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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양c Feb 05. 2024

2.좋좋소를 꿈꾸는 좋무원

#박 주사 이야기2






"근데 왜 사기업 그만두셨어요? 사기업 좋지 않아요?"


건물 밖 흡연구역에서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주 주사에게 물었다. 주 주사는 담배를 안 피운다고 했지만 나는 피고 싶으니까 잠깐 끌고 나왔다.

'싫어도 어쩔 거야? 짬딸린 9급 신입 좋무원 주제에.'


흩어지는 담배연기 사이로 초면에 이런 걸 묻는 게 실례인 건가 싶은 생각이 정확히 0.3초 들었지만, 당장이라도 이 좋같은 좋무원을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은 그런 0.3초 따위를 비웃으며 질문을 던진다. 꼭 어제 민원인에게 얻어맞아서가 아니어도, 늘! 항상! 언제나! 이 거지 같은 좋무원 때려치울 생각뿐인 나여거 그런지. 이런 좋무원보다 훨씬 좋을게 분명한 사기업을 때려친 주 주사의 이유가 궁금했다. 나로선 이해할 수가 없었고, 이해할 수 없는 건 그냥 물어보면 그만 아닌가? 그게 초면이든 아니든. 어차피 나보다 짬딸린 9급 나부랭이니 말이다.


"네? 아... 음... 그냥 뭐 개인적인 여러 가지 사정이 있었죠. 그리고 당연히 사기업보단 공무원이 더 좋잖아요! 하하."

내 질문에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짓던 주 주사가 이내 원래의 평온한 표정으로 답한다. 뻔한 답이다. 어제 내 눈두덩이에 상처를 선물하고 홀연히 사라진 민원인도 그렇고, 손가락 워리어들로 가득한 인터넷 세상에서도 그렇고 늘 이 시대 공무원은 막연히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뻔하게도.

그리고 그 이유는 늘 똑같다.

요즘같이 불안정한 시대에 절대 잘리지 않는 직장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모든 면에서 좋은 것 아니겠냐는 생각. 그런 뻔한 철밥통.


'흥. 그놈에 철밥통 철밥통. 하도 철밥통이라 철도 녹슬고 밥도 썩었겠다. 지겹고 뻔하네. 이 주 주사란 사람도.'

나는 괜히 분한 마음이 들어 주 주사를 위아래로 훑어본다.


주 주사는 당장이라도 저 미생 같은 드라마에서 튀어나올 법한 각 잡힌 정장을 입고, 헤어스타일도 과장이나 국장 같은 높은 어르신들이나 좋아할 법한 아주 깔끔한 댄디 컷을 하고 있다. 얼굴은 나와 동갑이라고 해도 될 만큼 앳되보이긴 하는데, 확실히 열 살이나 차이가 나서 그런지 순간순간 눈빛이나 입가의 웃음들에서 연륜이 조금 묻어나는 것 같기도 하다.


저 뽀로로 같은 동그란 안경만 바꿔도 원래의 나이처럼 보일 것 같긴 한데 굳이 왜 저런 어려 보이는 안경을 쓴 건지 모르겠다. 아, 그냥 어려 보이고 싶은 건가. 아까 과장이 소개해줄 때 들어보니 나랑 열 살 차이, 마흔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하긴... 마흔 줄에 들어가면 어려 보이고 싶긴 할 것 같다. 그것도 그 나이에 신입으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해야 하니, 동기 또래만큼 어려 보이고 싶기도 하겠지. 늙다리 신입은 참 잘도 받네. 사기업은 이런 게 없다고 하던데. 나이에 맞게 신입을 뽑아야지, 나보다 나이 많은 신입을 후배랍시고 던져주면 그 어색함을 어떻게 하라는 건지. 도대체가 이 좋무원 채용시스템은 이해할 수가 없다. 그저 이렇게 던져놓고 알아서 가르치라고 할 뿐. 뭐, 그렇다고 내가 뭘 가르칠 생각은 당연히 없다. 아무렇게나 던져 준 윗대가리 것들처럼, 나도 그냥 던져놓고 알아서 적응하라고 하면 그만인 걸.


'그렇게 해도 어쨌든 안잘리는, 그래 니들이 툭하면 말하는 그 잘난 철밥통의 장점이 이런 거 아니겠어? 나도 그 썩지도 않는 철밥통 좀 써먹어야지.'


"근데... 저희 과에 남자는 주사님이랑 저 밖에 없나 봐요?"

주 주사가 열 살이나 어린 내 눈치를 보며 어렵게 물어온다. 별 대단한 것도 아닌데 어려워하는 척을 하는 게 가소롭다. 전형적으로 나이는 사회생활에서 중요치 않고, 직급이 중요하다는 잘 조련된 직장인의 말투다. 뭐, 직장생활 좀 해봤다 이거지?


"네. 저희 과에는 과장님, 그리고 팀장님 세 분 중 두 분. 그리고 저. 이렇게 밖에 없어요. 높으신 분들 빼면 결국 저 혼자죠. 아니, 이제 둘이네요. 주 주사님이랑 저."

담배 연기를 다시 한번 길게 내뿜으며 주 주사에게 말한다. 비흡연자인 주 주사는 분명 담배 연기가 불편할 텐데도 얼굴에는 아무런 불편한 기색도 느껴지는 것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사기업 10년 차면 저렇게 얼굴 표정도 조절할 수 있나 보지?'

왜인지 9급 신입 좋무원 답지 않은 주 주사의 태도가 괜히 불편하게 느껴진다. 사실상 잡일 하는 남자가 나랑 주 주사 둘이라는 의미인데 주 주사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알겠다고 말하고 만다.


'아직 모르겠지. 이 좋같은 좋무원 조직에서 달랑 남자가 하나, 아니 이젠 둘이지. 그래, 둘 밖에 없다는 게 얼마나 거지 같은 일인지...'

나는 피우던 담배를 바닥에 떨어뜨려 구멍 뽕뽕 난 크록스 사이로 불똥이 들어오지 않게 비벼 끈다.


"그만 들어가시죠. 날도 더운데. 아, 사무실도 덥긴 하지만."

공공기관이라는 이유로 에어컨이 있어도 하나도 시원하지 않은 사무실이지만, 그래도 작렬하는 햇빛에 얻어맞는 것보단 나으니 나는 서둘러 들어가자고 한다.

크록스를 질질 끌며 사무실로 향하는 길, 앞으로 이 신입같지 않은 신입인 주 주사를 업무적으로 어떻게 대해야할지 걱정이 스친다. 무려 8급이나 된 내가 왜! 9급 신입 나부랭이를 가르쳐야 하는 건지. 짜증이 치민다. 잠깐사이 땀으로 범벅된 셔츠를 털어 바람이 조금이라도 들게 해본다. 뒤따라오는 주 주사를 보니 이 더위에도 정장 자켓을 철갑처럼 둘러입고 있다. 그것도 시퍼런 넥타이까지 목에 꽁꽁 싸메고. 겨땀이 줄줄 흐를 것만 같다. 그래서 자켓을 안벗는건가? 보기만 해도 답답하다.

'설마 사기업 다니면 이 더위에도 자켓을 못벗는 건가? 아니지, 사기업은 우리랑 달리 에어컨 빵빵하게 틀어 사무실이 추워 옷을 더 입어야 한다던데… 부럽다 부러워.‘


바로 그때 머릿 속에 한가지 좋은 생각이 든다.

비록 오늘은 원하는 대답을 듣진 못했지만 앞으로 이 주 주사가 왜 사기업을 그만뒀는지 계속 캐물어봐야겠다. 아니, 사실은 사기업의 좋은 점에 대해서 듣고 싶다.


그래야 내가 하루라도 빨리 이 망할 좋무원을 때려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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