현을 하지 않는다고 반드시 동의한 것도 아닌데 가끔은 침묵이 동의나 찬성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일방적으로 판단되어 어떤 일이나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억울한 경우를 당할 때가 있다. 침묵하는 다수는 모두 암묵적으로 동의 또는 찬성이라고 편의에 따라 일방적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그렇다. 어쩌면 그냥 어떠한 사안에 대해 이런저런 이유로 기권한다고 받아들여주면 좋으련만, 침묵했던 사람들은 억울하기만 하다.


 억울해도 할 수 없다. 침묵에 대한 대가일 수도 있다. 좋고 싫고, 옳고 그르고에 대해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습관을 가지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특별히 말로 표현하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닌데 어쩌면 어떤 표현을 해야 할 상황에서 잘 판단이 서질 않거나, 아님 아직 어떤 판단을 하기에는 정확한 정보나 팩트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을 수도 있다. 그러면 그렇다고 정확하게 표현하고 그 일이나 상황에 대해 설명을 듣거나 자세한  정보 또는 자료를 요청하면 될 일이다. 아니면 정확한 판단을 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말하면 판단 유보가 되는 것이다. 물론 그 후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했으면 자신의 의견을 분명하게 말해야 한다.



 말을 해야 알지 아무 말도 안 하는데 왜 몰라주느냐고, 왜 나한테 그렇게 행동하느냐고 항의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아쉽게도 우리는 모두 관심법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쩌면 말을 안 하면 모르는 게 당연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굳이 말을 안 해도 알아주는 경우를 찾으라면, 아기를 낳고 키울 때의 엄마가 그렇다. 말을 못 하는 아이의 눈짓, 몸짓, 울음소리만 들어도 배고 고픈지, 응가를 한 건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귀신같이 알아듣고 심지어 아기와 서로 대화도 한다. 하지만, 사실 이 경우도 아이는 아이대로 자신을 표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 우리 자신을 낳아주신 엄마는 오직 한분뿐이다.

 

 물론 오래 함께 살다 보면 가끔은 말을 안 해도 아내가 나의 모든 것을 알아줄 때 어머니를 대신해 하느님께서 내게 보내주신 게 아닌가 생각할 때도 있지만, 문제는 정말 엄마처럼 관심법이 있는 게 아닐까 두려울 때도 종종 있다. 어찌 되었든 말을 해야 할 순간에는 분명하게 우리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을 표현해야 한다. 우리가 말을 한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라지는 것은 오직 침묵뿐, 걱정할 필요가 없다. 왜 “말을 못 해’하면 오래전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서의 유명한 한 장면이 생각난다.


드라마 파리의 연인(2004)


뭐야. 너 도대체 뭐야?
왜 이러고 있는 건데?
너 바보야? 왜 말을 못 해?
그 자식이 그러고 있는데 왜 말을 못 하고 가만히 있는 거냐고!(기주)
  
내가 거기서 무슨 말을 해요.(태영)
  
왜 말 못 해.
입 없어? 소리 못 질러?
손 치우란 얘기도 못해?(기주)
 
맘 같아선 소리 지르고 싶었죠.
근데 그 사람 한기주 씨 친구잖아요.(태영)
  
친구는 무슨 친구 그런 친구 없어!(기주)
  
나는 한기주 씨 생각해서 참은 거라고요.(태영)
  
참아도 내가 참아! 누가 너더러 참으래?
그리고 참을 이유가 뭐야.
저 남자가 내 사람이다. 저 남자가 내 애인이다. 왜 말을 못 하냐고!!(기주)


나무 수국

 생활하면서 가끔은 아내가 또는 남편이, 아이들이 내 마음을 몰라줄 때 서운할 때가 많다. 생일을 몰라줄 때,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몰라줄 때. 무슨 음식을 맛있어하는지 몰라줄 때 등등. 서운해하지 말고 알아줄 때까지 미리미리, 또는 기억할 때까지 계속 또박또박 말해줄 필요가 있다. 몰라준다고 먼저 섭섭하게만 생각하지 않는다면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알아주겠지, 기억해주겠지 하고 우리 서로를 시험에 들게 할 필요는 없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한분, 하느님뿐이다. 그마저도 두려울 때, 우리는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말라달라고 기도한다. 좋고 싫고, 옳고 그르고 자신의 마음을,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하며 살아야 한다. 안 그래도 잡한 상, 하게 자.



 평생을 재미없게 살던 남편과 아내가 늘그막에 황혼 이혼을 했다. 헤어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즐기던 통닭을 먹으러 가서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통닭 다리를 뜯어 주었다.

그러자 할머니가 크게 화를 내면서 말했다.

“내가 좋아하는 부위는  닭 가슴살인데, 당신은 통닭을 먹을 때마다 내가 싫어하는 닭다리를 먹으라고 했어. 한평생 말이야”
할아버지는 기가 막혔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닭다리를 언제나 당신을 위해 양보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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