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날 Dec 27. 2020

잠시 쉬어가도, 조금 달라도, 서툴러도 괜찮다

리틀 포레스트


 얼마 전 브런치에 어머니를 소재로 한 좋은 글을 읽다가 문득 아내가 얘기했던 말이 생각났다. 하느님께서 우리 모두를 일일이 사랑으로 돌보다가 혹시 놓치는 게 있을까 하느님을 대신해서 우리에게 어머니를 존재하게 했다는 말을 했다. 일상생활을 하면서 아내가 아이들을 챙기는 걸 보고 있으면 정말 그렇지 않을까 생각할 때가 많다.


 언젠가 삼십 대 중반의 회사 후배의 말이 생각난다. 자기는 일 년 전에 결혼을 하고 난 후 씻을 때마다 욕실에 머리카락이 많이 빠져있어서 처음엔 무척 놀랐다고 했다. 그래서 회사 생활의 스트레스로 그런 줄 알고 친정에 갔을 때 어머니에게 얘기를 했는데 어머니께서 얼마나 머리카락이 빠지냐고 물어보더니 웃으시면서 시집가기 전에 집에서 생활할 때도 그 정도는 늘 빠졌다며 그녀가 출, 퇴근한 후 욕실을 청소한 경험을 말해주며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단다. 그 후배는 늘 아침, 저녁으로 욕실을 사용했지만 한 번도 스스로 욕실 청소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사실을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그 후배는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어머니의 사랑을 많이 받고 생활했는지를 뒤늦게 깨닫고서 많이 울었다는 얘기를 했다. 직장생활을 하며 바쁘게 매일매일을 살아가는 후배들은 대개 종류는 다르지만 어머니의 무한하고도 일방적인 사랑에 대한 비슷한 경험들을 말했다.


 우리 인간이 무척이나 똑똑한 것 같지만 나이가 삼십 대 중반 아니, 그 이상이 되어야 이런 깨달음을 경험을 통해야만 얻을 수 있는 존재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유한한 지식을 가지고 무한한 인생의 비밀을 알려고 하면 할수록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질 수밖에 없다.



 며칠  ‘리틀 포레스트(‘2018, 임순례 감독) TV 채널에서 늦은 밤에 다시 방영해주었다. 영화가 대단 흥행을 한건 아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일본의 동명 영화 이상으로 호평을 받았다. 아시다시피  내용은 무척 단순하다.


 도시 생활에 지친 주인공이 다시 고향집으로 내려와서 부재중인 엄마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어릴 때 자신에게 엄마가 만들어주었던 음식들을 하나둘씩 기억을 소환해서 만들어 먹으며 지친 삶을 위로받고 추억을 함께 나눈 소중한 친구들과 어울리며 치유해 가는 과정을 그린 내용이다.



 오늘날의 시대 트렌드인 먹방과 여행, 그리고 하우징에 대한 관심과 매력을 잘 반영하고 있는 영화였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마음속에 자기만의 리틀 포레스트를 하나쯤은 꿈꾸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가만히 그 마음을 들여다보면 시골, 자연, 음식이 그리운 게 아니라 일과 인간관계의 바쁜 일상에 지친 도시인들이 무언가 그 자신이 위로받고 쉬어갈 수 있는 그런 마음이 머물 곳을 꿈꾼다.


 행복에 대한 개념도 사회의 발전과 함께 많이 변화하고 진화해 가고 있다. 이제 뭐 남들의 시선을 의식한 거창한 업적이나 결과가 아닌 자신만의 소소하고도 확실한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맛있는 음식, 새로운 경험으로 이끌 수 있는 여행, 그리고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오롯이 자신을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이 중요한 시대로 우리들의 존재는 이전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사회가 진화 발전한다고 해도 우리 상호 간의 인간관계에서 느낄 수 있는 행복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자신만의 리틀 포레스트도 결국 아무 소용이 없다. 어쩌면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가두는 성이 될지도 모른다. 산으로 가든, 바다로 가서 살든 그곳의 이웃들과 담을 쌓고 살 생각이라면 어쩌면 자신만의 리틀 포레스트를 찾기보다는, 일상에 지친 도시인들에게 잠시라도 위로와 휴식을 제공할 수 있는 리조트가 맞을지도 모르겠다. 주변의 이웃들과 어울려 살 수 있는 열린 마음이 없다면, 또한 즐겁고 보람된 공동체 의식이 없다면 우리 자신만의 리틀 포레스트는 한낮 모래성이 될 수도 있다.


비봉습지공원


 또 이쯤에서 언젠가 또 다른 후배가 말했던 아빠와의 저녁 식사 얘기가 생각난다. 그녀의 아빠는 가족을 위한 생계와 사회에서의 자신의 역할 때문에 사랑하는 딸이 대학을 졸업할 때에야 처음으로 둘만의 저녁 식사자리를 마련했다고 한다. 그 후배는 사랑하는 딸의 대학 졸업을 축하해주기 위해 아빠가 미리 예약한 멋진 호텔 식당에서 둘만의 저녁 식사를 했다고 한다.


 몇 마디 서로 안부를 묻고는 한 시간 조금 넘게 이어진 식사 내내 서로 할 말이 없어서 더 이상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 후배의 생애에서 최초로 이루어진 아빠와의 저녁 식사자리는 그렇게 어색하게 끝나고 말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 후배는 집에 돌아와서 사랑하는 아빠와의 저녁 식사 내내 아무 할 말이 없었다는 그 사실이 너무 슬퍼서 밤새 많이 울었다고 했다.




 우리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누구의 잘못도 아닌, 우리 모두가 치열한 삶의 한가운데에서 서로가 정신없이 살다 보면 무엇이 소중한지 놓치는 부분일 수도 있다. 그러한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살아간다면 우리가 꿈꾸는 그 어떤 리틀 포레스트조차도 또 다른 세상의, 또 다른 자신만의 감옥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세상에서 제일 가치 있는 것들은 항상 같이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더욱 그렇다.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우리, 잠시 쉬어가도, 조금 달라도, 서툴러도  괜찮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