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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양c May 16. 2022

Ep15. 그래.. 돈.  늘 그놈에 돈이 문제다.

아니 내가 문제인가?


"어? 오 차장님?"

철저한 비즈니스 마인드를 생명처럼 여기는 오 차장이 아침에도 그렇고, 이런 밤늦은 시간에 전화한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낯설다 생각하며 아인이 말했다.

그리고 아인은 생각했다.

‘왜 사표를 내야만 사람들은 관심을 가지는 걸까’


"어~아인 나다. 뭐해? 오늘 거기 확진자 터졌다며? 넌 괜찮냐? 조기퇴근 바로 한겨?"


"예? 뭔 놈의 조기퇴근이요.. 망할 사무실 구석탱이에서 야근하고 있는뎁쇼?"


"뭐? 왜 집에 안 갔어? 확진자 터지면 바로 폐쇄해야 하는 거 아냐?"


"왜 긴요.. 누가 그러던데요. 희망퇴직 신청자 늘리려고 전염병 걸려 죽든 말든 야근까지 시키는 ㄱ킹 받는 회사라고"


"아.. 맞네 맞아. 거기는 그런 곳이었지.. 직원한테까지 줄 관심은 없는 곳.. 고생이다 너도.. 근데 무려 야근까지 시키는 그 회사에 남아있는 직원치고 니 목소리는 왜 신나 보이지? 아침이랑 사뭇 다른걸?"


아인은 한참을 오늘 있었던 설 팀장의 제안에 대해 오 차장에게 설명했다.

물론 한 순간에 본인을 여기에 버려두고 훌쩍 자기만 살겠다고 떠난 오 차장에 대한 야속함이야 마음 한켠에 있기야 하다만, 그래도 본인의 서툴렀던 신입시절을 온전히 함께해준 사수에 대한 작은 믿음 때문이었을까?

그리고 아인보다 오랜 생활 설 팀장과 직장생활을 같이했던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푸하하.. 코미디네 코미디야.. 그러니까 네가 멀었다는 거야. 야. 그걸 믿어? 그걸 믿고 지금 그런 상상의 나래를 진지충마냥 고민하느라 아직도 회사에서 썩고 있는 거야? 아이고 시간 아까워라~"

예상은 했지만 예상보다 더 격한 오 차장의 반응에 아인은 움찔했다.


"예..? 그게 무슨? 그래도 설 팀장 꽤 진지했고, 윗 분들이랑도 이미 다 이야기되었다고 하던데요.."


"아이고~주 과장님. 그만 짐 싸서 집에 가세요. 가서 쉬셔야겠네. 주아인. 그렇게 당했으면서 아직도 설 팀장을 믿어?

놀라지 말고 잘 들어. 나 사표 던졌을 때도 설 팀장 그거 지금 네가 말한 거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똑같이 말했다?"


아인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뱀 얼굴을 한 설 팀장의 혓바닥이 아인을 꽁꽁 옭아매는 것 같이 숨이 갑자기 턱 막혔다.


"그래.. 설사 그 뭐? 화물 총괄본부? 그걸 새로 만들어서 CEO 자리를 새로 만들어서, 너를 거기에 앉혔다고 치자. 일단 직함 달아줬으니 온갖 더러운 일 다 시킬걸? 연봉이나 복지는 지들만큼 해준다디? 내 보기엔 전혀 가망 없어. 직책만 그럴싸하게 달아준 거지. 그리고 또 거기서 끝날까? 실적! 그 망할 놈의 실적 가져오라고 들들 볶을걸? 실적 못 채우면 그걸 빌미로 더 바짓가랑이 찢을 거고. 아인아. 한참 멀었구나. 이 형님은 그 모든 걸 간파하고 그 말 듣자마자 이직할 업체 구했다고 바로 손절 쳤잖냐."


희망의 세레나데를 부르며 CEO가 되어 엣헴엣헴 하는 모습을 그리는 등대 불빛 같은 모습을 꿈꿨던 아인은 더 이상 그곳에 없었다.


'나는 왜 이모양인 걸까.. 맨날..'

아인은 그렇게 사람에.. 회사에.. 속았으면서 또 이렇게 속아서 헛된 기대를 한참이나 꿈꾼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그리고 이런 기분을 선물해준 설 팀장과 이 회사에 분노와 또.. 그 어쩔 수 없는 무력감을 다시 한번 느낄 수밖에 없었다.


갑작스레 말을 멈춘 아인을 눈치챈 오 차장이 말을 이어갔다.


"아인. 그런 되지도 않는 제안에 휘둘리지 말고, 잘 들어봐. 너의 하나뿐인 이 사수님이 가련한 부사수님을 위해 오퍼를 하나 물어왔다 이 말이야. 아침에 내가 알아보고 연락 준댔지? 일단 너 국문이랑 영문 이력서 오늘 잠들기 전에 나한테 메일 하나 넣어봐바. 꽤 괜찮은 콘솔사(수출회사)야. 너도 이름 들으면 바로 알 거고. 규모도 상당하고, 음.. 외국계는 아니고 로컬이긴 한데, 콘솔 화물 와꾸짜는데 항공사 출신으로 뽑는다 하더라고. 거기서 내가 너의 이름을 슬쩍 흘렸지."


".. 예? 차장님, 갑자기 무슨 이직이에요. 아침에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여기 발 빼면.. 일단 쉴 거예요. 탈 물류를 하고 싶지만.. 그게 안되더라도.. 이 물류업계에도 지쳤고, 이 망할 회사에도 질렸어요.. 그리고 저 콘솔사 업무 싫어하시는 거 아시잖아요."


"야. 언제까지 그 빛 좋은 개살구 노릇하며 허울만 좋은 외항사 전전할래? 그래 나도 이해해. 콘솔사들 밤낮으로 난리 펴야 하는 업무, 그거 최악이지. 그래도 그만큼 돈으로 챙겨주잖아. 이건 장담한다. 너 지금 거기처럼 직원 등골 다 빼먹고도 희망퇴직 늘리려고 수작 부리는 게 아니라, 그래도 등골 빠질 거 같으면 목 구녕에 소고기로 기름칠도 좀 해주고, 살도 좀 찌게 해주고, 그래. 그래도 굴려먹는만큼 기본적인 사람대접은 해준다니까?"


'그래.. 늘 돈이 문제다. 돈. 그놈에 돈.
돈 앞에 우리는 늘 이렇게 작아지고 만다.'


아인은 하나 남아있던 본인의 사무실 불을 조금은 허탈한 손놀림으로 꺼버렸다.


그래.. 그날은 참 이상하게도 많은 일이 있었던 하루였다.

그리고 마침내 이제 그 하루가 끝을 내려하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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