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브런치 북을 발행하기까지 과거의 많은 사진과 글을 보고 그때를 추억하며 글을 썼다.
현재의 내가 과거를 만나는 글을 쓰는 그 시간이 혼란스러울 때가 있었지만
그래도 꾹 참고 꾸역꾸역 글을 썼더니 글은 뒤죽박죽이어도 기분만은 뭔가 정리가 되고 있는 듯했다.
과거의 내가 그리워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지금의 내가 좋아지다니...
지금 내 모습이 더욱 보잘것없고 초라하게 느껴진 건 잠깐이었다.
오히려 과거 내가 했던 것들은 충분히 경험해 봤으니 일단 현재 주어진 엄마로서의 역할부터 가뿐히 해내고 싶은 의지가 솟구쳤고
기본적으로 그 임무부터 멋지게 수행하면서 나 자신도 즐겁고 만족할만한 일이 무엇일까를 계속 고민하게 되었다.
당연히 엄마로서의 책임감으로 육아를 했던 것과 내가 엄마로서의 그 역할을 정말 잘하고 싶고, 내가 바라는 엄마의 모습으로 자꾸 나아가려는 마음가짐으로 바뀐 것은 정말 나에게 위대한 변화였다.
내가 얼마나 화려하고 대단한 모습이 된다 한들 하나 소용없는 일이며 지금 좋은 엄마로서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것이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우선적이고도 최고의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것을 이제야 온몸으로 깨닫게 되었다.
한 번씩 '우리 아가들 잘 컸다'라는 생각을 선물 받는데 그럴 때 '나 잘했구나, 그동안의 시간들이 그냥 흘러갔던 게 아니구나' 란 생각이 들고 그 경험들이 나 스스로도 육아의 가치를 더욱 높이 생각하게 해 주었다.
잘하고 싶어 졌다.
더 좋은 엄마가 되고 더 건강하고 행복한 아이들로 키우고 싶어 졌다.
이 생각은 날 더 자발적이고 주체적으로 만들어서 아이들과 시간에 끌려 그냥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는 이 기회를 우리가 더욱 사랑할 수 있는 날들로 즐겁게 보내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다.
내가 어릴 때부터 맨날 했던 말이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뭘 할 수 있을지 알아내는 게 어렵지 그 답만 나오면 그대로 하면 돼~!'였다.
역시 이번에도 그랬는데 그 전과는 차원이 다르게 오랜 시간 그리고 더욱 치열하게 고뇌하느라 결정만 내리면 된다는 걸 잊고 있던 거다.
5월 중순부터 첫째는 유치원에 둘째는 어린이집에 간다.
둘 다 보낸 뒤 티비보다 잠이나 자고 집안일이나 슬렁슬렁하며 허송세월 보내는 건 아닌지 걱정했던 나인데,
정말 시간이 쏜살 같이 지나가는구나 느낄 정도로 열심히 지내고 있다.
우선 너저분히 정리가 안되어 보기도 싫고 들어가기도 싫었던 공간들을 하나씩 정리하고
애들 퍼즐이나 작은 장난감들이 들어가도 꺼낼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가구들도 내 힘이 닿는 곳이라면 과감히 들어내어 청소하는 것이 엄청난 쾌감을 주었다.
하루에 다 몰아서 하지 않고 그때그때 내키는 것들, 손이 가는 것들을 하나씩 하다 보니 부담도 없고 매일 큰일 하나씩 하고 있다는 뿌듯함마저 들게 했다.
오늘은 이걸 다 해치워야 해! 내일은 뭘 해야 되고, 언제까지 그건 다 끝내야 돼! 이렇게 처음부터 다 정해뒀다면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집안일에 금방 지쳤을게 뻔하다.
물론 처음부터 청소가 목적이진 않았다.
무엇보다 내 공간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고 이대로 가다간 베란다 구석에 처박혀 있는 재봉틀을 꺼내는 데만도 몇 달이 걸릴 거 같았다.
거기다 옛날 아파트라 베란다도 널찍널찍한데 그냥 애들 용품과 당장 쓰지 않는 물건들로 그 공간이 낭비되고 있는 게 너무 아까웠다.
줄 수 있는 건 주고 버릴 건 버리고, 정리하고 청소해서 베란다 하나를 내 공간으로 만들어보기로 했다.
이 집에서 내가 정말 애정 하는 공간으로 만들어서 내 물품들도 정리하고 무엇보다 재봉틀을 옮겨와서 언제라도 바로 사부작거릴수 있도록 정돈되게 펼쳐놓고 싶었다.
요즘 비는 오락가락 하지만 뭉게구름 둥둥 맑은 하늘에 쾌청한 날씨는 내 공간에 공을 들이는 그 시간을 더욱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그야말로 유럽 날씨가 조금이라도 더 머물고 싶을 내 공간의 완성을 응원해주는 느낌?!
가장 큰 변화는 공부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전부터 고민은 했었지만 시험과목이 대폭 개편되어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공부를 한다는데 의미를 두고 공무원 시험을 천천히 준비해보기로 했다.
길게는 아이들 초등학교 고학년 되기 전까지 합격하는 것을 목표로 공부하는 모습, 노력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맘이 컸다.
예전 같았으면 뭐 하나 시작하면 열일 제쳐두고 그것에만 올인해야 된다는 생각에 시작하기도 전에 숨이 막힐 듯 부담이 됐을 텐데 무엇보다 진득하니 꾸준하게 공부하는 내가 되어보고 싶었다.
일단 학창 시절 가장 쥐약이었던 한국사 책부터 샀다. 국사는 아이들이 커가면서 엄마도 많이 알아두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했었다. 항상 시험 보기 전에만 바짝 외우고 다 잊어버려서 하다못해 사극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도 답답한 게 늘 맘에 걸렸던 부분이다.
작정하고 하나하나 암기하는 것은 지금 나에게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서 소설책 읽듯이 계속 반복해서 읽기로 했는데 정말 뜻도 모르고 외우기에만 급급했던 어릴 때가 생각나면서 그게 이런 거였구나~ 재미가 느껴질 정도였다.
이렇게 하루에 단 한 장이라도 한국사 책을 정독하고 버리지 못하고 있던 영어 문법책으로 적어도 하루에 한 유닛씩 공부하고 있다.
첫째는 유치원에 가는 초반 나와 눈만 마주치면 "엄마, 유치원에 가기 싫어. 자꾸 엄마 생각이 나."란 소리를 계속했다.
몇 달 동안 엄마와 집에 있다가 새로운 환경 속에서 적응하는데 힘들어 보였다.
그렇게 아침마다 떨어지기 싫어서 울거나 가기 싫다고 힘으로 버티는데도 떼어놓고 집에 오면 하루 종일 기분이 안 좋았다.
그렇게 힘들게 아이를 떨어트려놓고
아이가 없는 시간을 허투루 보내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했다.
아이들도 엄마와 떨어져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잘 지내다 오는 것처럼 나도 아이들이 없는 시간을 열심히 보내서 아이들에게 당당한 엄마, 나 자신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내가 되고 싶었다.
둘째가 어린이집에서 적응기간을 끝내고 낮잠을 자고 오고, 첫째가 하원 버스에서 내려 처음 하는 말이 "엄마, 너무 재밌어서 집에 오기 싫었어" 혹은 "나도 다른 애들처럼 간식 먹고 오고 싶어" - 엄마가 일을 하는 아이들만 간식을 먹고 방과 후 활동을 한다- 로 바뀔 때쯤 나도 그렇게 구석구석 청소도 하고 미싱, 페인트칠에 수를 놓고 공부를 하면서 애들 없는 시간엔 뭐 먹는 시간도 아까울 만큼 바쁜 일상에 익숙해지고 그만큼 맘은 아주 편하게 지내게 되었다.
그리고 며칠 전 무척 아팠다.
친정 엄마는 내가 너무 몸을 혹사시켰다고 했다.
정신없는 아침시간을 보내 놓고도 조금도 편히 쉬는 시간 없이 계속해서 뭔가를 하고 애들이 오는 시간부턴 또 애들에게 집중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첫째를 데려와서 간식을 주고 대강 저녁 준비를 해놓은 뒤에 둘째를 픽업해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나가고 공기가 좋으면 공기가 좋은 대로 나가 돌아다녔다.
그렇게 집 근처 휴양림 잔디밭으로 아님 에버랜드, 하다못해 단지 내 산책길이나 놀이터라도 돌고
아빠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애들을 씻기고 재우고 집안 정리를 하고.
그러고 나서도 또 그 시간이 아까워 바로 자지 못하고 오전에 못 끝낸 공부나 일들을 했으니 틀린 말도 아닌 거 같은데 몸은 힘들었을지언정 내 맘이 참 편했으니, 마음만은 무척 건강했으니! 죽 먹고 약 먹고 하루 남편한테 다 맡기고 앓아누운 것쯤이야 끄떡없었다.
수시로 시간을 확인할 만큼 빠르게 가는 시간이 너무나 아깝고 그렇게 잠보인 내가 잠이 아까울 정도로 바삐 지내던 보통날에 더욱 감사함을 느끼게 되어서 더욱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