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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샤할머니 Nov 26. 2020

배운 게 도둑질이라

질풍노도의 시기

나 참... 청소년기에도 이런 질풍노도의 시기는 겪어보질 못한 거 같은데...

출산 후 육아 4년의 시간이 지난 요즘이 내 생에 진짜 질풍노도의 시기인 것 같다.

코로나 속에서 육아를 하며 수시로 바뀌는 상황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들쑥날쑥한 감정의 변화를 느끼며 심리적으로 불안한 시기가 또 찾아왔다.


두 녀석이 모두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가면서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긴 나는 브런치에 글도 올리고 짬짬이 공부도 했다.

물론 코로나로 등원을 안 한 날이 더 많지만 아이들이 등원을 할 때는 잠잘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쁘게 지냈다.

집안 구석구석을 정리하며 나만의 공간도 완성했고 무언가를 만드는 걸 좋아하는 나는 다시 사부작 거리며 수를 놓고 재봉틀을 돌렸다.

거기다 11월 한 달은 휴관을 반복하던 체육센터가 운영을 재개해서 운동도 열심히 다녔다.

진짜 요 근래는 아이들이 집에 있을 때보다도 힘들고 정신없이 바쁘게 지낸 것 같다. (몇 달 사이에도 아이들은 쑥쑥 자라서 아이들과 집에서만 붙어있는 게 전보다 안 힘든 이유도 있지만.)

며칠 전 친구네 집에 크리스마스 리스를 만들러 다녀오면서는 여기에 하나가 더 추가됐다.

우리 친구들 사이에서 오랜만에 태어난 아기라 내가 태어나자마자 그렇게 당장 달려가 안아보고 싶어 하던 그 아기를 열심히 키우고 있는 친구가 꽃시장에서 리스 재료를 사다 놓고 엄두가 안 난다며 연락을 해왔고,

코로나 때문에 더욱 답답하게 집에서 육아만 하는 친구가 혹여나 산후우울증이 와서 힘들어하면 안 되는데 생각하며 늘 주시하고 있는 나는 그런 친구의 요청에 한달음에 달려갔던 것이다.

그리고는 얼마 전 시작한 인스타그램에 아주 작정하고 불을 지피는 결과가.




결혼 전 내 직업은 플로리스트였다.

꽃을 좋아하고 꽃을 만지는 직업을 좋아했는데 한국에선 꽃일을 하며 몸고생을 하고 아일랜드에선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맘고생을 너무 해서 다신 내 직업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배운 게 도둑질이라...

아까운 재능을 그냥 썩힐 거냐며 조금씩 조금씩이라도 시작해보라는 친구의 말에 홀딱 넘어가버렸다.

오랜만에 꽃을 만지니 재밌었고 이제야 내 구역에 들어온 듯 한 기분으로 능수능란한 손놀림에 자아도취 되어 마치 활개를 치는 기분이 아주 짜릿했다.

그래도 딱 여기까지, 취미로만 했을 때 이렇게 즐거울 수 있는 거라 딱 잘라 말했었지만 결국엔 친구의 응원에 끝도 없이 사기가 올라 속으로는 하면 또 잘할 수 있겠다고 자신만만해하기까지 했다.

당장 성과가 보이지도 않을 텐데 돈과 시간을 쏟는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하루 이틀 해서 되는 일도 아니고 아이들이 방학을 하거나 언제 코로나로 가정보육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시작했다가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흐지부지 그만두게 될게 뻔했다.

그럼 친구 말대로 그때 가선 안 하면 되지, 일단 시작하고 놓지만 않기로 하는 건 쉽지 않은가?! 생각하니 내가 또 너무 어렵게 장황한 목표를 그리고 있었구나 싶었다.

하는 데까지 그냥 꾸준히 해보는 게 중요하다는 거


성과와 달리 그렇게 살았어야 했다는 것을 느끼고 미련 없이 후회 남지 않게 열심히 해보자 했던 올해의 내 목표대로 일단 하자!

주저하다가 또다시 맘이 바뀌어 포기하기 전에 주변 지인이 거의 전부인 인스타 팔로워들에게 새벽에 꽃시장을 갈 거라고 공표 아닌 공표를 했다.

그리고 밤에 모두 다 재워놓고 폐허가 된 듯한 집을 대강 정리한 후 새벽에 정말 오랜만에 꽃시장을 갔다.



분명 취미로 시작하는 거라 맘먹었지만 일단 시작하고 보니 자꾸 취미만은 아닌 게 되어버리는 현실.

고요한 내 인스타에 지치지 말자 다짐하며 꾸준히 작업을 해서 올리고 있다.

그리고 말라비틀어지기 전에 몇 안 되는 내 인스타 팔로워들이자 내 소중한 지인들에게 하나씩 소포를 부쳤다.

그 과정이 준 내 마음속 기쁨이 정말 판매가 된 것 못지않았다.

혹시 더 맘에 드는 리스를 받지 못했을 때 실망스럽진 않을까, 주소를 물어보느라 완벽한 서프라이즈가 안됐다는 안타까움을 비롯해 여러 가지 걱정들을 했지만 내가 만든 것이면 어떤 게 와도 좋을 거라며 하트를 눌러주고 나를 지지해주는 지인들에게 내가 더 고맙다. 크리스마스 리스 그깟 것쯤이야~!

나 알 잘 딱 깔 센 리스 만드는 여자 된 거잖아? 아하하하하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가 되고 체육센터가 다시 운영을 중단했다.

아.. 또 이제 몸 좀 풀리는가 보다 싶었는데 다시 빗자루처럼 뻣뻣해지겠네....

뭐 좀 할라 그러면 끝나고, 뭐 좀 할만하면 또 상황이 안 되는 올 한 해 이런 반복은 정말 적응이 안된다.

아이들의 등원이 중지되기 전까지는 운동하던 시간까지 보태어 더 열심히 해야지!

이 글이 훗날 인스타그램 성공기란 제목의 브런치북 첫 글이 될지도 모르는데~

더하고 싶어도 못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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