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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샤할머니 Feb 27. 2020

힘든 그때만 딱 힘들고 나머지는 다 좋다

엄마도 "첫째야 둘째야 뭐뭐 하지 않아요~" 소리 그만하고 싶어...

일요일 저녁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우리가 사는 용인에서도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여 어린이집이 휴원에 들어가고 3월 3일 예정이었던 유치원 입학도 연기되었다.

일단은 3월 9일로 미뤄졌지만 문제는 그때라고 또 미뤄지지 않을 거란 보장이 없다는 거. 아무것도 기약할 수 없다는 거다. 언제쯤 이 사태가 진정이 될는지... 당장 집에서 애들을 돌볼 상황이 안 되는 부모들은 얼마나 더 애가 타려나...


좀 주춤하는가 싶어서 주말엔 마스크 쓰고 에버랜드에 가볼까 생각하기가 무섭게 대구에서 일이 터졌다.

날마다 확진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경제가 흔들리고 갑자기 나라가 마비될 것 같이 걱정이 되어도 키우는 애들이 없다면 이렇게까지 불안스럽진 않을 텐데....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게 마치 전의를 다지게 한다.

아무리 조심히 돌아다닌다고 해도 집에만 있는 것만큼 안전할까.

한겨울에도 칼바람이 불지 않는 이상 마스크를 쓰고라도 바깥 활동을 하는 우리 집 애들과 나는 당분간 집에만 있어보겠노라고 맘을 단단히 먹었다. 지지고 볶고 싸우더라도 청정 구역 우리 집 안에서 하자!

 

소꿉놀이를 가장한 둘째의 젓가락질 연습 /한지를 찢어 국수집도 차려보고 /수수깡 부러트리는 재미 한번 맛보면 멈출수 없다요~!
오늘은 국수 말고 뭐 없을까? 다른 질감, 다른 색의 종이에 그림 그려보기 적극추천! 아이들이 손수 만든 한지발은 인기 최고~~
종이에도 그리고 유리에도 그리고~ 셀로판지 놀이는 어느새 작품활동으로~ 우리 작업자들 오늘 일당 두둑히 드려야겠어!
물감을 섞어 떨어트리면서 휴지가 물들어가는걸 보는게 재밌어요! / 알파벳 스티커는 붙이라고 주기만해도 자꾸 물어보기에 자연스럽게 학습효과가~
너덜너덜 해질때까지 불어대던 쥐 레이싱 / 우리 아랫층 이웃은 태평양 바다같은 마음씨를 갖으셨어요!



자유롭게 밖에 돌아다니지도 못하면서 27일째 하루 24시간을 셋이 붙어 있으니 '그러면 안된다, 뭐뭐 하지 마라, 그만해라.' 이런 말들이 반복되는 상황도 늘어나고 있다. 

내가 지치는 만큼 아이들도 지쳐갈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나한테 더 실망감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정작 그런 말을 하는 나보다 '뭐 이렇게 안 되는 것 투성이야' 라며 아이들이 더 힘들 수도 있겠다. 

'뭐야.. 이 엄마라는 사람 하루 종일 같이 있어보니 별로네~' 속으로 이러고.

근데 있잖아, 엄마도 "첫째야 둘째야 뭐뭐 하지 않아요~" 소리 그만하고 싶어...






작년 같았으면 이 사태가 정말 너무 끔찍스러웠을 거 같은데 불행 중 다행인 건 두 녀석이 이제 같이 잘 논다는 거다. 첫째는 이제 졸졸 따라다니는 둘째를 귀찮아하지도 않고 오빠를 따르는 둘째를 도와주며 오빠로서의 자긍심도 느끼는 거 같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첫째에게 둘째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스트레스였는데...

하지만 둘째가 말은 못 해도 알아듣는 게 많아지면서 둘은 최고의 친구가 되어가고 있다.

내가 그렇게 꿈에 그리던 모습.


놀러갔을때 특히나 꼭 붙어 있는 둘을 바라볼때면 너무나 사랑스럽다 / 주세요 손을 내미는 둘째도 하트, 그런 둘째에게 직접 먹여주는 오빠도 하트
시소 태워주는 오빠 최고! / 장난감과 책으로 집을 만들어 그안에서 서로 종알거리며 책을 읽고/ 간식도 꼭 붙어서 먹는 남매. 나란히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냠냠~




난 혼자 자랐다.

친구들이랑 재밌게 놀다가도 저녁 먹을 때가 되면 나 혼자 헤어져 집으로 돌아가는 게 정말 너무 싫었고 형제나 자매들이랑 같이 놀 땐 나랑 더 재밌게 놀았는데 결국엔 자기 동생을 챙기는 모습에 상처를 받았다.

그래서 내가 아이를 낳게 되면 무조건 여러 명을 낳아서 '같이 사는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나이 차이가 나면 혼자 크는 건 마찬가지라 터울도 최대한 적었으면 했다.

반면에 남편은 애가 하나여도 되는 사람이었다. 보통은 자랄 때 자기 형제자매들에 치인 사람들이 그런 것 같다.

남편도 형한테 많이 치여서 혼자 자라면 좋은 점이 더 많은 사람이었고 적어도 둘은 낳아야 하는 내가 너무 완강했기에 당연스레 우린 둘을 낳았던 거다.

그런데 둘째가 태어나고 갓난아기인 둘째를 잘 돌보기 어려울 정도로 첫째의 질투가 심했고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잃고 힘들어할 때마다 난 자책할 수밖에 없었다.

'키울 능력도 안되면서 둘을 낳겠다 한 내가 참 바보 같았구나' 그리고 퇴근하고 돌아와 매일같이 우는 둘째와 씨름하는 남편을 보며 '하나여도 됐던 남편을 내가 힘들게 만들었구나' 생각했다.

막연했던 내 욕심 때문에 첫째는 엄마에게서 밀려나고 둘째는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하는 거 같아 둘 다에게 미안해하며 내가 나를 포함해 가족 모두를 힘들게 했다는 사실이 슬펐다.
중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건 (형 때문에 어린 시절이 힘들었다는 남편과 늦둥이로 태어난 남동생과 사이가 별로 좋지 못한 나처럼) 우리 아이들이 서로를 싫어하고 힘들게 하는 존재가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었다.

둘째에게 샘을 내고 미워하며 뭐든 다 뺏고, 붙어있기만 하면 싸우는 모습을 볼 때면 정말 그렇게 될 것만 같아 괴로웠고 그때마다 둘을 낳은 내 선택을 후회했다. 

이게 내가 노력하면 해결될 문제인가? 가족 안에서 상처 받지 않고 건강한 사랑을 하고 받는 사람으로 클 수 있을까? 서로를 미워하지 않는 게 내가 공평하게 대한다고 될 문제일까? 

둘이 서로 치열하게 엄마를 독차지하려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자신이 없어졌다.

내가 어떻게 개입해야 둘 다 불만 없이 더 이상 싸우지 않을지 책을 읽고 아무리 고민해봐도 모르겠었다.

모두 다 내 탓이 아닌데, 내가 나서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없는데 난 아이들의 싸움과 잘못을 내 무능력으로 탓을 돌리곤 했다.

이젠 아이들이 조금 더 크고 때가 되면 다툼은 확실히 줄어든다고, 당장에 나아지진 않아도 결국 좋아질 거라고, 그렇게 믿고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땐 난 정말 심각했다.

즉각적으로 지나친 반응을 하는 대신 심하게 해가 되는 상황이 아니라면 어느 정도 관망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둘째가 태어난 지 1년 반 정도 많이 힘들었다.

둘셋을 낳은 사람들이 하는 말이 힘든 그때만 힘들고 나머지는 다 좋다 그러던데 나에게도 이제 그 시기가 오나 보다 싶다. '그래도 둘 낳길 정말 잘했구나'란 생각도 슬슬 한 번씩 든다. (가장 큰 이유는 형제가 있는 아이들이 성격이 좋을 수밖에 없다는 걸 몸소 깨닫는 순간이 너무나 많다)

친구 만들어주려 노력하는 엄마들은 대부분 애가 혼자인 경우가 많고 난 이젠 싸울 때 싸우더라도 둘이 잘 놀아서 그렇게 친구가 절실하지 않을뿐더러 이젠 집에서 오랜 시간 둘이 같이 있는 시간도 그리 두렵지 않다. (예전엔 땡볕에도 한파에도 킥보드와 유모차를 끌고 무조건 나갔다)

어디 놀러 가서는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드는데 굳이 좋은 데가 아니어도 이불만 쭈욱 깔아놔도 둘이 까르르 거리며 좋아하고 장난감 없이도 놀이를 만들어 노는 거 보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가족끼리만 놀러 가서도 또래가 있어서 신나게 놀 수 있다는 걸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고 있다.

작년에 바닷가에 갔을 때 부모는 양산을 쓴 채 모래사장에 앉아있고 초등학생 저학년 정도의 여자 아이 혼자 물놀이를 하는 걸 보면서도 우리 아이들은 그럴 일 없을 거라고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도 어릴 때 놀러 가면 자상했던 아빠가 잘 놀아줬어도 놀아줄 때 그때뿐이었지, 그 외엔 난 왜 같이 놀 동생이나 언니가 없는 건지 늘 외롭고 심심할 때가 대부분이었다. 

애가 하나일 땐 첫째와 많이 놀아줬다 해도 부모가 언제까지고 함께 놀아줄 수는 없는 노릇인데 우리 아이들이 커서 혼자 노는 모습을 상상하면 그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또 한 번 '둘 낳길 정말 잘했구나.. 힘든 시간을 잘 이겨냈구나' 싶어 나 자신이 다 대견할 정도이다.

이제 하고 놀자며 엄마를 조르는 일이 거의 없어지고 아예 엄마는 신경도 안 쓰고 둘이서만 놀 때가 많아서 요즘은 애 둘과 같이 있는 시간에도 정신없이 바쁘지 않고 잠깐씩 내 시간도 보낼 수가 있다는 게 정말 신기하다.

코로나가 지나가면 우리도 공원에 나가 따뜻한 햇살 아래 돗자리나 그늘막을 펴놓고, 애들은 애들끼리 놀고 나는 나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한가로이 책을 읽거나 쉬는 모습을 상상하며 오늘도 힘내야겠다. 

어떻게 하면 더 즐겁게 보낼 수 있을지 궁리하고 열심히 육아에 전념해야겠다.

두 녀석 모두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가는 날이 미뤄졌고 그래서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까지 주어진 더 많은 시간 동안 지금 현재 내 임무에 충실하는 것으로 내 마음도 당분간은 홀가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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