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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샤할머니 Oct 28. 2020

나 늙기 싫다

그냥 살다 보니 세월이 흘러 늙어있는 거.. 유유

9개월 만의 외출.

오랜만에 1박 2일 자유부인이 되는 시간.

하지만 전 날부터 계속되는 불편한 마음은 점점 커져서 결국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엔 극에 달했다.

등원 준비를 해놓으면서도 이쯤 되면 나가기 전, 나가기 위한 스트레스가 더 심하게 느껴질 정도.

몇 시간 뒤엔 세상 즐겁게 웃고 떠들 나를 상상조차 못 하고 말이다.

집을 나와 운전 중에도 계속 시간을 체크하며 '지금쯤은 일어났어야 하는데.. 지금쯤은 방에서 나와 겉옷을 입어야 하는데.. 지금쯤은 집에서 나와야 둘째부터 어린이집에 들여보내야 되는데.. 첫째 시간 맞춰 버스 잘 탔나?' 온통 집에 남겨진 사람들 걱정뿐이다.

내가 이렇지 뭐... 떠나면서도 전전긍긍하는 꼴이라니...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한 번씩 창문을 내려 바람도 느끼고 여유 있는 드라이브를 하며 행복해하는 내 모습은 애당초 꿈도 안 꿨다!




매주 금요일은 유치원 숲 반인 첫째가 등산을 가는 날이라 손수 도시락을 준비해야 한다.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일어나 도시락과 가방을 싸놓고 입을 옷과 마스크에 이름까지 적어서 잘 챙겨 놓은 뒤 난 또 후다닥 옷만 갈아입고 나왔다.

심한 출근 정체 없이 예상보다 일찍 친구 집 앞 주차장에 도착했다.

친구는 막 애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분주하게 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친구의 애들이 하원 하기 전까지. 그래서 내가 이렇게 아침 일찍 서둘러 온 것이다.

활짝 웃는 친구 얼굴을 마주하고야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나 1박 2일 휴가다~~~~~~~~!!!! 우히히히

친구가 브런치를 사준다고, 오빠와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그 브런치를!

어딜 가느라 왔다 갔다 하는 시간도 아까워하는 우리는 꽤 근사한 카페에 가서 주욱 다섯 시간을 있었다.

채광 좋은 자리에서 맛있는 빵과 샐러드를 먹고, 잔디밭으로 나와 벤치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작은 오르막 정원을 올라 루프탑에도 머물러 보고~

쉴 새 없이 수다를 떨고 나와서 그동안 너무 가고 싶던 친구의 자랑 동네 시장을 구경했다.

유명한 반찬가게에서 침만 흘리고 저녁에 호텔에 들어가 먹을 주전부리만 좀 산 뒤에 친구와 헤어졌다.

애들을 보면 또 맘이 약해질게 뻔하니깐, 같이 있는 단 1분이 소중한데도 함께 하원 버스를 기다리지도 못한 채.

다시 혼자가 되어 급 우울 해져서는 호텔로 가는데 또 길은 참 이뻐요! 근데 그게 더 슬프더라는.




뭔지 모를 답답한 마음으로 호텔에 체크인을 한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렸는데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가슴이 뻥 뚫렸다.

그리고는 온몸에 긴장이 풀려서 방에 들어가자마자 그대로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

아이들이 태어나곤 혼자 늘어져서 단잠을 잔다거나 하염없이 티브이 리모컨을 돌린다거나 하는 일은 상상도 못 했는데 지금 내가 그걸 하고 있다니.. 어느새 모든 걸 잊고 티브이를 보며 키득키득 웃고 있다니..  

저녁은 낮에 시장에서 사 온 닭강정과 야채빵으로 때우고 여전히 침대에서 꼼짝도 안 하고 쉬고 있는데

창밖은 어느새 어둑어둑 해지면서 낮과는 또 다른 세상이 시작되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그렇게 바라던 "맛있는 닭강정을 먹으면서 + 신서유기를 보고 + 캔맥주 홀짝하기" 요것도 시시했다.

하나둘씩 네온사인과 휘황찬란한 간판들이 켜지면서 밤이 될수록 더 깜깜해지기는 커녕 낮보다 더 화려 해지는 밤거리를 바라만 보고 있자니 또 다운이 되는 기분.

한 번씩 남편이 내가 모르는 유흥 문화를 얘기할 때면 나도 어렸을 때 한번 원 없이 놀아보는건데 싶으면서 그게 그렇게 억울하고 속상했는데 갑자기 바라만 보고 있기는 싫다는 마음이 그래서 들었나?

이래서 남편이 장난으로 이런 애가 늦바람 나면 무서운 거라 그랬나? 하하하하

뭔가에 이끌리듯이 나도 모르게 주섬주섬 옷을 입고 화려한 밤거리를 산책했다.

예전에는 누가 껄떡대기라도 할까 봐 지나갈 때도 앞만 보고 빨리 걷느라 바빴는데... 저급하다는 편견에 시끄럽고 무섭고 싫었는데..

나이 들었다. 나 아줌마가 다 됐구나. 두리번두리번 구경하며 걷는데 모든 게 다 신기하고 재밌었다.

그냥 젊음이 보기 좋았다.

젊을 적에도 그곳에 속해 있지 못했는데 이제는 용기를 낸다 해도 그 안으로 뛰어들 수 없는.

  

편의점이라도 한 군데 들러서 올 것을 완벽하게 이방인으로 겉에서만 맴돌다가 호텔로 들어와

애들을 재우고 전화를 한 남편과 오랜만에 긴 통화를 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잠이 들었다.

내일 고추만둣국도 먹고 걱정하지 말고 놀다 와
 


남편의 응원? 덕분으로 난 계획에 차질 없이 휴가 2일 차의 일정을 시작하기로 맘먹었다.

일어나자마자 나의 소울푸드 고추만둣국을 먹을 생각에 콧노래가 나왔다.

꼬맹이였을 때부터 엄마 손잡고 다녔던 지금은 꽤 유명해진 이 만둣집의 고추만둣국은 내가 늘 그리워하는 음식이다.

주인이 바뀌었으면 어떡하지? 문을 닫았으면 어떡하지? 걱정하며 주변에 주차를 하고 급하게 갔는데 정말 다행히도 만두를 찌는 김이 열일 중이다.

바뀌지 않은 주인아저씨를 확인하며 메뉴판을 보거나 할 것도 없이 고추만둣국 하나 주세요~! 외쳤다.  

변하지 않은 옛날 먹던 맛 그대로의 고추만둣국을 정말 맛있게 먹고 나와 네비에 초정 목욕탕을 찍었다.

새로 뚫린 길로 시원하게 내달렸다.

첫날 집을 떠나올 때와 내 맘이 정말 달랐다. 이렇게 힐링이 되고 있구나 싶었다.

코로나 때문에 몇 달 만에 간 목욕탕인지.. 들어가기까지 걱정스러운 맘이 컸는데 사람도 별로 없고

전쟁 중에도 평화로웠던 마을처럼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이용하는 동네 주민들을 보니 조금 맘이 놓였다.

오랜만이라 더 좋았던 목욕을 마치고 나와 내가 좋아하는 따가운 햇살과 차가운 공기가 동시에 느껴지니 정말 상쾌한 기분에 날아갈 것만 같았다.

"좋다!"

세신을 받은 뒤 냉탕과 온탕을 번갈아 가며 속으로 '으.... 좋다'를 수만 번 외쳤는데 지금 이 '좋다' 한 번이 다 이겼다.

이 기분 그대로 사랑하는 가족이 기다리고 있는 우리집을 향해 달렸다.




목욕탕을 가면 나이 드신 분들이 한 번씩 내 몸보고 이쁘다 그러는데

그냥 허리 굽지 않고 뚱뚱하지 않으니깐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지 싶었다.

나도 아줌마가 됐고 할머니 같은 분이 말씀하시니

부끄럼 없이 배 흉터 자국을 가리키며

애를 둘이나 낳은 몸이 뭐가 이쁘냐고 난 웃으며 말하기도 한다.

난 고등학생 정도 여자들 보면 그렇게 이쁜데..

갑자기 씁쓸해졌다. 내 정도도 이뻐 보이신다는 게..

나 늙기 싫다.
나도 그렇게 늙을 거라는 생각이 들면서 정말 너무 슬퍼졌다.
그리고 그냥 이대로 애들만 키우면서 늙긴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늙더라도 내가 그리는 모습으로 늙어 갈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도.
그냥 살다 보니 세월이 흘러 늙어있는 거 상상만 해도 너무 끔찍스럽다.
좋은 엄마도 되어야겠지만 멋진 중년으로 나이 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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