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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May 12. 2020

우리는 아직도 김치를 못 담근다

라이프스타일의 변화


 나는 김치를 못 담근다. 신혼 시절에 아내와 함께 배추김치를 요리책을 보고 만들었는데 제대로 된 배추김치가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레시피 보고 시키는 대로 했는데 문제는 소금을 뿌리고 배추의 숨을 죽이는 과정 즉, 김치를 절이는 시간과 방법이 잘못되었던 것이었다. 요즘 라이프스타일로 보면 김치를 먹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한 사람이 먼저 담그면 된다. 김치를 담그는 게 반도체를 만들거나 미사일을 쏘아 올리는 일도 아니고, 또한 여자, 남자의 성 역할을 구별할 필요도 없다. 유튜브나 인터넷 지식검색만 하면 너무 친절하게 다양한 김치를 종류별로 레시피와 함께 비주얼로 잘 설명해 준다.


 첫째 아이와 둘째 사이에 열 살 가까이 나이차가 있어 아내는 둘째의 초등학교 학부형 모임에서 그 학부모들과 나이차가 열 살 이상 나다 보니 큰 언니에 속한다. 아내의 말에 의하면 그 학부모 모임과 아파트에서 살면서 알게 된 지인들 모임이 있다. 지인들 모임은 반대로 아내가 가장 나이가 어리다. 그 두모임에서 아내가 아직 김치를 못 담근다고 하면 두 모임의 반응은 크게 엇갈린다고 하면서 설명해 준다.


 첫째, 아내가 가장 나이 많은 초등학교 학부모 모임의 반응은


“ 언니, 저도 김치 사 먹어요. 겨울 김장 때만 시어머니와 함께 해요.”

“ 김치 맛있는 데 아세요? 어디서 주로 사 먹어요?”

“ 아파트 B상가 지하 ㅇㅇ 반찬가게 열무김치가 최고예요!!!”

“ 저는 친정에서 엄마가  김치 담글 때 우리 집 꺼 까지 담가서 가져다주세요”

“ 맞아요. 저도 이제 조금씩 사 먹을까 봐요. 그때그때 입맛에 맞게 신선하게 먹어보게요.”


두 번째, 60대인 아파트 지인들  모임의 반응은


“ 어떻게 지금까지 김치를 못 담가요, 그럼 매번 사 먹어요?”

“ 그럼 안돼, 김치 담그는 게 어려운 것도 아닌데 내가 가르쳐 줄게!!!”

“ 사 먹는 김치는 입맛도 안 맞고 맛이 없어, 그래도 주부가 김치는 담글 줄 알아야지”

“ 그럼 김치 말고 다른 반찬도 사 먹어요?”

“ 그래도 김치는 계절별로 담가먹어야 남편한테 사랑받지.”


김치를 못 담근다는 아내의 말에 두 모임의 반응은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느끼겠지만 아내보다 대개 열 살 정도 어린 초등학교 학부모 모임은 공감, 정보교환, 자기의 사례 등등 서로의 대화를 한다. 반대로 아내보다 나이가 많은 아파트 지인들의 모임은 충고하고, 조언하고, 평가하고, 판단을 한다. 그러면 대화도 필요 이상으로 길어지고 굳이 스스로를 설명하고 변명해야 할뿐더러 평가와 판단을 당하니 기분도 썩 좋을 수가 없다. 그냥 하는 얘기를 너무 진지하게 받으니 괜히 얘기했나 싶어 질 것이다. 물론 선한 의도로 얘기해 주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잔소리일 뿐이다.



 결혼하고 지금까지 나는 진심으로 한 번도 아내가 김치를 못 담근다고 불평해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매사 불평을 안 하고 살지는 않는다. 옛날엔 지금보다 더 내 목소리를 낼 때가 많았다. 그렇다고 김치냉장고에 김치가 없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동안 내가 좋아하는 아파트 상가 반찬가게 주인아주머니가 몸이 안 좋아 요양하러 고향에 내려갔을 때가 제일 아쉬웠다. 입맛을 금방 바꿀 수는 없으니까. 최근에 다행히 건강을 회복하고 돌아오셔서 너무 좋다.


 아이들도 김치를 별로 많이 안 먹고 나도 라면 끓여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끼니때마다 김치를 반드시 막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11월이면 아내의 사촌 여동생들과 겨울 김장김치를 담글 때 함께 모여 김장을 같이하고 축제처럼 즐긴다. 그때 한 열 포기 정도 분량을 가져오면 다음 해 3,4월까지 김장 김치를 먹으니 별 문제가 없다. 4~10월까지는 신선한 제철 식재료로 만든 김치를 종류별로 입맛대로 아파트 상가 그 반찬가게에서 사다 먹는다. 각자 환경에 따라 집집마다 저마다의 사정이 모두 다를 것이다.



 작년 가을에 시골여행을 다녀오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김장독 같은 것을 팔고 있었다. 아내가 갑자기 겉절이 김치를 담가먹겠다며 옹기류의 바닥이 올록볼록 양념이 잘 갈아질 것 같은 확독을 갖고 싶다고 고집을 해 중간 크기로 하나를 샀다. 내 예상대로 지금 반년이 넘었는데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다. 그래서 가끔 부엌에서 그 옹기 확독을 볼 때면 놀리곤 한다.


 김치를 담그고 못 담그고는 각자의 필요이고, 입맛이고, 사정에 따라 요구되는 라이프스타일일 뿐이고 이제 그 기준은 획일화될 수 없다. 그처럼 시대도 달라지고 입맛도 달라지고 있다. 각자 개인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추어 생활하면 된다. 젊은 친구들과 오래 만나고 대화를 이어가려면 절대로 가르치려고 들면 안 된다. 단, 상대방이 먼저 조언을 요구하거나 물어볼 때를 제외하고 말이다.


 나 또한 나이 들면서 그런 실수나 오버를 틈틈이 하고는 아내에게 지적을 받거나 나중에 깨닫고 스스로 자책할 때가 종종 있다. 인터넷과 유튜브의 발달로 인해 묻기 전에는 누구를 가르치려고 하면 안 된다. 이젠 몰라서 못하는 일은 없다. “부모님께 효도해라. 공부 열심히 해라. 아내에게, 남편에게 잘해라.”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그 누군가에게는 하나마나한 잔소리일 수밖에 없다. 오히려 그 누군가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왜 그런 결과가 일어났는지 그의 마음을 조용히 들여다보는 것이 먼저 일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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