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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샤할머니 Aug 26. 2020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지

이뻐만 해주기

3주간의 유치원 방학이 끝나가고 있는데 개학을 하루 앞두고 2주간 원격수업으로 대체가 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주말이 되면서 폭증하는 확진자 수를 보며 불안 불안하더라니....

그야말로 확인사살.

용인에서 우리 동네만이 청정지역인데, 첫째가 다니는 유치원은 동네 유치원이 아니다.

심지어 확진자가 많이 발생한 그 문제의 교회가 있는 동네에서도 오는 아이들이 있단다.

하루에도 몇 번씩 주변 지역에서 발생하는 확진자 문자도 모자라 첫째 유치원에서도 조심해줄 것을 당부하는 연락을 계속 받고 있으니 코로나 사태 이후로 지금 상황을 가장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결국 긴급 돌봄을 포기하고 가정보육을 하겠다는 연락을 보냈다.

지난 한 주 둘 다 방학으로 첫째 둘째 다 데리고 있으면서 또 애들이 컸는지 저번 코로나 집콕 때보단 또 한결 나아졌구나 느끼면서 이젠 진짜 델고 있을만하다 자기 주문을 걸면서.


하나만 확실하게 할 생각이다!

이. . 해. 주. 기.

그저 사랑 표현 많이 해주고 대꾸 잘해주고. 

다른 거 특별한 거 해주려 하기보다 그냥 이뻐해 주는 거 그거 하나면 끝.

내가 안 힘들어야 애들도 더 이쁘다!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지

그냥 애들만 이뻐해 줘야지'라고 맘먹은 건 실로 대단한 효과가 있었다.

아무 부담도 없고 그래서 맘도 가볍고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향한 인내심도 아주 길고 강해져서 큰소리 날 일도 없어지고, 당연히 애들도 내 한계를 시험하는 일 없이 쭈욱 즐겁기만 했다.

결국 나한테 달린 일이었다는 걸 깨닫는 건가..

분명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지 했건만 또 어느새 틈틈이 할 일을 하고 있는데 다른 점은 기분 좋게 하고 있다는 거!

여름 방학이 끝나갈 때 다시 시작해야 하는 가정 보육 소식은 계속 기분을 가라앉게 만들고 무기력하게 만들었는데, 그래서 애써 찾아낸 방법이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거였는데!

내 마음에 부담을 덜어내니 이렇게 또 충실히 잘 해내고 있다.

다만 애들을 재우고 난 뒤 공부를 하거나 사부작 거리던 내 시간이 없다는 것이 조금 걸릴 뿐.

의자에 앉아 책을 펼치진 못하더라도 동영상 강의라도 틀어놓고 나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죄책감?을 덜고 싶었는데...

파김치가 되어 애들과 같이 뻗어버리는 바람에 나를 위해서 쓰는 그 귀중한 내 시간이 몇 주째 사라져 버렸다.

솔직히 이게 나뿐만 아니라 육아를 하는 엄마를 가장 힘들게 하는 점이 아닐까 싶다.

미뤄지고 취소되고 미뤄지고를 반복하는 체육센터를 9월에도 못 나가는 상황에,

한 번씩 혼자 휙 나갔다 들어오는 자유부인 찬스도 몇 달째 못쓰고 있고

그나마 공부도 하고 나만의 공간에서 뭔가를 만들며 나름 슬기롭게 극복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마저도 못하니 또 마음의 병이 들 법도 한데...

너무 최선을 다하려 하지 않으려던 마음이,

나도 그냥 쉬는 기간이라 생각하고,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저 아이들하고만 잘 먹고 잘 놀아야지라고 맘먹었던 게

찾아올 수 있었던 위기를 극복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가정 보육 29일 차.

어제는 9월 13일까지 또 연장이 되었다.

지난봄, 계속 미뤄질 때는 많이 힘들었는데...

예상하기도 했고 어느 정도 체념도 된 상태.

우리 집엔 웃음소리만 나도록 계속 아무것도 하지 말고 애들과 잘 놀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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