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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Jun 10. 2020

아이들은 콩나물처럼 소리 없이 자란다

육아의 기억


 아이들을 키우는 일은 온 마을이 다 함께 키우는 것이라  한다. 그만큼 우리는 많은 사랑과 관심으로 아이를 키워야 하고 또한 우리도 그렇게 온 마을 이웃들의 관심과 사랑으로 오늘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어쩌다 육아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새삼스럽게 부모님과 공동체의 이웃 어른들의 고마움을 기억한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부모도 함께 철이 들어가고 자신을 키운 부모님의 고마움을 추억하며 효도를 하기도 한다. 지금은 그만큼 한 아이를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하면서 살아가게 키우는 일은 온 마을 아니 한 국가가 해야 될 일이 되어버렸다. 다행히 요즘은 저출산 문제로 선진국들에서는 국가가 나서서 함께 키우고 육아와 교육을 우선하여 지원한다.


  큰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 일요일 오후에 가끔은 아이와 놀아 줄 때가 있었다. 일주일의 피로도 풀 겸 늦잠을 자고 일어나 미안하기도 했지만 아이가 놀아 달라거나  아내가 집안일을 할 때 잠시 아이와 놀아주라고 부탁할 때가 있었다. 그때는 삼십 대 초반이라 회사 일에 온통 정신이 팔려있다 보니 육아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다. 그래서 아이와 어떻게 놀아주어야 할지 잘 몰랐다. 아이가 소꿉장난을 하자거나 동화책을 읽어 달라하면 읽어주고는 했다. 그 외에도 아이와 놀아주면서 아이의 눈높이에서 놀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아이들이 쓰는 용어나 애 같은 목소리를 흉내 내면서 놀아주곤 했다. 그 당시 모 학습지 회사의 슬로건을 잘못 이해한 것이었다.


알리움

 어느 날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다가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내가 참지 못하고 한 마디를 했다.


“ 여보, 당신 아니라도  ㅇㅇ이는 친구들은 많아. 아빠는 당신 하나밖에 없잖아요. 왜 ㅇㅇ이 친구처럼 놀아주려고 해요?  ㅇㅇ이는 지금 아빠가 필요해!!!”


 아이처럼 목소리를 흉내 내면서 놀아주다가 무척이나 어색하고 쑥스러운 상황이 되어 버렸다. 아내의 말이 맞았다. 일주일 내내 아니, 어떤 주는 휴일도 없이 일하던 시절이라 아이와 자주 놀아주지 못할 때였다. 그때 가장 무서운 말이 “ 아빠, 놀아줘” 였다. 독박 육아를 하던 아내의 고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 굳이 성 역할을 구분하지 않더라도 아이에게는 가정에서 아빠가 어떤 존재인지 알아갈 필요가 있고 또 아빠와 함께 놀이를 하는 새로운 즐거움이 필요했다. 소형 평수 아파트에 살았으니 나이가 비슷비슷해 주변에 고만 고만한 아이의 친구들은 너무나 많았던 것이다. 아내 말대로 아빠와 자주 놀 수 없었던 아이에게는 아빠가 필요했지, 또 새로운 친구가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아빠가 되어 갔지만 육아와 교육에는 늘 부족한 아빠였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랄 때 겨울이면 할머니가 방 안에서 콩나물을 키우셨다. 방 윗목에 질그릇 대야 같은 것을 놓고 그 위에 콩나물시루를 올려놓고 들락날락할 때마다 작은 바가지로 대야에 있는 물을 떠서 시루의 삼베 위에 담겨있는 누런 콩에 반복해서 물을 부어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따뜻한 방에서 일주일쯤 지나면 삼베에 덮인 콩에서 싹이 발아하고 콩나물이 되어 쑥쑥 크기 시작한다. 할머니는 콩나물국이나 무침을 할 정도로 길이가 자랄 때까지 계속 콩나물에 바가지로 물을 뿌려주었다. 어린 마음에는 아무것도 아닌 흘러내린 물을 그냥 다시 붓고 그러면 또 그 물은 콩나물을 샤워하고 모두 질그릇 대야로 흘러내리기를 반복하는 것이 어떻게 콩나물을 먹음직스럽게 키울 수 있을까 의아해하고는 했다. 하지만 매일 아무런 변화도 없는 것 같았지만, 어느새 그 콩나물은 곧 시루를 삐져나올 정도로 노란 대가리를 내밀고 풍성하고 길쭉한 콩나물로 자라났다.


 아이들의 육아나 교육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별 가르침이 없어도 부모가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아이의 수준에서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간에 정확하게 잘잘못을 얘기해주고 가르쳐주면 아이들은 콩나물처럼 쑥쑥 크고 잘 자랄 수 있다. 아이가 엄마의 반복된 언어를 배우고 말을 하게 되는 이치와 같다. 아이가 잘 모르고, 이해를 못하겠지 하고 방심하다가는 어느 순간 커가면서 부모의 잘못을 그대로 따라 배우고 익혔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라고 후회하게 된다. 또한 부모의 좋은 습관, 좋은 모범도 아이는 은연중에 그대로 따라 배우게 된다. 부모의 삶이 곧 교육이다. 아무리 고가의 영어 유치원을 보내고 사교육을 한다 해도 삶의 스킬만 키울 뿐, 삶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나 인성까지 가르쳐 줄 수는 없다.



 어떻게 보면 아이들 교육은 부모가 잘 살고, 잘 생활하면 그것으로 이미 절반은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을지도 모른다. 물론 부모의 기대나 바람대로 꼭 그렇게 성장해 가진 않더라도 실망하는 대신 계속 신뢰를 보내 주면, 좋은 모습의 부모 밑에서 사랑받고 자란 아이들은 가끔 멀리 돌아가는 경우는 있지만, 언젠가는 그 부모처럼 좋은 모습으로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사람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할머니가 콩나물을 키우듯 그렇게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으로 물을 부어 주면 그냥 흘러내리는 것 같아도 아이들은 어느새 소리 없이 무럭무럭 성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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