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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Nov 04. 2020

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때를 기다린다

그대에게, 우리에게, 그리고 나에게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이맘때쯤이면 우리는 알록달록한 단풍을 즐기지만 산속에서는 곧 다가올 추운 겨울을 준비를 하느라 동물들은 바쁘기만 하다. 그중에서도 다람쥐는 도토리를 줍고 까서는 그들만 알고 있는 자연의 비밀창고에 숨기고 저장하느라 더없이 바쁘기만 한 계절이 늦가을까지 계속된다.


 우리도 물론 비록 도시에 살고 있지만 곧 김장도 준비해야 하고,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주부 라면 여러 가지 젓갈이나 밑반찬을 준비하고 가을의 열매나 과실을 이용해서 곶감도 만들고, 건조한 겨울에 먹을 모과청이나 청귤 차를 준비하기도 한다.



 단풍이 붉게 물들어 가는 숲길에서 가을 산책을 하다가 아내에게 도토리가 달려있는 참나무를 가르쳐주었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내는 열매가 달려있지 않으면 포도나무나 감나무를 알아보지 못한다. 가까운 올림픽 공원을 산책하면서도 소나무와 잣나무를 열 번도 더 가르쳐 준 것 같은데 아직도 물어보면 매번 틀린다. 그래도 나는 좋기만 하다. 내가 아내한테 유일하게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들꽃이름이나 나무 이름을 모른다고 해서 인생을 바르게 살고, 열심히 살아가는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아내는 한적한 교외일지라도 신호등을 어긴 적이 없고, 건널목이 아니면 절대 건너가지 않는다. 반대로 나는 한적한 길에서는 멀리 돌아가야 하면 주위를 둘러보고 가끔은 무단횡단을 한 적이 있다. 아내가 비판을 하면 사회생활을 오래 한 나의 변명은 소위, 남들에게 폐만 끼치지 않으면 된다며 융통성이라고 표현한다. 오래만 같이 산다고 해서 정이 쌓이고 존중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올바르게, 착하게 살아야 정도 쌓이고 존중하는 마음도 생길 수 있다.



 숲길을 산책하다 아내가 도토리에 대한 다람쥐의 집착에 관해 얘기를 해주었다. 어느 산길 도로의 같은 자리에서 매해 가을마다 많은 다람쥐가 지나다니는 차에 치여 죽는 로드킬이 발생했다고 한다. 궁금한 사실을 쫒아가다 보니 다람쥐가 겨울 양식을 준비하느라 산비탈을 깎아 낸 도로 위에 떨어져 있는 도토리를 발견하고 주워 먹고 있었단다. 차가 달려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도토리 욕심을 내다가 미처 피하지 못하고 로드킬을 당한다는 얘기였다. 그렇게 여기저기 숲 속에 모아둔 많은 도토리를 그 다람쥐는 정작 눈 내리는 겨울이 오면 제대로 찾아 먹지도 못한다는 슬픈 이야기였다.


 산비탈을 깎아 만든 도로이다 보니 가을이면 산비탈 참나무에서 아스팔트 도로로 떨어진 도토리를 주워 먹느라고 정신이 없는 다람쥐가 가을만 되면 그 도로의 같은 장소에서 그렇게 달리는 자동차에 많은 다람쥐가 치여 죽었던 것이다. 그러니 세상 일에 너무 욕심내지 말고 살자는 그런 교훈적인 얘기였다..




 나는 살면서 도토리에 욕심을 냈던 적이 딱 두 번 있었다고 말해주었다. 어릴 때 시골에서 살 때 할머니가 도토리묵을 쑤어줄 때, 그리고 지금은 사라졌지만 싸이월드를 할 때뿐이었다고. 동문서답, 동쪽으로 가면 문래동이냐고 물어보는 아내에게 서쪽으로 가면 답십리라고 말해주고는 우리들의 가을 산책도 바로 끝나고 말았다.


 덕분에 너무 욕심내지 말고, 지금 가진 것을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되새겨 보는 사색의 시간이었다. 지금도 뉴스를 보면 한 줌도 안 되는 권력을 가지고 욕심을 내고, 법을 어기고 무거운 중형을 선고받아 다시 구속되는 그 모습을 또 지켜보아야 하는 우리의 마음은 착잡하고 씁쓸하기만 하다. 사람이 거짓되고 부패한 것은 모두 탐욕스러움 때문이다. 그의 말처럼 진실은 가둘 수 없다.





누구도 산정에
오래 머물 수는 없다
누구도 골짜기에
오래 있을 수는 없다

삶은 최고와
최악의 순간들을 지나
유장한 능선을
오르내리며 가는 것

절정의 시간은 짧다
최악의 시간도 짧다
천국의 기쁨도 짧다
지옥의 고통도 짧다

긴 호흡으로 보면
좋을 때도 순간이고
어려울 때도 순간일 것을
돌아보면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고
나쁜 게 나쁜 것이 아닌 것을
삶은 동그란 길을 돌아나가는 것

그러니 담대하라
어떤 경우에도 너 자신을 잃지 마라
어떤 경우에도 인간의 위엄을 잃지 마라




동그란 길로 가다, 박노해



 양볼이 터질 듯이 도토리를 물고도 도로 위에 떨어진 도토리를 하나라도 더 주워 먹겠다고 다람쥐가 위험한 도로 위에서 도토리를 까먹고 있는 모습이 눈에 훤하다. 곧 자동차가 달려올 텐데. 그래도 우리 국민들은 너무 아량이 넓고 인정이 넘친다. 판결도 나기 전에, 재수감도 되기 전부터 언론에서는 사면을 말하고, 또한 어느 기업집단의 상속세 납부를 걱정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코로나 사태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우리에게, 누가 누구를 걱정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나만 올바르게, 착하게 사는 것 같아 손해 보는 게 아닌가 하고 너무 억울해할 필요가 없다. 사필귀정, 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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