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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양c Jan 29. 2024

1.죽기 싫어서 좋무원을 때려칩니다.

#박 주사 이야기1




'너무 싫다. 죽고 싶다. 죽고 싶어. 죽었으면 좋겠어. 죽자. 이렇게 살바엔 죽어. 콱 죽어버리자!!!'


어젯밤 자신의 모습이 떠오른 박 주사가 책상 앞에 앉아 연거푸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다.


"분명 어젯밤에만 해도 그럴 생각이었는데, 이 아침 나는 또 이러고 앉아있네... 하! 인생 참."

나는 어젯밤 죽을 생각이었다. 왜냐고?

이 망할 책상에 앉아있기 싫어서. 그리고 내 옆에 저 망할 주사란 것들 꼴 보기 싫어서. 그런데 아침이 되니 당연하다는 듯 아침 8시 59분 출근 도장을 찍고 이렇게 책상에 앉아있다.

나는 뭣도 없는 대한민국 8급 지방 일반 행정 공무원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9급이었는데, 동기들 중 꼴찌로 간신히 8급으로 승진을 했다. 승진을 하면 좋을 줄 알았는데 딱히 특별한 건 없었다. 오히려 이 망할 직장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밖에 안 든다. 아니면 그냥 콱 죽어버리거나.


나는 어제 민원인이 던진 볼펜에 눈두덩이를 얻어맞았다. 재수 없게도 볼펜 끝 뭉뚝한 부분이 아닌, 뾰족한 펜 쪽으로 맞는 바람에 병원에 가서 세 바늘을 꿰매어야 했다. 분명 맞은 건 나인데,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있는 것도 나였다. 뭐를 잘못했는지도 모른 체, 자기의 세금으로 먹고 산다고 소리쳐대는 민원인에게 사과를 해야만 한단다. 그게 공노비, 아니 공무원인 거라고. 8급이 되면 좀 나아질 줄 알았는데, 역시나 특별히 다를 건 없었다.


그렇게 병원에서 눈을 꿰매고 집으로 가는 전철 창밖으로 한강 다리 너머 반짝이는 야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그 야경이 너무 예뻐서,

음, 그래. 정말 너무 예뻐보여서

그냥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멈추지 않는 전철을 핑계로 멍청한 눈으로 야경을 바라만 보고 앉아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집으로 가 평소처럼 잠이 들고, 평소처럼 눈을 뜨면, 또 평소처럼 그 망할 민원인을 상대해야하는 책상에 앉아 사과를 하고 있겠지.

아니면 또 이렇게 쳐맞고 있거나.

아, 근데 왜 청원 경찰은 날 도와주지 않았던 거지? 모르겠다. 아 맞다, 내가 근무하는 곳에 청원 경찰은 딱 한 명밖에 없지. 일하는 공무원이 천명이 넘는데, 그 한 명이 무슨 수로 날 지켜주러 와줄 수 있었을까.


민원인에게 얻어맞았는데, 공무원인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심신의 안정"을 위해서 2-3일 휴가를 내거나, 아니면 그냥 언젠가 좋은 날 올 거라 믿고 출근하거나 둘 중 하나란다. 망할. 그냥 어제 죽었어야 했는데. 아니, 내가 죽는다고 누가 관심이나 가질까. 그때 그 공무원도 그냥 잊혀지던데.


<만 20세의 나이로 최연소 7급 공무원이 된 A씨. 타살 정황이나 의문점 발견 안돼. 사망 원인은 비공개..>


머릿속에 얼마 전 사내 소식 창에서 봤던 뉴스기사가 떠오른다. 나보다 나이도 열 살이나 어리고, 급수도 무려 7급 주사님이나 되시고, 최연소로 공무원에 합격해 티브이까지 출연했던 그 공무원이 죽었다는 뉴스였다. 사망원인은 비공개라지만, 누구나 알고 있는 그 이유겠지. 그리고, 뉴스가 그렇게 나오고 그냥 잊혀졌다. 공무원은 그렇게 죽어도 그냥 개죽음으로 치부되기 십상인, 잘난 시민분들의 그 대단한 세금으로 먹고사는 공노비들일뿐이고, 그 공노비의 개죽음에 관심가지실 시민 분들은, 적어도 지금 내가 살고있는 이 세상엔 없다.


"하- 죽고 싶다..."

모니터에 오늘 들어온 민원의 개수가 표시된다. 민원을 하나 열어봤는데, 그 사이 민원이 7개가 추가된다. 하나도 처리를 못하고 있는데, 7개가 더 생기면,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저 망할 우리 과 <서무>는 아침부터 왜 저리 부지런한건지. 아니면 나한테 뭔놈에 앙심이 있길래 이리 국민신문고 민원을 내게 뿌려대는건지. 다 망해버렸으면. 하!


"하하하- 반가워요! 잘생기셨네! 그래, 나이가 좀 있다고 들었는데 어디, 회사라도 다니다 온 건가?"

한숨을 푹푹 쉬고 있는데 저 멀리 팀장님보다 높으신 과장님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아침부터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큰 웃음소리가 거슬린다. 8급 나부랭이인 나는 죽을까 말까를 고민하고 있는데, 저 과장 놈은 하루하루 출근이 행복한 모양이다. 괜히 억울한 마음이 든다. 눈을 모니터 옆으로 쪼금 빼꼼 빼 과장을 째려본다. 내 눈에 파란 넥타이를 맨 나보다 어려 보이는 웬 남자가 하나 들어온다. 그와 동시에 죽이고 싶은 옆 주사들의 속닥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쟤가 오늘 새로 발령받은 앤가보지? 첫인상은 좋네."

"그러게. 성이 주 씨 래던데? 그럼 주 주사라고 불러야 됨? ㅋㅋ"

"어디 항공사에서 10년인가 근무하고 온 거라던데? 그래서 그런지 옷빨 잘 받네. 결혼은 했으려나?"


'결혼 안 했어도 너 같은 인성 개차반이랑 누가 결혼이나 한대? 그것도 이제 막 7급 간신히 단 공노비 나부랭이 주제에.'

다 들리는 속닥거림을 듣고 앉아있자니 귀를 접어서 귓구멍을 막고 싶다. 왜 귀 연골은 내 의지로 못 움직이는 걸까.


"아, 네 과장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주 주사라는 파란 넥타이의 정장 남자가 과장에게 너스레 웃음을 떨며 말한다. 역겹다. 공무원 처음 되니 저런 말이 잘도 주둥이에서 나오는 걸 거다. 한 1년? 아니 딱 석 달만 여기 있어봐라. 나처럼 그만두고 싶어 질걸? 아니면 죽고 싶어 지거나.


'하! 죽지 않으려면 이 망할 공무원을 때려쳐야하는데... 너무 싫다!!!'

왼쪽 눈 위 민원인에게 얻어맞은 부위가 욱신거린다.


그 좋은 좋좋소 사기업을 때려치고 왜 이따위 좋무원이 된건지

정말 이해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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