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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양c May 04. 2022

Ep12. 자살을 할까 커피나 한 잔 할까.

충격적인 설 팀장의 선공 공개!


"오전에 그 전염병 검사받으러 가는 길에 임원분들이랑 같이 가면서 이야기를 좀 해봤는데,

주 과장을 화물영업총괄 CEO로 올리려고 하는 눈치시더라고. 워낙 위기 상황이니까 TF성격으로 화물부 총괄하는 화물영업본부 만들어서 원래는 오 차장을 총괄로 하려고 했나 본데.. 자네도 알다시피 오 차장이 그리 나갈 줄 누가 알았겠나..? 자네만 괜찮다면 그 자리 내가 적극 추천해보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선공을 받은 아인.

너무 이상한 소리를 해대면 멍해지는 법이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팀장님? CEO요? 저는 과장 1년 나부랭이에, 나이도 어린 사람이 무슨 CEO입니까? 화물영업총괄부요??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자리 하나 만들어 줄 테니 얌전히 있으라 이겁니까?"


"어리다니.. 주 과장. 아까 함 전무님 어떤 분인지 자네도 잘 알지? 자네랑 고작 3~4살 차이야. 그분 전무로 올라선 게 자네 나이 정도 때였지 아마? 30대 프랑스 대통령도 나오는 판에, 전무님도 했는데 자네라고 못할 이유가 뭐가 있겠어?"


‘이 작은 회사의 대화에서 프랑스 대통령까지 소환한다고..? 이건뭔..’


너무 어이가 없으면 자고로 웃음이 나는 법이다.

아주 썩은 웃음이.

다만 그 당시 아인의 그 웃음이 설 팀장에겐 긍정적인 피드백으로 보였던 게 문제였다면 문제였을 뿐.


"조건도 나쁘지 않을 거야. CEO 타이틀에 걸맞은 수준의 연봉, 복지는 당연히 따라올 테고. 까놓고 말해서, 주 과장 퇴사하면 결국 이 업계 떠돌 테고, 그 나이에 이만한 자리 가당키나 하겠어? 그리고 이 제안 걷어차고 이직하면 과연 업계 레퍼런스를 우리 회사가 잘해줄까? 잘 생각해보라고. 위기는 곧 기회라잖아. 나도 탐난다 탐나!"


어이없음이 길어지면 헛웃음이 나고,

그 썩은 웃음이 그치면 냉소로 가득 찬 눈빛을 띄게 된다.


"아니 그렇게 좋은 자리면 팀장님이 CEO로 올라서는 게 맞지 않나요? 사표낸 사람한테 갑자기 CEO라뇨.. 저는 지금 이 말들이 다 무슨 말인지 이게 다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정말 하나도 안 되네요 팀장님."

조금 수그러든 말투로 아인이 말했다.


"나? 에이~ 이 사람. 나는 이제 은퇴가 코 앞이야. 무슨 CEO.. 나는 그냥 아무것도 안 하다 조용~히 이 자리 지키다가 은퇴하는 게 꿈이네. 망할 전염병이 터져서 자리가 오늘내일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버티기만 해도 땡큔데 굳이.. 자네같이 젊은이들이 올라갈 수 있게 자리 양보해줘야지."


‘퍽이나..’

아인은 순간 코웃음이 날 뻔한 걸 애써 참았다.

CEO에 올라설 능력도, 의지도, 그리고 저렇게나 당당히 아무것도 안 하고 조용히 은퇴하고 싶다고 말하는 팀장 앞에서 아인은 정말 이 사람한테는 배울게 아무것도 남지 않았구나 하는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자살을 할까 커피나 한 잔 할까.

내용은 기억이 안나지만 무척 인상 깊었던 그 책 제목이 왜 이 대목에서 생각이 났던걸까.


사표를 밀어붙일 것이냐.

CEO 올라가  텐가.

세상은 때론 이런 것 쯤은 아무것도 아니란 듯이
인생을 저울 위에 올려놓고 선택을 강요한다.


설 팀장의 선공에 얻어맞은 아인이 이게 다 무슨 상황인지 아직 얼떨떨하고 있을 때, 저 멀리서 함 전무에게 한소리 들었는지 서 부장이 씩씩대며 걸어오고 있었다. 인기척을 느낀 설 팀장이 갑자기 부자연스러운 말투와 제스처를 보인다.

아인은 그 몸짓에서 설 팀장이 이 대화가 누군가의 귀에 들어가는 것을 극히 경계하는 낯선 태도를 느꼈다.


"흠흠. 그래. 오늘 말한 거 잘 생각해보고 난 함 전무님 시키신걸 좀 급하게 해야하니 나중에 또 얘기하자고. 그리고 마음 정할 때까지는 다른 사람한텐 함구하고.. 그게 본인한테도 좋을 거야. 무슨 말인지 알지?”

설 팀장은 누가봐도 어색하게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주 과장? 설 팀장이랑 무슨 얘기를 그리 진지하게 해? 사표 수리 안 해준대지? 크크"

아침에 놀린 게 부족했는지 서 부장은 아인을 보자마자 놀리기 시작했다.


"아- 함 전무님 이번 주 내로 희망퇴직 확정 리스트 만들어서 결재 올리라는데 돌겠다 정말. 이 판국에 누가 나가려고 하겠느냔 말이야 내 말이. 하~참!!”


그래 바로 저 하~참.

너무 어이가 없으면 자고로 한숨과 헛웃음이 같이 나는 법이다.


하지만 설 팀장의 이 되지도 않는 제안이 아인의 마음을 그렇게나 한참이나 뒤흔들어놓을 줄,

그때는 아무도 몰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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