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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샤할머니 Aug 25. 2020

엄마가 다니고 싶다 야

나도 참았으니깐 엄마도 참아

첫째는 유치원을 다니고 한 달을 꼬박 힘들어했다.

떨어지기 싫어서 울거나 가기 싫다고 스스로 버스에 안 오르고 힘으로 버티는그런 첫째를 억지로 보내 놓고 발걸음 무겁게 집으로 돌아오는 평일 아침이 나도 너무 싫었다.

같이 있을 때는 수시로 "엄마, 유치원에서 자꾸 엄마 생각이 나..."라고 말하며 슬픈 눈으로 쳐다보면 나도 언젠가부턴 한숨부터 나왔다.

그렇게 나도 지칠 때쯤 눈치 빠른 둘째는 자기는 안 울고 인사도 잘할 거라고 말하며 어린이집에 금방 적응했고 엄마에게 우리 둘째는 달님반 에이스라는 소리도 듣게 해 주었다.

시도한 지 둘째 날부터 바로 낮잠까지 자고 오는 기특한 둘째가 24개월이 지나면서는 기저귀까지 뗐고 그러는 어느새 첫째도 비교적 수월하게 등원을 하게 되었다.

어느 날 유치원 버스에서 내려서 제일 처음 하는 말이 "엄마 너무 재밌어서 집에 오기 싫었어"라던 순간이 아직도 너무 생생하다.

감격스러워 울컥하기까지 했다.

가 얼마나 우리 첫째를 이 유치원에 보내고 싶어 했는지 그리고 또 얼마나 우리 첫째에게 딱 맞는 곳이라 생각하며 잘 지내길 바랬는지...

이제 드디어 그런 유치원 생활을 즐기고 있는 건가 맘이 놓였고 애들이 하원을 하고 돌아오면 나도 아이들과 더 즐겁게 시간을 보내려 최선을 다하게 되었다.


엄마도 우리 첫째가 정말 많이 보고 싶어, 힘들지만 참는 거야. 잘 참을 줄 알아야 네가 그렇게 바라는 대로 진짜 멋진 어른이 될 수 있는 거야


엄마 생각이 나서 힘들다 할 때마다 이렇게 말했더니 이젠 한 번씩 나에게 뭔가를 요구했을 때 쉽사리 먹혀들지 않는다 싶으면 "OO이도 참았으니깐 엄마도 참아"라고 말한다.

자기도 가기 싫은 유치원에 가서 엄마가 보고 싶어도 잘 참았으니 엄마도 힘들어도 참고 해달라는 얘기다.

그리고 어쩔 땐 내가 지 요구를 잘 들어주면 "OO이도 양보했으니깐 엄마도 그렇게 해주는 거야?"라고 묻는데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음부터 나온다. 유치원에 가. 줬. 다. 는 거다. 그것도 지가 크게 양보해서.




그렇게 첫째가 적응을 잘하고 있을 때 유치원의 전화 면담 기간이 시작됐다.

첫째는 숲반인데 우리 유치원에 다섯 살은 누리과정반이 반, 반이 반이 있다.

첫째 등 하원을 시키면서 먼저 상담을 한 다른 반의 엄마들 얘기를 들어보니 대부분 부정적인 얘기들만 들은 거 같았다.

심지어 애를 얼마나 오래 봤다고 그렇게 판단해버리냐고 화가 나서 원장 수녀님과 전화 통화라도 해봐야겠다는 엄마도 있었다.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날짜가 다가오면서 점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하원을 하고 나서야 면담이 시작되기에 나는 둘째 어린이집에 조금 늦게 데리러 간다고 양해를 먼저 구해놓은 뒤 긴장을 하며 전화를 기다렸다.

모르겠다.

다른 반 아이들 엄마의 얘기만 들어봤으니 우리 반 담임 수녀님은 원래 칭찬을 아끼지 않고 대부분 좋은 얘기만 해주시는 분일지도.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내가 들은 칭찬들이 조금이라도 빛이 바랜다거나 반감되지 않을 것 같았다.

담임 수녀님께서 처음 하신 말씀이 "우리 첫째나 첫째 어머니에게는 제가 바라거나 부탁드릴게 정말 하나도 없어요~"였다.

우리 첫째는 너무 잘 지내고 있다고 친구들에게도 인기가 참 많다고.

난 정말이지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내가 제일 염려하던 부분이 친구들과의 관계였기 때문이다.


사실 첫째가 적응을 힘들어하면서 우리 첫째 혼자 이 유치원을 보낸 것이 과연 잘 한 선택이었는지 여러 생각들이 나를 괴롭혔었다.

그중에 하나가 '그렇게 내가 보내고 싶었던 유치원이라도 그냥 어린이집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가는 데로 보냈어야 했나... '였다.

많은 엄마들이 어울리던 친구가 가는 곳으로 같이 보내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텐데...

그게 다른 어떤 것보다도 제일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을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게 우리 첫째에게는 좀 일렀나, 감당하기 너무 힘든가...?

좋게 말해 인성과 놀이 중심이지 안 보내는 엄마들 말대로 우리 유치원은 딱딱한 분위기에 선생님들도 엄격해서 아이들이 주눅 들고 더군다나 숲 반은 놀기만 하느라 알던 것도 잊어버리는 곳인가?

그러니깐 이 유치원과 우리 첫째와는 정말 안 맞는 걸까?!


하지만 활동적이고 자유분방한 첫째가 하루 종일 교실 안에만 있으면서 더 많은 통제를 받고 공부만 시키는 유치원에 보내긴 정말 싫었다.

난 네 살부터 학습지를 시키고 영어며 미술이며 이것저것 특별 수업을 많이 하는 유치원이라고 좋아하는 엄마가 못되었다.

어렸을 땐 마냥 밖에서 뛰어놀게 하고 싶다. 그렇게 놀 때 더 많은 걸 배우고 성장한다고 믿는다.

보내고 싶던 유치원에 숲반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그래서 정말 여기가 아니면 안 된다 싶을 정도로 절실했던 나는 숲이라는 자연 속에서 스스로 장난감과 놀이를 찾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교육으로 이어지는 유치원에 보내고 싶었다.

지금은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고 정말 잘했다고 느끼고 있고 담임 수녀님과의 면담은 첫째에게 딱 맞았다는 확신이 들게 했다.




숲반은 준비물도 참 많다. 그래서 항상 가방이 무겁고 빵빵하게 가득 차 있다.

1인용 돗자리, 물병, 루페, 코팅 장갑, 매일 피부 마사지에 이용하는 건솔 건포, 그리고 차를 마실 수 있는 등산 컵과 유치원에서 계피와 아이들이 직접 말린 쑥으로 만든 천연 포푸리가 달랑달랑 매달려 있다.

이밖에도 유치원에 놓고 쓰는 우비 장화, 스토그마 크레파스, 여분의 옷 등등하면 여차하면 하나씩 빼먹을 수 있어 덜렁이 엄마인 나는 늘 몇 번씩이고 확인을 해야 한다.


유치원 카페에서 일주일 동안의 유치원 생활 사진이 금요일마다 올라오는데

 사진들을 보면 '아 진짜 첫째 유치원을 내가 다녔었다면...' 한다.

아직 눈은 안 내렸지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나가서 공부하고 놀고 숲을 탐험한다.

날이 좋을 때는 야외에서 개인 돗자리에 앉아 점심을 먹으며 소풍 기분을 내기도 한다.

감자도 캐고 방울토마토와 가지도 따고 먹을 사람만 쌈 채소와 고추도 따게 해서 직접 따는 재미에 채소를 안 먹던 아이도 먹게 만든다.

피클이나 화채 꽃차 등 먹는 것을 만드는 과정에 -직접 기르고 수확하고 말리고 자르고 등등- 참여한다. 

유치원 앞에 있는 논에서 개구리, 우렁이, 지렁이도 찾고 자연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이 장난감이 되고 공부가 된다.

이 좋은 유치원에서 빨리 마스크 없이 더 신나게 뛰어놀 수 있게 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우리 첫째 유치원의 '숲 교실'. 주렁주렁 매달린 가방 마저도 이리 사랑스러울 수 있을까
비가 내린 후엔 모든 곳이 신나는 놀이터가 된다 끼야~~~
야외에서 빗물 놀이를 하고 들어와 마시는 따뜻한 가지차~ 생각만으로도 참 좋은데 맛은 어땠는지 물으니 "맛은 없었어"라고 민망한 웃음을 짓는 첫째♡
염색이란 말을 알아들을까 싶어서 천에 색칠을 했어? 라고 물으니 "엄마 색칠이 아니고 흰색 천을 색깔 물에 담갔다가 빼서 물이 든거야~! 라고 말하는데 정말 깜짝 놀랐다
자연물로 직접 벌레 쫓는 포푸리를 만들고 있다. 천주머니도 얼마 전 염색했던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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