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빨양c Jun 28. 2024

문창과 입시 오픈 채팅 방에 몰래 일주일 있어보니?

"카프카-변신, 이상-날개"를 웹소설 제목으로 바꿔보시오.




왜였는지는 모르겠다.

우연히 깨톡 오픈 채팅 방에 눈이 갔고,

우연히 문예창작과 오픈 채팅 방에 들어가게 되었다.

고딩~대딩만 입장가능하다길래 안될 줄 알았는데,

스리슬쩍 들어가서

야금야금 잠잠히 숨죽이고 있으니,

은근슬쩍 채팅방에 머물게 되었다.


그것이 일주일 정도 전 이야기.


그리고 그곳에서 느낀 몇 가지.


하나. 진지하다.

나이 마흔 줄에 다다른 애 하나 있는 아재가 보기에, 그들의 세상은 참으로 진지했다.

처음에는 그랬다.

"아니, 문창과 나와서 모 먹고살려고 그래?"

솔직히 맞잖아.

문창과가 시와 소설을 배우는 학과라는 것도 이 채팅방에서 처음 알았다.

대학 시절 국어국문과, 문예창작과가 있는 그쪽 건물은 쳐다도 안 봤다.

미안하지만, 앞날이 창창한 경영학도가 보기에

그 건물은 너무 빨갰다. 빨개서인지, 고리타분해 보였다.


일개 직장인 따위나 되서

그들을 이렇게 부러워하게 될 줄 모르고.

지금 이럴 줄 모르고.


"영어 지필 시험을 고1, 고2, 다 망쳤는데, 그럼 이제 정시밖에 답이 없나요?"

라는, 진지한 대화를 누군가 채팅방에 묻는다.


그러자,

마치 자신의 일처럼

<엄지 척 제이지>라는 대화명을 가진 익명의 누군가가,

"특기자를 노려보세요."

라고 답한다.


마흔 줄 아재는 차마 끼어들지 못한 새, 수많은 문예 창작과에 대한 고민의 채팅 말풍선이 위로, 또 위로 올라간다.

그러다 눈에 띈 또 한 가지.


"입시할 때 도움 되는 시집 있을까요?"

라는 누군가 올린 질문에,

<열심히 일하는 네오>라는 익명의 누군가는

10가지의 시를 추천해 준다.

그 추천에 덧붙여

<비옷입은 튜브>는 읽어야 하는 시집들을 가지런히 담아 말풍선을 쏘아 올린다.

물론 난 그 길고 긴 리스트에 단 하나도 본 게 없다. 한심한.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순수하고,

진지하다.


그들의 순수한 진지함 앞에,

"문창과 나와서 뭐해먹고 살 건데?"

라는 내 경솔한 첫 의문이 비참해진다.


꿈을 묻는 그들 앞에,

현실을 들이대는 아재가 되어있는 모습이라니.

비참하고, 궁핍해지는 기분.



둘. 재밌다.


카프카, 변신->바선생 된 썰 품

이상, 날개->기둥서방이 가스라이팅에서 깨어나는 방법


그리고,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개백수

구운몽->현실에선 땡중, 이세계에선 하렘의 주인공?

홍길동전->sss급 서자가 돌아왔다!

별주부전->이세계의 장기매매

등등!


너무 기발하고 재밌다.

명작들의 제목을 요즘 시대에 맞는 웹소설 느낌의 제목으로 바꾼 거란다.

정말 카프카와 이상이 이 시대에 살았다면,

소위 말하는 '어그로'를 끌기 위해선, 저런 제목을 쓰지 않았을까.

한낱 조회수나, 구독자에 목메는 요즘 추세에 맞추려 했다면.


문창과를 지망하는 귀여운 학생들의 엄청난 창작력에 무릎을 탁 쳤다.


솔직히 모르겠다. 그들이 지금도 밤낮으로 노력하고 있는 그 "문창과"에 가서,

아니 가고 나서, 뭘 해 먹고살지.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선 걱정이 되는데,

꿈을 좇는 그들의 입장에선 너무나 그들이 부럽다.


내가 존경하는 브런치 작가님 중 한 분이 쓰셨던 데로,

등단에 실패한 문창과 학부생만 잔뜩 모여,

그 잘난 텃세만 부려댄다는 문창과 대학원생이 될고말까.

언젠가 꼭 나는 그곳에 가서 그것을 확인해 볼 생각이다.


문창과 오픈 채팅방에 일주일 있어보니 확실히 한 가지는 알겠다.

나도 이 어린 학생들처럼,

누구보다 문창과에 대한 열망이 크다는 것.


나도 그들과 같은 학생일 때,

지루한 기본기만 익혀야하는 과정은 다 스킵하고, 빨리 결과만 짠! 받고 싶었다. 그런데

그때보다 나이를 좀 먹고 보니,

그 "기본기"가 너무 그립다.

아니, 그 기본기를 배울 수 있는, 그것만 하면 되는 그 "시절"이 그리운 거 같다.

그래서, 나는 문예창작과에 가고 싶다.


물론 그들과 달리 "그래서 뭐해먹고살 건데?"에 대한 대답을 이미 현실에서 어느정도 찾아낸 40세 아재이기에 그 열망이 큰 것 같은 비겁함이 영 꺼림칙 하긴 하지만.


<건배하는 프로도>와 <초롱초롱 네오> <휘파람 프로도> 등등 이 채팅방에 있는 수많은 문창과 지망생들을 응원한다.


내 응원이 뭣도 아니고,

솔직히 내가 어쩌다, 왜, 소설을 쓰고 앉았는지 모르겠지만,

언젠가 나도, 그래서 뭐해먹고살 건데, 에 대한 대답이 더 안정이 된다면, 꼭 그들과 같이 문예 창작에 대한 꿈을 그려보고 싶다. 많이 배우고 싶다.


“당신이 죽고 200년이 지난 후에야 당신의 글이 아주 조금 세상에서 인정받게 된다. 당신은 그래도 글을 쓰겠나.?”


:)


그때까진, 이 채팅방에 몰래 잘 숨어있어야 할텐데...

괜히 걸려서 쫓겨나지 않길...(진심..)


끝.





작가의 이전글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브런치 작가 따위를 알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