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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양c May 09. 2022

Ep13. 속보입니다

그래도 우상향을 꿈꾸는 우리는 보통의 어른이


속보입니다!
업계 최연소 CEO가 탄생했습니다! 능력도 외모도 개뿔도 없는데 다 쓰러져가는 이 업계에서 갑툭튀 CEO가 나왔는데요.. 그럼 주 과장의 CEO된 인생역전 스토리를 끝으로 이 이야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이렇게 끝나면 완전 해피엔딩아님?ㅎㅎ 최연소 CEO? 그런 제안이면 완전 나이쓰 개꿀인데 바로 받았어야지!! 뭘 고민했대?”

아인의 얘기가 재밌다는 듯 예소가 놀리며 말했다.


"야야. 말도 마. 설 팀장 그 말에 내가 얼마나 흔들렸었다고.. 나 완전 진지했잖아! 뭐랄까.. 숨겨져 있던 본능적 야망의 눈동자를 뜬 날이었다고나 할까?

야 근데 이쯤에서.. 웃긴 게 뭔지 알아? 그날 아침까지만 해도 나 회장실 문 부수고 들어가서 사표 내던지겠다고 했던 거.. ㅋㅋ 어이없지? 그런 오퍼 하나 받았다고 사람이 참 간사한 게 급 회사에 감사한 점을 찾게 되더라고.. 간사한 감사지.. 오! 나 방금 라임 오졌다! 그치? 요새 젊은이들은 이런 말 좀 써줘야 한다고 ㅎㅎ알았냐 예소?"


늘 MZ세대를 이해 못 하겠다고 툴툴대던 아인이었지만 그 MZ세대에 어떻게든 끼고 싶은듯 말했다. 여느 꼰대들이 그러하듯이.


"라임 타령 고만! 야. 근데 그때 정말 그 CEO 자리 꿰찼으면 니 삶은 완전 우상향 급 상승곡선이었던 거 아녀!!?"

아쉬워하는 말투의 예소.


"야. 당연하지. 우상향 완전 좋지.!! 팔자 확 피는 거야~ 연봉 뛰어, 차 나와, 골프회원권에, 회사 근처 집도 나올걸?"


"좋긴 좋네.. 근데 나는 가끔 그런 생각 들더라. 과연 우상향을 그리는 삶이 늘 그렇게 좋기만 할까..”

조금은 회의적인 말투로 예소가 말했다.


"얘가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 하고 있어? 야야! 당연히 뭐든 우상향은 뭐든 좋은 거 아냐? 주식 그래프도 우상향, 그러니까 계속 올라가는 게 좋고. 부동산 집 가격도 우상향, 계속 올라가는 게 좋지. 당연한 거 아냐?"

아직 집도 없고, 주식도 하지 않는 아인이었지만 우상향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으로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긴 하지만.. 나는 그래도 가끔 그런 생각 들어. 그 우상향 그래피 밑에는 얼마나 많은 인내와 희생이 깔려있을까. 예를 들어 너만 해도 그 CEO 자리받았으면 분명 너의 연봉, 실적 등 그 커리어 그래프에 우상향 한 칸이 추가되겠지. 그것도 엄청 급격한 상승으로 말이야. 하지만 그 자리에 올라섬으로써 당장 냈던 사표는 물론이고, 어쩌면 너와 니 주변 어떤 것을 일정 부분 희생해야 하는 것도 사실일 거야. 회사는 절대 이유 없이 돈을 주지 않는 거 너도 잘 알잖아?

우리는 늘 그렇게 현재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그래 그 좋다는 우상향을 그려내기 위해,

오늘도 한 칸 한 칸 높게 그래프를 쌓으려 노력하지만, 과연 그렇게 빠르게만, 높게만, 끝없이 솟아 올린 그래프 꼭대기에 과연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을까?"

어느샌가 사뭇 진지해진 얼굴로 예소가 말했다.


"대단한 철학자가 여기 있네~? 거의 니체가 니체 하는 느낌! 크~오랜만에 봤는데 술도 안먹고 많이 취한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재주를 익혀왔네 우리 예소?"


예소의 말에 어느 정도 공감하는 아인이었지만,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너무 무거운 얘기를 하고 싶진 않아 서둘러 분위기를 돌렸다.


"야야. 이 형이 오랜만에 진지모드 좀 탔는데 이럴래? 됐다 됐어~ 분위기 확 깨네.

그래서, 우리 주 과장님은 주 CEO님이 되셨나? 너 거기 입사하고 한참 입버릇처럼 그랬잖아. 네 맘에 쏙 드는 동료들을 하나하나 모아 너만의 팀을 꾸려서, 그 대단한 성공을 이뤄내고 말겠다고. 회사 역사에 한 줄을 긋겠다 했었나~ 으~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역. 시. 나. 오글오글! 설 팀장이 해준다는 그 CEO 되면 그런 거 정도는 니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거 아냐?"


"그렇지. 잘 기억하고 있구만! 나는 직장 생활하면서 그런 걸 항상 꿈꿨지. 물론 전염병 사태 얻어맞으면서 매일을 휘청거리는 회사 속에서 버티는 동안 그 꿈이 와장창 깨져가고 있었지만. 그래서 사표도 던졌었고. 바로 그때 설 팀장의 그 잘난 최연소 CEO미끼가 그 사이를 정확히 파고들었던 것 같아."


그랬다.

설 팀장의 낯선 제안에 그날 하루 종일 주 과장은 마음이 텅 빈 것 같았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전염병 검사를 했는데도 정상 근무시키는 회사도 충격적인데 야근까지 하는 회사가 있었다니.. 그 회사가 우리 회사라니!! ㄱ킹 받는다!!!"

"그러게요 김 대리님. 정말 최악이에요! 이 건물 임대 준 2층 다른 업체는 바로 다 폐쇄하고 방역하고 집 가던데.. 이건 뭐 우린 병 걸려 죽어도 여기 회사에서 장렬히 전사하란 건지 정말 못해먹겠네요."

"이번에 희망퇴직 신청하라고 일부러 이러는 거 같지 않냐? 못해먹겠다 정말.. 이제라도 집에 보내주니 감사하란 건가.. 어휴"


어느덧 퇴근시간을 훌쩍 넘긴 시각.

늦은 퇴근길을 서두르는 여객부 직원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심각한 감염병에 온 세계, 온 지구가 난리인데 직원들을 지켜주기는커녕 사지로 내모는 이 회사에 대한 원망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리라.

정말.. 이 회사는 정부 지침이고 뭐고 그런게 없는건가.

정말.. 누구하나 죽어나가야만 직원에 대한 이 무례함을 마칠까.

아인도 당연히 이런 그들의 의견에 백 프로 천 프로 공감했다. 과연 직원들을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서 지켜주는 회사가 존재하긴 할까?


그렇게 사무실 불이 하나 둘 꺼져감에도 야망의 늪에 빠져버린 아인은 캄캄한 바닷가 등대 불빛처럼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 아직 불을 밝히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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