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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양c May 12. 2022

Ep14. 내가 왜 사표를 던졌더라?

다 같이 침몰할 순 없지 않은가


내가 왜 사표를 던졌더라..?

아인이 퇴사를 선택한 이유는 보통의 우리네가 그러하듯 여러가지가 있었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더 이상 같이 일할 동료. 그러니까 마음 터놓고 웃고 화내고 즐겁게 그렇게 때로 술 한잔 하며 서로 위로하는 진짜 동료가 이 팀에, 이 회사에 더 이상 없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업무가 힘들면 직원들 관계가 그나마 낫고, 직원들이 개판이면 업무라도 수월해야 하는 거 아냐?


하지만 퇴사자들의 빈자리를 오롯이 아인 혼자 도맡게 되는 말도 안 되게 자연스러운(?) 과중한 업무.


책임회피와 무능력만 남은 최악의 설 팀장.


‘그래도 하나뿐인 내 직장이니까..’를 생각하며 위기상황 개선 의견 제시를 묵살하는 경영진.


오히려 회사의 힘든 상황만을 강조하며 직원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고 본인들끼리만 다 해쳐먹는 임원진.


그리고 매 명절 때마다 참치햄 세트를 안겨주지만 정말 도움이 필요할 땐 기가 막히게 자리를 비우는 노조.


그렇게 어쩔 수 없지만 너무도 당연하게도 강요받는 아랫 직원들만의 희망고문, 그래.. 그 희망퇴직.


이제는 인식마저 흔해져 버린 그 전염병 때문에, 그래 단지 그 전염병 때문에 이 지경이 된 것이라고 혹자는 소리치겠지만, 아인은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게 애써 암묵적으로 묻어왔던 이 회사의 문제점들이 그저 전염병이라는 기폭제를 타고 적나라하게 폭발하고 있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음.. 그런 침몰하는 배에서 능력 있는 직원들은 최대한 빨리 더 나은 배로 옮겨 타는 거고, 나머지는 침몰 중인걸 알면서도 어떻게든 배 안 어딘가에 숨어있으려고 존재감을 지우나 보다. 그렇게 그 소중한(?) 배와 함께 침몰하던, 어찌 되던 일단 그때까지는 버티자는 생각일까?’


근데 오늘.

설 팀장이 CEO라는.. 그 한참 신나게 가라앉는 배를 운영할 수 있는 작지 않은 권한을 아인에게 넘겨주겠다는 제안을 한 것이었다.


사표를 던지게했던 그 원인들을 아인이 손수 고칠 수 있는 권한을 쥐여준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등에.. 아니 등까지는 아니고 이마 정도에서 한줄기 식은땀이 흘렀다. 떨리는 그러니까 솔직히, 많은 설렘이 들어간 그 떨림이 고스란히 부들거리는 아인의 손에 나타났다.


생각해보라. CEO가 된다?

연봉, 복지를 굳이 비교하지 않는다 하여도

아인의 퇴사의 가장 큰 이유였던 함께 할 동료가 없다면 CEO의 권한으로 아인의 맘에 쏙 드는 원하는 진짜 동료를 직접 뽑아 쓰면 그만이다. 그렇게 혼자 맡아야 했던 퇴사자-오 차장, 김 대리, 그리고 벌써 잊혀가는 이름 모를 저 팀 누군가의 업무를 내 입맛대로 뽑은 동료들과 나눠서 처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CEO의 권한을 빌려 그 잘난 경영진에게 더 당당히 직원들의 요구사항, 회사의 위기를 해쳐나갈 빅 피쳐를 제안할 수도 있다. (그래, 적어도 설 팀장한테 보고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또 눈엣가시 같았던 망할 그 상후하박 구조. 즉 임원진 윗 것들끼리만 다 해쳐먹는 구조를 깨부수고 정당한 보상절차를 설계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다만,

희망퇴직자들은 어쩔 수 없지만 CEO 미스터 주의 새로운 회사 플랜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이해하면, 몰아가면, 그뿐인 것 아닌가?


그래, 다 같이 침몰할 순 없지 않은가?

너무도 간사한 게 사람이라 했던가.

어느샌가 희망퇴직을 갈아내는 회사의 마인드를 고스란히 자기 합리화에 투영시킨 스스로의 모습에 아인은 스스로 놀라버렸다.


커피 한 잔의 짧은 시간 동안의 설 팀장과의 대화가 사람을 이렇게도 다른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일까?


불 꺼진 사무실, 홀로 켜진 모니터에 비친 아인의 야망에 찬 눈동자가

너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얄궂게 묻는 것 같았다.


'그럼 어떡해? 그래. 위기는 기회다. 회사는 위기지만, 내 커리어에 이건 기회다. 그래. 설 팀장 태도가 영 미덥잖긴 하지만, 일단 질러보는데 손해 볼 건 없지 않나? 당장 이 주아인이가 그 CEO 자리 수락하겠노라고 연락을 해야겠..'


이미 상상의 날개가 하늘 끝, 우주 끝, 누군가 생각할 수 있는 저 끝 어딘가까지 날아가버린 아인을 누가 말릴 수 있었을까?


바로 그때, 전화가 울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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