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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Apr 17. 2020

남자는 철들면 재미없다

결혼이야기(2019)

 

 몸이 힘들 때, 졸릴 때, 배고플 때 아내는 예민해지고 짜증을 낼 때가 많다. 결혼하고 이십 년간의 투쟁 끝에 아내와 부부싸움을 하게 되는 결정적 시점에 대한 이 세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어떤 사물이나 사람 또는 어떤 가치에 대해 섣불리 함부로 모든 것을 안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다. 말이나 사람도 오래 함께 달려보고 사귀어 보아야 그 가치를 제대로 판단할 수 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떤 사물이나 사람에 대해 선입견을 갖는 경우가 얼마나 교만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연애를 오래 하고 결혼을 해도 처음 몇 년간은 어느  부부나 장미의 전쟁(?)을 치르게 된다. 나쁘게 볼 필요는 없다. 전혀 문제가 아니다. 고민할 필요도 없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 마주할 때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데이트할 때는 만남과 헤어짐의 주어진 시간만 가장 멋있고 아름답게 보내면 되지만, 결혼을 하고 함께 같은 공간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그냥 생활인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부부싸움이 문제가 아니라, 기본적인 상대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바탕으로 얼마나 솔직하게 발전적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려는 태도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처음 결혼하고 몇 년간은 우리 부부도 많은 다툼이 있었다. 그때는 왜 그렇게 이기고 지는 문제로 부부싸움을 대하고는 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앞에서 말한 세 가지의 이유로 예민해진 아내가 짜증을 내면 반드시 부부싸움을 하곤 했다. 하지만 문제 해결은 꼭 이성적으로 옳고 그런 것만 따지고 해결하려 했다. 내가 특별히 잘못한 것이 없는 부부싸움에 대해서는 절대 먼저 사과하지 않고 며칠을 그 상태대로 시간이 흘러갔다. 그렇게 하길 몇 년 후, 또 어느 날 부부싸움을 크게 하고 난 후 아내가 먼저 사과를 하면서 내게 했던 말이 평생의 부부싸움과 사회생활에 큰 깨달음을 주었다. 그리고 나는 내 그릇을 키우기 시작했다.



당신이 밖에서 경쟁하고 이겨야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당신 하나 믿고 결혼해서  변두리 좁은 아파트에서 육아 때문에 지친  하나를 이겨서 뭐하려고 그래? “




  그 질문을 받고는 문득 큰 깨달음과 함께 할 말이 없었다. 그러고 보면 아내가 집안일에 몸이 힘들고, 육아가 피곤해서 잠이 올 때, 바쁘게 일하다 자신은 미쳐 못 챙기고 배고플 때 했던 부부싸움은 대개는 아내가 먼저 화해를 청하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땐 내가 철이 없었다. 결혼에 대한 깊이 있는 생각이나 비전 없이 그냥 필요조건, 즉 사랑하는 사람, 나름 괜찮은 직업 그리고 살 집이 마련되었기 때문에 결혼하면 되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충분조건, 임신 출산 육아 등에 대한 결혼관, 인생의 동반자에 대한 포용력, 그리고 한 사람의 남편, 자녀들의 아버지로서의 존재 이전에 대한 깊은 성찰이 없었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지금 보다 훨씬 일찍 아내에게만큼은 눈 깔고(?) 살았을 텐데, 이젠 나이 먹고 철들어서 눈 깔고 살다 보니 별로 생색이 안 난다. 그래도 남자들은 죽을 때까지 철 안 든다는데 조금이나마 철든 내가 잘하는 건지 모르겠다. 어느 유명한 영화감독은 ‘ 절대로 철들지 말자 ’가 인생의 모토란다. 남자는 철들면 재미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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