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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양c Feb 12. 2024

3.와~ㄱ같은 인수인계(꼬라지보소?)

#박 주사 이야기3




"뭐야뭐야?~ 박 주사~ 벌써 선임 노릇 하는 거야? 호호. 쉬엄쉬엄 해~ 우리 주 주사님 첫날부터 갈구지 말고. 호호!"


조금이라도 시원할까 기대를 아주 조금 안고 들어선 사무실의 푹푹 찌는 열기를 그대로 얻어맞고 들어오는데 옆자리 고 주사가 나를, 아니 정확히는 나와 주 주사를 향해 말한다. 저 여자는 왜 저렇게 목소리가 큰지 모르겠다. 눈치 없는 건 더 모르겠고.


'언제부터 그렇게 관심이 많으셨다고 말을 거시나? 나이도 어린 게 꼴에 선임이라고 따박따박 반말로. 재수 없어. 하. 때려치고 싶다 진짜.'

어제 민원인ㄴ에게 얻어맞은 망할 눈두덩이 상처에서 금방이라도 피가 뚝뚝 떨어질 것 같다.


고 주사는 이 팀에서 내 사수다. 망할.

뭐, 사수란 표현을 공무원들이 잘 안 쓰긴 하지만..

옆 과에 있을 때 제발 이 과에는 안 오게 해달라고 그렇게 빌었건만,

그리고 이 과에 인사 발령이 <올새>에 떴을 때 제발 이 망할 고 주사와 엮이지 않길 바랐건만,

어째서 신은 내 기도를 이렇게 다 깨부수는 건지.

이랬으면 그냥 빌지 말걸 그랬다.


나는 고 주사의 말을 쿨하게 외면한 채 그녀의 옆자리인 내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내 뒤를 따라오던 주 주사는 내 맞은편 자리에 앉는다.

팀 막내 고정석. 민원인이 들어오는 문과 가장 가까운 자리.


'쯧쯧. 나이 먹고 민원인한테 털리는 설움을 잘 견디실 수 있으려나.'

주 주사가 얼른 업무를 배우고 싶어 하는 순수한 강아지 눈을 꿈뻑이며 앞자리 앉은 나를 모니터 너머로 쳐다보고 있다. 나는 그 눈길이 불편해 괜히 컴퓨터에 연결된 휴대용 선풍기의 USB연결 잭을 만지작 거린다.


'이건 또 왜 이렇게 잘 안되나. 하나도 안 시원하네. 리뷰 좋길래 노켓배송으로 바로 받았건만.'


컴퓨터 때문인지, 아니면 아까 고 주사의 불편한 간섭 때문인지 인수인계가 생각났다.

7월 정기 인사가 난 지 얼마 안 된 얼마 전,

이 팀, 내 자리에 온 나는 깜짝 놀랐다.

왜냐?

내 자리라고 소개받은 자리에 있어야 할 것이 없었다.

뭐냐고?


바로 컴퓨터.

아니, 행정직 공무원인데 컴퓨터가 없다는 게 말이 돼?


당연히 안된다.

그렇게 잠깐 멍해진 상태로 이게 무슨 일인가 생각하고 있었다.


"아, 이거 가져가서 써. 나는 컴퓨터 내가 쓰던 거 써야 돼서."

무슨 소린가 옆으로 고개를 돌리니, 방금 전 내 사수라던 고 주사의 책상 밑에 컴퓨터 본체가 떡하니 두대가 있는 것 아닌가?


'세상에. 여깄었네. 인수인계 때 자기 컴퓨터 뽑아서 가져간다는 망할 잡것이."


그랬다.

정말 어처구니없게도, 그녀는 자신이 쓰던 본체를 갖고 자기의 새로운 자리로 간 것이었다.


컴퓨터 바꾸는 거, 이게 왜 문제냐고?


문제다.


공무원의 인수인계는 아주 거지 같다.

이제 4년 차인 나는 이번까지 총 3번의 인수인계 과정을 거쳤다.

지금 저 멍청한 눈을 하고 있는 주 주사처럼 9급 처음 임용되었을 때 한번.

이때는 전임자가 종이 쪼가리 하나를 남겼었다.

아주 형편없는 엑셀 셀 박스 여섯 칸 세로로 찍 그려놓고, 한 칸 당 세 줄을 넘지 않는 아주 뭣도 없는 인수인계서 하나.


공무원이 첫 직장인 나는 모든 회사의 인수인계가 이런 식으로 되나 싶었다.

그 종이 쪼가리 하나 부여잡고, 그날부터 민원인 상대하면서 개 털린 걸 생각하면 아직도 치가 떨린다.

전임자에게 전화를 해서 물어보며 애썼지만 돌아오는 말은,

"주사님. 저도 새로운 업무 맡느라 정신없거든요. 제가 인수인계서까지 직접 남겨드렸잖아요. 그거 보시고 알아서 하세요. 여기 다 그렇게 해요."


욕만 안 썼지 그냥 꺼지라는 말과 뭐가 다른가.

그렇게 정말 매일매일 다음날 출근하기가 싫었다.

하지만 어떡해?

그 개고생 해서 된 공무원. 공무원 됐다고 친구들에게 전화해서 자랑하시는 부모님 얼굴이 떠오르니.

때려칠 순 없지 않은가?


그렇게 1년 동안 같이 발령받은 동기들, 옆, 앞에 앉은 주사님, 팀장님께 여쭤보면서

탈탈 털리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1년이 좀 지났을 때, 나는 지금 이 과의 옆에 과에 발령받았다.

나 같은 일반 행정직이 팀을 바꾸는 건 보통 2년에 한 번인 걸로  알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나는 1년 만에 그 팀을 떠나야 했다.

소문으로는 그렇게 탈탈 털리며 헤매는 나를 당시 팀장이 인사과에 손 써서 옮기게 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 소문을 듣고 났을 때 너무 슬펐다. 너무너무.


'뭐, 그때는 사회 초년생이기도 했고. 어렸지 뭐. 지금이면 신경도 안 쓸 텐데. 망할 팀장.'


그렇게 옮긴 과가 바로 지금의 옆 과였다.

나의 두 번째 인수인계.

이때의 인수인계는 첫 번째 때의 인수인계서, 종이 쪼가리조차 없었다.

그냥 공문 승인 처리된 업무분장이 전부였다.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쩌겠는가?

전임자에게 물어본다 해도 또 똑같은 소리나 듣겠지.

다들 이렇게 잘만 하는데, 못하는 너가 이상한 거라는, 개 같은 소리.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와.. 인수인계 때 자기 컴퓨터 뽑아서 가져간다는 소문만 들었던 망할 잡것이 내 옆에 있었다니. 내 사수라니.

정말 기가 막혔다.

그것도 저렇게 뻔뻔스럽고 태연하게 호호 거리면서 말하다니.


내가 첫 번째, 두 번째 인수인계가 거지 같았어도 어찌저찌 업무를 할 수 있었던 방법 중 하나는

물론 <올새> 내에 공문 처리 되면 저장될 수밖에 없는 몇 년 치 자료를 찾아본 것이었다.

특히 전년도에 있었던 공문 문서들을 보면 어느 정도 와꾸가 나왔다.

그리고 그것에 추가적으로 전임자가 지난 몇 년 간 컴퓨터에 남긴 문서 자료들을 찾아보면 얼추 업무를 해나갈 수 있었다.


그런데 저 망할 잡것 고 주사는, 자신이 만든 자료를 후임자가 볼 수 없도록 컴퓨터를 통째로 빼가버린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뭐 저런 게 있지 진짜?'

나는 지글지글 끓는 컴퓨터 위에 불만스럽게 놓인 휴대용 선풍기를 강풍으로 돌려버린다.

여전히 더운 열기. 왜 공공기관은 실내 온도를 이렇게 높게 해야 하는 건지. 온갖게 다 화가 난다.

아직 오늘 하루가 오전밖에 안 지났는데 벌써 몇 번째 때려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어이, 박 주사! 주 주사님한테 업무 분장 좀 알려주고 인수인계 기본적인 것부터 좀 해보지."

고 주사의 반대쪽 옆에 앉아있는 팀장이 내게 말한다.


"호호. 살살해~ 박 주사. 주 주사님 첫날이라 긴장 많이 하신 것 같은데. 주 주사님! 박 주사가 혼내면 저한테 이르세요. 내가 대신 혼내줄게, 호호!"

고 주사가 팀장님의 말을 받는다.


'저거 진짜 어떻게 죽이지?'

고 주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내 머리로 날카로운 문장이 스쳐간다.

어제 던진 민원인의 볼펜이 내가 아니라 저 망할 잡것의 눈에 꽂혔어야 했는데 아쉬움이 든다.

공무원이 되기 전까지는 이렇게 내가 나쁜 사람이 아니었는데,

이제는 하루하루 매 순간 온통 악의 똥구러미를 뒤집어쓰고 앉아있는 것 같다.


"여기 공문 모아놓은 거 보이시죠? 전년도 꺼 다 있으니까 보시면 될 거고. 더 필요한 건 법령 찾아보시고. 이게 이번에 팀 업무분장 공문이고요. 인수인계서는 메신저로 따로 보내드릴게요."

나는 주 주사를 불러 굳이 내 옆에 세워 말한다. 나보다 연장자니까 내가 주 주사의 자리로 가서 알려줄까 잠시 생각했지만, 뭐 그렇게까지 하나 싶은 마음에 그냥 불렀다. 어차피 쟤도 안 잘리고, 나도 안잘리는 공무원인데 좀 막 대하면 어떤가? 나도 그런 취급당했는걸.

주 주사는 이런 대우가 불편하지도 않은지 꽁꽁 싸매 더워 죽을 것 정장 재킷을 그대로 입은 채 내 옆에 서있다.


'그래도 나정도 되니까 인수인계서라도 써주지. 이렇게 친절한 공무원이라고 내가. 쳇.

뭐, 사회생활 좀 하고 왔으니 알아서 잘하시겠지. 귀찮게 이것저것 묻기만 해 봐라. 나도 그동안 당한 대로, 그래 고대로. 다른 사람 다 알아서 잘한다고, 못하는 당신이 이상한 거라고 쏴붙여줄테다. 내가 쓰던 컴퓨터 안 뽑아간 게 어디야? 흥.'


"아! 주 주사님, 내가 이거 알려드릴까요? 호호. 여기로 잠깐 와봐요. 그 재킷 안 더워요? 재킷 좀 벗고!"

옆에 있던 고 주사가 주 주사를 끌고 가 친히 보조 의자까지 옆에 놔준다. 어벙벙한 표정의 주 주사는 내 눈치를 보는가 싶더니 고 주사 옆에 앉아 눈을 꿈뻑인다.

그런 주 주사에게 고 주사가 자신의 모니터의 <호조>시스템을 켜 보여준다.  그러더니 일상경비와 일반지출의 차이부터 시작해서 온갖 재정 회계 체계를 장황하게 소개하기 시작한다. 나는 그 광경이 너무 꼴 보기 싫어 고개를 훽 돌려버린다.


'아니, 나한테는 컴퓨터를 뽑아가더니... 참나. 나더러 알아서 가리키라고 한 건 또 언제고 왜 저래? 하. 때려치고 싶다. 정말. 어휴. 망할!'

날도 더운데 사무실은 더 덥고 내 자리는 더 활활 타오르는 것  같다.


"벌써 식사 시간이네~ 주무팀! 오늘 국장님이랑 같이 식사하는 거 알죠? 준비하고. 아 맞다! 박 주사는 점심시간에 우리 주 주사님 식사 특히 신경 써주고. 첫날이니까~ 알죠?"


모니터 화면 오른쪽 아래 시계 숫자가 11:30을 가리키자 저 멀리 혼자만 우아한 파티션 뒤에 숨어 온종일 뭘 하는지 모르겠는 과장이 우리 팀을 향해 소리친다.

조용히 말해도 될 걸, 꼭 저렇게 고래고래 소리쳐야 하는 건지, 꼰대들은 정말 알 수가 없다.


'하- 역시나 거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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