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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Mar 20. 2021

돈은 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니 걱정이나 해

돈 걱정 안 하고 살고 싶다


 처음 겪어본 lMF로 어수선하던 90년대 말이 지나고 마치 새로운 세상이 올 것만 같았던 새 밀레니엄 시대인 2000년이 되었다. 코로나 백신처럼, 지금도 그렇지만 각종 매스컴에서 호들갑을 떨면서 밀레니엄 버그로 세상이 망하고 하늘을 날던 비행기가 갑자기 추락하고 모든 은행은 버그로 인해 문을 닫는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겁을 주었지만, 그 덕분인지 현실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회사 생활도 10년이 훌쩍 넘어 팀장 자리를 맡고 있었고 업무가 많긴 했지만 나름 회사생활에 대한 이치를 깨달은 탓에 경중과 완급을 가려서 효율적으로 일을 할 수 있었다. 또한 IMF 위기 속에서 우리 회사도 삼분의 일의 인원을 구조 조정하는 큰 아픔도 있었지만, 국난극복이 취미인 지혜로운 국민들 덕분에 금 모으기를 통해서 생각보다 빨리 IMF를 벗어나면서 조금은 여유를 찾았을 때였다.


여수 오동도


 새천년이 되었는데 나의 생활은 회사와 집을 오가며 특별히 새로울 것도 없는 루틴 한 생활이었다. 어느 날 회사 동료와 함께 이런 루틴 한 현실에서 벗어나 무언가 가슴이 설레는 일을 해보자며 도원결의를 맺었던 일이 주식투자였다. 지금 이십 년 만에 느껴보는 주식열풍의 상황이 그때와 비슷했다. 각자 천만 원을 투자해서 주식투자를 하고 매일 아침 출근해서 설레는 마음으로 컴퓨터를 켜면 오늘은 첫 거래에 얼마나 오를까 기대가 되고 설레는 아침을 맞을 것 같은 희망과 함께 ‘MJM 펀드’를 만들고 즉시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


 말만 묻지마 펀드지 투자는 각자 마련한 천만 원을 00 회사 주식에 함께 투자하는 방식이었다. 아내는 새로 이사한 아파트의 대출금을 떠안고 문화비와 외식비를 아껴서 천만 원 적금을 어렵게 부어 6개월 후면 탈 수 있었는데, 그 적금을 손실을 안고 해약하고 돈을 더 보태서 새천년을 맞아 무언가 설레는 아침을 맞고 싶다는 철없는 남편을 믿고 지원해주었다. 그때는 주식회사 이름에 테크, 시스템이란 말만 붙어도 주식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뛸 때였다.



 주식에서는 초보인 나는 후배 말만 믿고 그가 추천한 ‘00 시스템’ 주식에 대박의 꿈을 안고 분산투자 없이 아내가 구렁이 알같이 모은 천만 원을 몽땅 투자했다. 하지만 결과는 그 주식을 사고 난 후 하루만 딱 오백 원 오르고 난 후 다시는 오른 적이 없었고, 결국은 감자까지 당하고 나중엔 그냥 휴지 조각이 되었다. 내 기억으로는 첫 주식 투자 후 휴지조각이 될 때까지 채 삼 년이 걸리지 않았다.


 아내가 가끔 한 번씩 궁금해하며 물어볼 때마다 주식이 삼십 퍼센트씩 떨어져 있었지만 솔직하게 말해줄 수가 없었다. 나는 아내에게 주식투자는 요즘 방송에 자주 나오는 존 리 선생님의 말처럼 회사와 동업을 하는 마음으로 장기투자를 하는 것이라며 궁금해하지 말라고 말했다. 결국 핑계였지만  우리 회사는 고속 성장하는 회사라 너무 업무가 바빴고 게다가 수시로 해외출장을 다니다 보니 주식투자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더 진솔한 핑계는 주식이 매일 내려가기만 했으니 설렘보단 매일 아침마다 일단 열부터 받고 업무를 시작했으니 들여다보기가 싫었다. 그냥 본전 생각만 하면서 언젠가는 오르겠지 하고 무관심, 무책임이 부른 당연한 결과였다.



 새천년이 되면서 루틴 한 일상에서 설렘과 함께, 성공적인 투자의 결과로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던 주식 대박 부자들처럼 돈 걱정 안 하고 살아보는 게 꿈이었지만, 주식투자를 시작하고 난 후 나는 매일 아침마다 돈 걱정하는 게 하루 일과의 시작이었다. 아내가 먹는 것, 입는 것 아껴서 모아놓은 거금 천만 원을 하루아침에 다 말아먹고 매일이 돈 걱정을 해야만 했고, 가끔 그 목돈의 안부를 묻는 아내 앞에만 서면 난 한없이 작아져야만 했다.


 그리고 그 MJM펀드가 투자한 회사 주식이 감자를 당하고 그 후 결국 휴지조각이 되고 나서야 아내에게 이실직고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아내가 내게 했던 단 한마디는 왜 중간에 손절매를 하지 않았냐는 질문이었다. 그럼 절반이라도 건졌을 텐데 그 사실이 내게 가장 아쉬운 점이고 무책임하다며 컴플레인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주식투자는 반드시 필요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아내에게  나는 생존을 위해서 내 인생에서 앞으로 주식투자는 절대  안 하겠다고 맹세를 해야만 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대등하고 평등하기만 했던 우리 부부관계가 그날 이후 내가 늘 갑을관계의 을(乙)도 아닌 병(丙) 같은 존재가 된 것만 같았다. 돈 걱정 좀 안 하고 살아보겠다는 대박의 꿈과 희망, 그리고 약간의 설렘으로 시작한 주식투자는 그 반대로 매일매일이 내가 투자한 그 목돈에 대한 걱정으로 변했으니 얼마나 아이러니한 상황인가.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MJM펀드, 말 그대로 묻지마 투자의 폐해였다. 돈 걱정만큼 우리에게 쓸데없는 걱정은 없다. 왜냐하면 돈은 늘 어딘가에, 누군가에게 잘 있으니까. 돈 걱정을 하기보다는 내 걱정, 나 스스로의 삶에 대해 더 걱정하고 집중해야 했다. 그리고 내 인생에 대해서 좀 더 진지해야만 했었다.



 그 00 회사 주식투자에서는 손절매를 못했지만, 그때 내가 현명하게 그 주식투자에 손절하지 않았다면 지금 생각해 봐도 아찔하기만 하다. 아마도 본전 생각에 영끌, 빚투에 초심을 잃고 본진인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한편, 그 주식 투자 결과가 좋았으면 투자 대박과 함께 내가 원하지 않았던 삶을 살게 되었을 것이다. 회사 생활에 대한 집중이 쉽지 않았을 것이고, 갑자기 굴러들어 온 큰돈에 그동안 회사생활에 눌려있던 절제가 풀리면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운 욕망이 날개를 달았을 것 같다.



 또한, 만약 더 큰 투자로 손실이 계속되었다면 투자 실패로 인해 자신감과 자존감이 낮아져 회사 일을 그만두고 무언가 돈을 좇는 일에 집중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랬으면 경험적으로 그런 균형감각을 상실한  탐욕의 마음가짐에서는 절대 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것임은 물론이다.


 새로운 밀레니엄의 설렘과 함께 시작한 주식투자는 결국 내게 큰 깨달음을 안겨주었으니 나는 투자 실패에 대한 후회보단 나름 큰 소득이 있었다고 생각했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 얻으려면, 반드시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하나 내놓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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