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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양c May 19. 2022

Ep16-1. 저비용 고성능 호구 하나 여기있네요

꿈과 돈이 격돌한다

Ep16-1. 저비용 고성능 호구 하나 여기있네요

Ep16-1. 저비용 고성능 호구 하나 여기있네요

"니 그 되지도 않는 공항에서의 추억, 그 잘난 꿈 좇아 계속 그 항공사에 남을래?  

아니면 그래도 기본적인 사람대접은 해주는, 그러니까 돈이라도 잘 챙겨주는 수출회사로 옮길래?"


오 차장의 물음이 아인에게 깊숙하고 날카롭게 찔러들어왔다.


"그래도 나는 꿈을 좇는 게 맞다고 봐. 생각해봐.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돈 많이 벌려고 태어난 거야? 난 그거 아니라고 생각해. 내가 원하는 꿈이 뭔지 찾고, 물론 그 꿈을 찾는 것도 어렵지만.. 너처럼 운 좋게 찾았다면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꿈을 이루든 못 이루든, 나는 단순히 그 돈을 벌어 얻은 행복보다 그 과정이 더 행복을 줄 거라고 믿는데?"


예소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철저히 비즈니스적인 이성만을 추구하는 오 차장이 들었으면 되지도 않는 꿈 타령 낭만 타령이라 쏘아붙였을 테지만, 아인도 예소의 그런 생각과 다르지 않았다.

쌤성전자의 부회장님처럼, 쓱하는 회사의 회장님처럼, 노때타워의 누군가처럼 통장에 찍히는 0이 셀 수없이 많아도 그들도 결국 돈 걱정을 할 것이라고.


돈이 없는 사람은 없어서 죽겠고,  
돈이 많은 사람은 지켜야 하니 죽겠고.

인간이란 결국 그렇게 돈에게서 결코 이길 수 없는 존재이니, 정말 본인이 원하는 꿈을 좇는 게, 그러다 보면 저 너튜브 흔한 벼락부자엉님들이 말하듯 열심히 하고 싶은 걸 하니 돈이 자연히 따라왔다고, 그러니까 꿈과 돈이 격돌할 땐, 꿈의 손을 들어 올려주는 게 맞다고 아인은 믿어왔다.


그랬던 아인에게 오 차장이 다시 묻고 있었다.

"꿈만꾸며 그렇게 살래? 돈이라도 많이 벌래?"


우리는 본인이 선택을 한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언제나 선택이 우리를 강요할 뿐이다.


착실한 직장생활, 뒤처지지 않는 사업성과들, 명확한 업무처리능력, 사람 냄새나는 영업방식, 연봉과 복지 등 부차적인 것에 욕심부리지 않는 신념.

그야말로 회사에서 탐낼만한 적게 먹여도 많이 일하는 저비용 고성능의 부품.

어떤 회사여도 탐낼만한 호구 하나가 바로 주 과장이 아니었을까?


그런 아인에게 당연히 경쟁업체를 비롯한 수많은 거래처에서도 이직 오퍼가 끊이지 않았던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렇게도 알아서 열심히 회사를 위해 살아주는 호구가 어디 있을까.

아인도 자신이 그런 취급 당함을 몰랐던 건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인의 대답은 늘 명확했다.


'항공사에서 일하는 게 나의 꿈이었고, 지금도 나는 그 꿈의 직장에서 오늘도 일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게 맞고, 이게 행복이다.'

그랬던 아인이 그날, 그래 그 많은 일이 일어났던 바로 그날을 기점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인이 보기에 항공사와 콘솔사(수출회사)는 같은 근무시간, 비슷한 화물운송업무, 동일한 사업환경 등 거의 같은 일을 하고 있지만, 돈. 그러니까 연봉에서는 차이가 커 보였다. 물론 고위 임원급은 비슷한 수준일지 모르겠지만 그 타이틀을 아직 쟁취해내지 못한 우리 아래 것들의 격차는 심해 보였다. 어딜 가나 이 망할 업계는 상후하박. 결국 위에 것들이 다 해쳐먹고 아래 것들은 부품 갈아 막기 하는..

그래, 외항사 직원은 수출회사에 비하면 정말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실속이 없다는 거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인의 대답은 명확했고, 한결같았다.

'꿈과 돈이 격돌한다. 나는 당연히 꿈을 좇는다.‘


돈을 좇아 일을 하는 사람과

꿈을 좇는 사람의 가장 큰 차이는

본인이 맡은 업무를 대하는 태도 아닐까?


아인의 예를 들자면,

항공사가 의뢰받은 스페인 마드리드 행 수출화물을 중간 기착지인 중동 두바이 지사에서 분실하였다. 관련 서류도, 화물도 하루아침에 위치가 확인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항공화물 담당자는 시차가 있으니 알아보는 동안 며칠만 기다려달라 한다. 그렇게 일주일, 이주일이 지나, 한 달, 두 달, 세 달이 흐른다. 화물은? 당연히 찾지 못한다. 그 시간동안 화물의 주인은 수출회사를 향해 화를 꾹꾹 눌러담아 분노를 한발 두발 폭발시키고, 항공사와 계속 거래를 유지해야만 하는 중간에 낀 수출회사는 그 화를 최대한 희석시켜 항공사에 전달할 수밖에 없다. 그럼 항공사는 무척 젠틀하게, 하지만 또다시 무심한 투로 말한다.


"그럼 정식 클레임을 진행하세요. 저한테 이러지 마시고."



Ep16-2. 전화 오면 나 없다 해

꿀만 취하고 독은 버리고 싶다.


"그럼 정식 클레임을 진행하세요. 저한테 이러지 마시고."


여기서 수출회사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뭐가 있을까?

딱히 없다. 그저 하란데로 할 수밖에.. 그렇게 클레임을 신청하고 다시 네 번째 달, 여섯 달, 그렇게 우리의 시간은 무심하게 흘러간다.

이쯤 되면 우리는 모두 알 수 있다.

그 화물은 더 이상 찾을 수 없다.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다.
세상 대부분의 일이 그러하듯,


결국 6개월 이상의 시간을 보내고 항공사에서 분실 화물로 최종 확인을 받아 클레임 보상이 승인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보상액은 신청한 것보다 훨씬 적은, 정.말.말.도.안.되.는. 금액이 책정된다.

항공사는 말한다.

"이거라도 받으시는게 그래도 낫지 않으시겠어요?"

물론 여전히 무심하고 그래서 어이없게도 그 감정 없는 말투가 친절하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하지만 그 내용은?

사악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계속해서 항공사로부터 화물 운송을 위한 스페이스를 받아야 하는, 즉 거래를 이어 가야만 하는 수출회사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깊은 빡침을 느끼지만 쿨한 비즈니스 웃음으로 꽁꽁 감춰야 한다.

그래, 그 잘난 성숙한 비즈니스맨은 바로 이것을 해낼 수 있어야 하는 거라고 오 차장은 말했었더랬다.


나이스한 거절과 티나지 않는 쿨한 비즈니스 웃음.


내가 꿈꾸는 내 모습과는 아주 거리가 먼 짓거리를 이 사회, 이 조직은 강요한다.


그리고 상황이 이쯤 되었을 때 책임자의 위치에 있는 우리의 망할 설 팀장은 말했었다.

 "안됐네.. 근데 우리가 해줄수 있는 건 다 해줬잖아. 그런 식으로 마무리하도록 하고, 아 그리고

전화 오면 나 없다 해.

신입시절 이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한 아인은, 이게 정말 내가 그렇게 간절히 꿈꾸던 회사이고,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인지에 대한 깊은 회의감이 들었다.


10년, 20년 후 저 자리에 내가 앉는다면,

그래서 나도 저따위 말을 지껄이고 있다면,

그것만큼 처참한 직장생활이 또 있을까?

그것만큼 한없이 부끄러운 어른이 되어 있으면 어쩌나.


시간이 흐른다. 위 사례와 비슷한 화물 분실 상황에 직면한 영업직 담당자가 된 아인은 그 신입의 시절을 기억하며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한다. 그리고 화물 분실로 깊은 빡침을 머금었을 그 수출회사 건물 입구에 선다.

마음이 무겁다.

항공사가, 내가 일부러 저지른 죄도 아니고, 해외지사에서 잃어버린 걸 왜 내가 사과하러 와야하는지. 솔직히 억울하고, 도망가고 싶고, 신입시절 봤던 그때 그 설 팀장처럼 나 없다고 하고 숨어버리고 싶다. 꿀만 취하고 독은 버리고 싶다. 인간은 다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아직은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열망이 이겨버렸다. 나는 결코 저렇게 나이 들고 싶지 않다.

내가 그렇게 꿈꿔왔던 직업이고, 내 업무였으니까.

몇 안 되는 꿈을 좇는 사람은 그런 거 같다.

그래,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그.. 이상한 성실함과 망할 책임감.


아인은 힘을 낸다.

나는 개인자격으로 온 게 아니고, 회사를 대표하는 영업 담당자로서 왔으니 사과할 건 사과하고, 다른 사업 진행할 건 또 제안하고, 그렇게 당당하자고 수십 번 다짐한다. 무한 한숨도 쏟아진다. 막상 문 앞에 서서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는 것만으로도 숨이 가빠온다.

문이 열리고, 아인 입장. 그리고 마침내 마주한 수출회사 담당자와의 미팅 시작.

그리고 그의 첫마디가 아인의 마음을 무너뜨린다.




Ep16-끝. 쌍욕이 감사로 변하는 순간.

그래도..


문이 열리고, 아인 입장. 그리고 마침내 마주한 수출회사 담당자와의 미팅 시작.

그리고 그의 첫마디가 아인의 마음을 무너뜨린다.



그래도 감사하네요.. 주 대리님.


"...? 예?"

쌍욕을 안 먹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아인으로서는 감사라는 단어가 나오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뭘 그렇게 놀란 눈을 하세요 대리님 호호. 우리 업계 맨날 이런 일 비일비재하고, 어떻게 상황 흘러가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뻔할 뻔자죠. 근데 이렇게 직접 찾아와서 상황설명 정리해주시고, 본인 일처럼 미안해하시고, 거기다 이런 작은 선물까지 가져오시고? 이렇게 진정성 있는 영업사원은 음.. 굉장히 오랜만인데요? 오 차장님이 오셔서 왜 맨날 주 대리님 본인이 키웠다고 엄청 자랑하고 가시는지 직접 보니 좀 알겠네요.. 호호"


그랬다. 아인은 늘 꿈을 좇았다.

본인이 원했던 꿈, 그 꿈을 좇는 회사에 다니고 있었고, 그 속에서 사람을 대할 때나, 업무를 대할 때나 매 순간 진심 어린 마음으로 대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꿈을 좇아 일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가장 큰 차이는 이것 아닐까?

본인이 맡은 업무에 대한 진정성.

다른 말로는 회사가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그 잘난 주인 의식.

해결할 수 없을지언정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려는 태도.

그리고 그런 태도는 굳이 티 내어 말하지 않아도 어느새, 언젠가 누군가의 마음에 전해져 있음을 배울 수 있었고, 돈이 아닌 꿈을 좇는 것이 바로 이런 결과를 가져왔음에 확신을 갖게 된 순간이었다.


쌍욕이 감사로 변하는 순간


‘그랬던 때도 있었지..’

영업업무를 처음 시작했던 대리 시절의 기억들을 떠올리며 애써 무시하려고 노력한 아인이었지만,

지금 던져진 오 차장의 이직 오퍼는 아인의 마음속 꿈과 돈의 대결장에 다시 한번 불을 지폈다.


"꿈 좇아 계속 그렇게 살래?

돈이라도 많이 벌래?"


오 차장이 물었다.

아니, 이 세상이 끊임없이 물어오는 이 물음 앞에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아인도 명확히 답하지 못하고 있었다.



계속,


이전 15화 Ep15. 그래.. 돈. 늘 그놈에 돈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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