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꿍꼬또 꿍꼬또 나 귀싱꿍꼬또

난 귀욤 뽀짝 신생아니까 요정도 짧은 혀는 용서해주자앙;

by 빨양c


‘응? 이거 꼬라지가.. 또 꿈 속인 거 같은데’

아빠의 기가 막히는 말전 불침번 얘기에 오늘 밤새 칭얼대기로 마음먹었건만, 이 꼴을 보니 나는 분명 잠이 들었나 보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광경이 예전 꿨던 꿈속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저 멀리 뭔가 보이는데 흐릿하게 보여 나는 내 작은 두 주먹 고기로 눈을 비비적비비적해본다.


‘음.. 저 새까만 옷은 그때처럼 염라인 거 같고, 그 옆에 새하얀 건 뭐지.. 음 낯이 익은데 뭐더라..’

그 둘 주변은 온통 새까만 붉은빛이다. 새빨간 하늘과 더 새빨간 바닥 그리고 그 옆엔 칠흑 같은 핏물 색의 물결이 치는 끝이 보이지 않는 어떤 공간. 그 위를 염라와 하얀 무언가가 나란히 걸어가고 있다. 아니 정확히는 둥실둥실 떠 어딘가로 향하고 있다.

‘아! 생각났다. 지난번 꿨던 꿈에 나왔던 그.. 천사랬나? 마가렛이랬나? 머글래였나? 음.. 아냐 아냐. 아! 미카엘! 그 천사구나. 기특한 0세 기억력. 헤헷’

물론 그 천사가 날 알리는 없지만, 나는 잊었던 조리원 신생아 동기라도 기억난 듯 괜히 뿌듯했다.

저번 꿈에 염라가 나를 째려봐 화들짝 깼던 기억이 나, 이번에는 최대한 염라의 시야에 닿지 않는 곳까지 조심조심 둥실둥실 떠서 접근해 본다. 그들의 대화가 조금씩 들려온다.

“하. 해주신 님은 어딜 가신 건지. 미카엘 너 진짜 아는 거 없어?”

염라가 특유의 음침한 목소리로 쏘아붙이듯 말한다.


“헤헷. 야 염라. 너무 신경 쓰지 마. 그래도 창조신 셋 중 하나신데 뻘짓하시겠나?"

찌잉-

오! 저 미카엘이라는 하얀 천사의 목소리는 처음 들어보는데, 천사라 그런가, 뭐랄까. 목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라 저 하얀빛에서 소리가 우웅 우웅 울리는 듯한 신기한 느낌이다.

“다른 두 분과 달리 해주신 님은 어디로 튈지 모른다니까. 너 처분하는 재판장에 잠깐 나타나시더니

<염라 너 소멸될 정도 아니면 당분간 찾지 마. 나 바쁨.> 한 장 써놓고 바로 사라지셨어. 너 알지? 그분 저번에 현생 놀이하러 간다고 아무도 모르게 현생 갔던거? 우리 못찾게 그때 개였나 고양이였나 그 모습 하시고는. 으휴. 니가 몰라서 그래. 진짜 진짜 어디로 튈지 모른다니까.”

이 말을 하며 왜인지 염라가 그 천사를 슬며시 의심하는 눈초리로 째려보는 것 같다. 마치 뭔가를 확인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그래? 그분 동물 좋아하신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그렇게까지? ㅎㅎ 귀여우시네 헤헤. “


“됐다 됐어. 너한테 뭘 바라겠냐. 너 근데 옛날 네 번 현생 했을 때 해주신 님이랑 뭐 있었던 거 아냐? 내가 알아본 바로는 이상하게 너 현생 했을 때 꼭 해주신 님이 자리를 비웠단 말이지?”

본인의 의도와는 달리 그 천사가 선뜻 본심을 말하지 않자 염라가 못 참고 대놓고 질문을 던진다.

“응? 그래? 글쎄. 난 그분 본 적도 별로 없는데 뭐. 특히 천국에 있을 땐 한 번도 못 봤고. 얼마 전 재판장에서 한번 본게 단데?.”

천사가 어깨를 으쓱한다. 천사도 어깨가 있구나. 하긴 염라가 말도 하는 판국에 뭐.


“그나저나 나는 왜 삼신 만나러 가는데 지옥을 거쳐야 하는 거래? 그냥 바로 현생 하러 가면 되는 거 아님?”

“아, 너는 보통 인간의 혼과 달리 천사인 상태잖아. 인간으로 현생 하려면 먼저 천사로서의 기억도 지워야 하고, 외형도 바꿔야 하거든. 이렇게 지옥을 지나면 그 모든 게 가루가 되어 사라지고, 모든 지옥을 지나면 결국 네가 천사였단 사실도 잊히지. 아무도 모르게 돼. 너 조차도. 뭐. 창조신들과 나 정도만 기억할까? 삼신도 모를 걸? 맞나? 잘 모르겠다 나중에 확인해봐야겠네. 이런 경우가 워낙 특이한 경우라 어찌 될는지.”

잠시 숨을 고른 염라가 말한다.


“근데 정말 괜찮겠어? 그걸 위해 니 존재를 지우면서까지 현생 한다는 게 나는 좀..”

아쉬움 섞인 염라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한다.

나는 염라의 그런 다양한 표정 변화에 새삼 놀랐다. 나랑 있을 때는 항상 과묵하달까? 엄숙하달까? 엄한 표정에 매서운 눈초리만 부라리더니. 저렇게 나름 다정한 면도 있었구나. 왜인지 괜히 서운한 마음도 드는 거 같구. 근데 그걸 위한다고? 그게 뭔데? 궁그매으앙! 하마터면 궁금해서 염라 앞으로 뛰쳐나갈 뻔했다.

“아 그래? 다 사라진다라.. 뭐. 이미 정해진 거니 따라야지.

음.. 그나저나 여긴 무슨 지옥이길래 이렇게 조용해? 저 혼들은.. 응? 자는 건가? 이렇게 편한 지옥이 있단 말은 못 들어봤는데.”

“편해 보여? 하긴. 다른 지옥과 달리 여긴 피도, 눈물도, 육신의 고통도, 영혼의 분쇄도 없긴 하지. 저들은 그저 잤다 깼다를 반복할 뿐. 무한 반복. 현생 시간으로 따지자면 1시간 간격쯤 될까? 다른 고통은 없어. 그리고 저 상태로 아무것도 못하고 유일하게 허락된 건 옛날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 본인들의 죄가 소멸되는 날까지 잠을 못 자게 된다는 사실뿐. 잠을 못 자는 고통만큼 지옥 같다는 말에 걸맞은 것도 또 없거든.”

나는 염라의 이 말에 깜짝 놀랐다. 왜냐면 염라의 말에 잠들기 직전 아빠의 말전 불침번 이야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거 가만 보니.. 나 잠들었다고 솜뭉치 요게 장난치는 거 아냐? 아빠 잠 못 자게 밤새 괴롭히려고 했던 나 괴롭히려구?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꿈이 생생할 수가 있나? 그것도 아빠의 그 이야기에 딱 맞게 말야. 흐음. 수상해수상해! 구린내가 난다구.'

의심이 들었지만 꿈속의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깨닫고는 그저 조용히 둘을 더 관찰해보기로 한다. 둘은 잠을 못 잔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형벌인지에 대해 한참이나 대화를 나눈다.


그 대화를 듣고 있자니 괜히 나 때문에 잠을 못 자는 엄마 아빠 생각이 나서 마음이 무겁다.

나는 배고프면 응애! 기저귀 갈아달라고 응애!

춥다고 응애! 덥다고 응애! 습하다고 응애!

모로 반사 때문에 놀래서 응애!

낮이고 밤이고 엄빠가 자던 말던 신경도 안 쓰고 빽빽대며 울어댔기 때문에 엄빠도 어쩌면 저런 지옥 같은 고통을 느끼고 있는 건 아닌지 괜히 뜨끔했다.


아까 아빠 불침번 이야기 들을 때는 화가났는데, 저 둘의 대화를 들으니 괜히 엄빠에게 미안하다가.. 고마운 마음이 든다. 저렇게까지 힘든 걸 엄빠는 오직 나를 위해서 견디고 참고 있다니.

나라면 못할 거 같다. 절대 절대.

'잠에서 깨면 엄빠 말 잘 들어야지. 분유도 한번에 다 먹어야지. 모유 먹고 싶다고 조금만 칭얼대야지.

조금만 참아요 엄빠. 내가 라디오에서 들었는데 100일의 기적이란 것도 있대요. 그때면 나 통잠 잘 수 있대! 토닥토닥. 진짜 진짜 고마워요 엄빠.'

나는 그렇게 한참을 잠못자던 엄빠이 모습을 생각하며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자, 여기가 마지막 지옥불이야. 저 위로 나가면 아까 말한 대로 천사였던 네 모든 것을 아무도 기억 못 하게 돼. 물론 너 포함. 뭐 마지막 할 말이나 부탁 있음 하고?”

염라가 목소리를 저렇게 아쉽게 낼 수 있다니. 나랑 있을땐 엄청 쌀쌀하더니! 흥.


"음. 그럼 나 1분만 잠깐 어디 좀 갔다 와도 돼? 중요하게 남길 게 있었는데 까먹었네 헤헤."


"1분? 그거면 되겠어? 염라의 권한으로 더 줄 수도 있어. 얼마든지."


"1분이면 충분해.

1분이면 많은 걸 바꿀 수 있는 시간이라고 누군가 내게 말했거든."

그 말을 남기고 하얗게 빛나던 천사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정확히 1분 후 그들은 다시 만났고,이 잠 못 드는 지옥에서 사라졌다.


'흐음. 이제 아무것도 없는데 도대체 꿈은 언제 깨는 거람. 아니 이딴 꿈은 왜 자꾸 꾸는 거야 정말. 삼신 불러다 물어봐야 하나 이거! 으 귀싱 꿈 시르다시르다 정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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