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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샤할머니 Apr 09. 2020

그 원하던 유치원에 이렇게나 가기 힘들 줄이야...

48일째엄마어린이집, 엄마 유치원

원래 작가의 서랍 속 내용 없던 이 글의 제목은

'유치원 숲반 합격, 유치원 적응기'였고

소제목은 '우리 첫째 유치원 자랑 좀 하고 갈게요~'였다.


그렇게 원하던 유치원에 가게 되어 설레는 마음으로 등원할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날짜에 맞추어 계획된 스케줄이 착착착 진행되고 있을 때 코로나 사태가 벌어졌다.

유치원을 좀 다니다가 숲반 추첨에서부터 준비물 준비, 첫 OT, 아이와 엄마가 함께 이틀에 걸쳐 유치원 생활을 경험해보는 OT 그리고 유치원 적응기까지 쓰려고 했다.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그 제목으로 글을 올렸을 텐데....

계속 등원이 연기되면서 안 그래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내 글밥 처지에 글 완성도 못하고 아쉬움만 더해졌다.  

그 글이 올라가고 나선 내가 홀로서기를 시작하는 글을 마지막으로 브런치 한 권을 완성하는 게 3월의 목표였는데...

엉망진창까지는 아니더라도 꼬이긴 한참 꼬여버렸다.




내가 이 동네에서 아이들을 낳고 키우며 전부터 찜해놓았던 유치원이 있다.

아파트 단지 입구에 '성체유치원'이라고 적혀있는 노란 큰 버스가 정차하는 것을 보고 알아보니 예상대로 천주교 유치원이 맞았고 위치를 봐 뒀다가 그 근처를 지날 때 들러봤다.

숲으로 둘러싸인 큰 수도회 부지 안에 있는 유치원을 보는 순간 첫째에게 이곳이 네가 다닐 유치원이라고 말했다. 첫눈에 반해버렸다.

첫째의 손을 잡고 아이들이 가꾸는 것처럼 보이는 텃밭도 가보고 숲 속에 통나무들과 큰 밧줄이 있는 자연 그대로의 놀이터에서 산책을 하면서 우리는 정말 이 유치원에 다니고 싶어 졌다. (첫째는 각진 네모의 큰 버스를 제일 맘에 들어했지만.)


2019년 11월 9일 떨리는 마음으로 첫째와 함께 성체유치원에 갔다.

올해부터는 '처음 학교로'라는 사이트에서 3지망까지 지원을 하고 자동으로 추첨되는 시스템인데 그에 앞서 입학설명회를 다녀온 것이다.

1978년에 설립되어 몇 년 전부터는 이곳을 졸업한 엄마나 아빠가 자녀를 데리고 온다는 원장수녀님의 말씀은 나를 더욱더 기대에 부풀게 만들었다.

이미 이곳으로 보내기를 정하고 왔기에 마냥 설레고 좋기만 했는데 그것도 잠시 '숲반'의 존재를 알게 되는 순간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정원이 넉넉한 누리과정반과는 다르게 우선모집을 한 사람들을 제외하면 모집인원이 열명 조금 넘는 숲반에 꼭 보내고 싶었다.

난 그전에 모집요강을 확인했었고 '왜 좀 극성을 떨어 미리 전화로 물어보고 지원을 하지 않았을까 그랬으면 그냥 됐을걸...' 하며 땅을 치고 후회했기에 더욱 간절히 원할수밖에 없었다.

워낙 활동적이고 바깥놀이를 많이 하는 첫째에게 딱인 숲반은 결국 추첨을 하게 될 상황에 놓였다.

빨래에 자신 있는 엄마들은 꼭 지원해달라 하시던 원장수녀님도 예년과는 다르게 치열한 상황에 갸우뚱하시는 눈치였다.

숲반은 미세먼지가 안 좋은 날에도 마스크를 끼고 나가고 비 오는 날은 물론 추운 겨울날에도 무조건 밖에 나가 자연 속에서 놀이중심 교육을 받는다.

그동안은 미세먼지, 감기 그리고 더럽혀지는 옷 때문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원하지 않았던 것 같다.

도시에서라면 훨씬 비싼 원비를 내고도 못 보내서 안달일 곳인데 사립임에도 병설유치원보다 조금 비싼 원비로-첫째가 다녔던 어린이집 경비보다 싸다- 자연 속에서 첫째가 누릴 즐거움과 다양한 활동들을 생각하니 더욱 초조해졌다.

하지만 늦어도 너무 늦어버렸다.

이제 와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숲반 지원서를 내고 돌아오는 거밖에는....



기다리는 사흘 동안 추첨하는 상황만 떠오르면 쿵쾅거리는 마음이 주체가 안되었고 잔뜩 긴장을 하며 12일 추첨을 하러 갔다.

대충 몇 명이나 왔나 세어보려 해도 동생들이나 형 누나들이 같이 와서 가늠이 안되었다.

원장수녀님이 여자아이들 남자아이들 나눠서 추첨 순서를 정하라고 하셨고 인원이 나뉘고서야 보니 남자아이들이 딱 봐도 적어 보였다.

잠시 안도하고 가위바위보를 짰는데 글쎄 첫판에 여섯 명 중 다섯 명이 보를 내고 나만 홀로 주먹을 낸 게 아닌가.

불길했다.

추첨 순서만 마지막이 된 건데도 마치 마지막엔 엑스가 적혀있는 종이만이 남게 될 거 같아 그 자리에서 바로 떨어진 기분이 들었다.

이미 좌절하고 있는데 원장 수녀님이 추첨을 시작하겠다 하시고는 그제야 하시는 말씀이, 남자아이들은 6명이라 추첨 안 해도 돼서 여자아이들만 추첨을 진행하시겠다고!!!

수녀님은 너무 덤덤히 쓱 지나가듯 말씀하셨지만 남자아이 부모들은 환호를 질렀다. 내 맘도 꺅꺅거리며 기쁨에 펄쩍펄쩍 뛰었다. 그리고 여자아이들만 피 터지는 추첨이....



이어서 간 1차 오리엔테이션에서 첫째에게 맞는 체육복과 숲복을 받고 입학금과 숲에서 사용할 스토그마 크레파스 값까지 더해서 계좌입금을 안내받았다.

그리고 교실로 자리를 옮겨 수녀님이 물어보시는 것을 여러 그림 중에서 선택하여 가리키는 테스트를 받았는데 집에서완 다르게 의젓한 모습으로 끝까지 해내는 첫째를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듯 흐뭇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 막연히 보내고 싶던 마음에서 입학 설명회와 오티 경험 후엔 아직 다녀보지도 못한 이 곳에 더욱 애착이 생겼다.

밝은 햇살이 큰 창으로 따뜻하게 비춰 들고 창밖으로 나무들이 보이는 그 교실에서 3년을 보낼 첫째를 생각하니 너무 좋았다.

텃밭에서 직접 가꾼 꽃이나 채소를 말려 차로 끓여 마시고 겨울엔 불을 지펴 채소들도 구워 먹고 자연에서 신나게 몸으로 뛰놀 수 있는 이 유치원이 정말 너무 맘에 들었다.

내가 다니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다음 스케줄 2월 27,28일 오전반으로 엄마와 단둘이 유치원 생활을 체험하는 진짜 오리엔테이션을 앞두고 이 사태가 벌어졌다.


"엄마 왜 코로나 바이러스는 안 없어지냐....."

첫째는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이 말을 한다.

아마도 유치원이나 에버랜드에 가고 싶어 문득문득 생각날 때면 한 번씩 말하는 거 같다.

속상하다.

너무 가고 싶고 기다려도 기다려도 기약 없는 유치원은 가지 못하고,

2월 21일 이후로 48일째 우리 집 첫째 둘째는 휴일도 없는 엄마어린이집, 엄마유치원에 다니고 있다.

나는 '엄마선생님'이다.

애들이 덜 지루하게끔, 에버랜드나 유치원 생각이 덜 나는 것만 생각한다. 




둘만의 대화를 하며 노는 모습을 바라보는 건 나에게 정말 행복한 일이다.

첫째와 둘째 사이엔 항상 엄마가 껴있었는데 둘째가 말귀를 알아듣게 되면서 둘의 상호작용이 늘어나고 유대감이 형성되어 둘은 좋은 놀이친구가 되고 있다.

그래서 이제 육아로 인한 전쟁 같은 나날까지는 아니다.

원래도 최대한 길게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싶었던 나는 둘째가 좀 클 때까지 가장 힘든 시기만 첫째를 어린이집에 보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은 코로나 덕분에 이제 집에서 둘을 같이 보고 있다.

첫째를 보내다 안보내니 힘이 들긴 하다.

하지만 보내봐서 지금이 힘들게 느껴지는 거지 애초부터 어린이집은 안 보내고 싶어 했으니 힘들어도 당연한 거 아닌가 싶다.

정작 애 둘을 델고 있는 거보다 힘든 건 바깥에서 놀리는 걸 좋아하는 내가 날이 따뜻해지고 꽃이 피는 이 좋은 계절에 집에만 있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마스크를 쓰고 동네에서 잠깐씩 놀긴 하지만 집 옆에 있는 에버랜드도 못 가고 며칠 전엔 모래놀이를 하러 자주 가던 초등학교에서까지 쫓겨났다.

긴급 보육하는 애들은 신나게 놀고 있는 모습을 보며 왠지 모를 화가 났지만 모래 장난감을 쏟기가 무섭게 다시 담는 우리 아이들을 보며 그럼 이제 어디를 가야 하지? 어디를 가야 애들이 덜 실망할까?! 생각하기 바빴다.


매일 똑같이 시간을 때우듯이 노는 거 말고 다양한 경험을 하며 아이가 진짜 즐겁게 몰입해서 놀았으면 좋겠다.

'질 좋은 놀이'를 하게 도와주고 싶다.

언제든 물을 틀고 흙을 갖고 놀 수 있는 앞마당은 없지만 집에서든 밖에서든 계속해서 상상력을 발휘해 놀 수 있도록 궁리하고 또 궁리한다.

매일 저녁 메뉴를 정하는 것이 나의 제일 큰 할 일이었다면 이번 주는 뭐하며 놀까 굵직한 놀이 몇 가지를 정해두는 것이 추가되었다.

유치원과 에버랜드는 못 가지만 엄마와 하는 놀이도 충분히 재밌걸랑요~라고 말하고 있다고 생각해야지.

엄마선생님 파이팅!


목욕탕 가기 좋아하는 엄마도 지금 몇달째니... 어우 시원하겠다 이케아돼지랑 희동이는../ 우리 아파트 산책로. 만개한 벚꽃이고 뭐고 신나서 뛰어다니느라 정신없는 우리 강아지♡
풀떼기 김치를 버무리고 솔방울 땅콩을 넣어 맛있는 맘마를 만드는 첫째와 결국 장화와 양말을 벗어제끼고 돌멩이와 풀, 나뭇가지로 장화를 채워온 둘째♡
공사현장에서 땀 흘리고 있는 우리 인부들. 오늘 너네 장비 빨 좀 받는다? / 바람 빠지며 날아다니는 풍선만 잡으러 다니다가  죄다 불어 달아주니 세상 신나~
산책하다 주워온 솔방울에 색칠도 하고 나무에 알록달록 물을 들였던 물감 놀이. 하지만 아직은 그리는거보다 바르는게 더 많은 아이들.
이 날 엄마 밥을 한솥 했던거 모르지? 매일 쌀 풀때마다 만져보고 싶어 했잖아~ 어찌나 길게 몰입하던지.. 결국 난 버티다 버티다 결국 놀이매트를 샀다!
특이한 돌멩이나 나뭇가지, 솔방울을 주워 다니는 것만으로도 애들은 재밌어한다. 이름 위에 나뭇가지를 올려보고 기찻길도 만들어보고 화단에 솔잎과 나뭇잎으로 케이크 장식을 ~!
냉이와 쑥을 캐러 갔던 날. 엄마 아빠도 평소 지들처럼 노는 거 같았나 부지? 하트에 가려진 얼굴엔 나 행복해요~~ 하는 미소가. 냉잇국은 국물만, 쑥부침개는 진짜 잘 먹더라~!
색종이 미어터지게 두발을 올려놓는 모습이라니.. 정말 너무 사랑스럽다. 손바닥 발바닥 매치가 잘 안 됐을 때 약간의 효과음만으로도 그렇게 기분 좋은 웃음소리를 들려주어 고마워!
풍선놀이에 이어 유치원 카페의 놀이자료. 처음엔 세게 던지더니 골인시킬 때의 희열을 제대로 맛보곤 멈출 줄을 모르더라~!
놀이매트를 왜 진작 안 샀을까... 클레이 가루로부터 해방감을 느낀 어느날 엄마는 과감히 밀가루를 포대로 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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