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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샤할머니 Feb 14. 2020

애들이 깨기 전에 도망치듯 집을 나왔다

가끔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건 우리 가족 모두를 위한 일이다.

"첫째한테 엄마 간다고 미리 얘기라도 해둬. 안 그럼 일어나서 엄마 없는걸 알곤 울기부터해. 하루 종일 엄마 언제 오냐고 보채고."

사실 미리 얘기하는 게 힘들다. 나는 금세 어두워지는 아이의 표정을 보는 게 참 힘들다.

그래도 남아 있는 사람을 위해 최소한의 배려는 해야겠어서 엄마가 첫째랑 둘째랑 더 잘 지내기 위해서 엄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와야 될 거 같다고, 네들이 말 안 듣거나 엄마 속상하게 하면 엄마도 지쳐서 한 번씩 이렇게 쉬는 시간이 필요한 거라고 설명을 했고 예상한 대로 5살짜리 첫째 아이는 얼굴 표정이 안 좋아지며 엄마 가는 거 싫다고 칭얼거렸다.






엄마는 최대한 몸도 맘도 건강해야 한다. 그래야만 아이들의 몸과 맘도 건강하게 키울 수 있다.

난 심신이 미약하다고 느낄 때가 있는데 혼자 일 때야 이게 크게 문제 될 게 없었다. (아니 나도 모르는 사이 문제가 되어 이렇게밖에 살지 못하고 있는 건가 생각하지는 않으련다.) 하지만 이제는 내 문제의 결과가 나한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내 아이들에게까지 영향이 갈 수 있으니 현명하게 나 스스로 내 건강과 심리 상태를 관리해서 나쁜 영향이 아이들에게 미치지 않도록 노력하려고 한다.

나 또한 연애할 때나 신혼 때처럼 남편에게 어리광 부리고 남편이 내 기분을 풀어주고 나를 위해서 어떻게 해주고를 기대했을 때가 있었다. 하지만 출산 이후에 그렇게 되기만을 바라보다간 그전에 내가 병이 났다. 이미 내가 예전의 몸과 마음이 아니므로...

그 영향이 어쩔 수 없이 아이들에게 가는 것을 느끼며 내가 안 힘들고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할 수 있다고 몸소 깨달았다.

그래서 내가 하는 몇 가지 방법 중에 우선 난 하기 싫으면 첫째가 어린이집 간 사이에는 집안일을 잘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둘째와 첫째 때처럼 열심히 놀아주는 것도 아니다. 둘째는 그냥 첫째 없이 내가 옆에 있기만 해도 안정을 찾은 듯 잘 놀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소보다 스킨십이라던가 애정표현하는데만 집중한다.

그렇게 첫째가 어린이집에 갔을 땐 나도 에너지를 비축하고, 둘째와 낮잠을 자거나 누워서 그림책 읽어주면서 뒹구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그래야 첫째가 하원하고 나서도 지치지 않는 아이의 에너지를 쫓아갈 수 있다. 정말 그러면 아빠가 퇴근하기 전까지 우리 모두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예전처럼 남편이 알아서 해주기를 속으로 바라기만 하지 않고 직접 부탁하려고 노력한다. '하기 싫은 건 참으면서 하지 말고 그때 바로 요청해야지!'란 생각만으로 얼마나 힘이 나는지 모른다. 왜냐면 그렇게 생각하면 신기하게도 내가 하게 되더라도 그렇게 힘들지 않고 진짜 힘들 거 같으면 해달라고 말하니 둘 다 안 힘든 거 아닌가.

마지막은 한 번씩 한계치에 다다르고 있다 싶으면 혼자만의 시간을 위해 남편에게 양해를 구한다. 물론 이게 아직까지 일상적이고 쉬운 일은 아니라서 보통은 육아에 지쳐있었어도 남편이 미운 사건이 생겼을 때야 비로소 결단이 선다.

말이 호캉스지 호텔에서 뻗어 잠만 내리 자다가 오거나 쇼핑을 하겠다며 근교 아웃렛을 갔다가 애들 옷만 잔뜩 사 온다 하더라도 좋게는 온천을 혹은 미용실, 영화관, 목욕탕, 카페를 짧게라도 다녀오면 바로 충전되어 또다시 기쁘고 즐겁게 엄마로 아내로 (청소부로 가사도우미로 이모님으로) 지낼 수가 있다.

명심하자. 가끔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건 우리 가족 모두를 위한 일이다. 그러니 좀 덜 미안해하자.


이번에도 남편이 몇 주 전에 모임에서 1박 2일로 속초를 다녀왔는데 그 사진들을 보면서 나도 조금 더 멀리 떠나고 싶은 맘이 솟구쳤다.

남편도 다녀왔으니 더욱 나도 당당하고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왜 그렇게 상대방의 실망하거나 반갑지 않아 하는 표정을 난 그러려니 하지 못하는지... 나에겐 여전히 말 꺼내는 게 힘든 일이었고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하다가 결국엔 툴툴 대는 걸로 얘기가 끝났다.

어쨌든 난 집에서 많이 멀지 않은 강원도로 그리고 너무 새로운 곳이 아니라 갈 때마다 좋았던 강릉으로 목적지를 정하고 숙소를 예약했다.






떨어지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놔두고 집을 나서는 건 언제나 힘든 일이다. 그래서 오늘도 동이 틀 무렵 일어나 옷만 주워 입고 도망치듯 집을 빠져나왔다.

그 5분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방문을 열고 아이들이 엄마를 찾으며 나올 것만 같아서 얼마나 초조해하며 옷을 입었는지...

차에 타서 한참을 앉아있었다. 가까스로 맘을 진정시키고 1박 2일 동안 이곳은 잊기로 내 안에 '엄마 스위치'를 꺼버렸다.

그리고 음악을 틀고 신나게 달렸다.


첫 목적지는 휴게소.

맛있게 잔치국수를 한 그릇 뚝딱하면서도 내 눈은 아이들이 있는 가족들을 향해 있었다.

옆 테이블의 엄마는 아기의자에 앉은 아이의 밥을 먹이다가 아빠가 안고 있는 아이 밥도 떠먹이고 그 와중에도 핸드폰 게임을 하고 있는 아빠의 입에까지 밥을 넣어주고 있었다.  

자기 입으로는 몇 번이나 들어갈는지... 못 볼걸 본 것처럼 기분이 불쾌하고 화까지 나려다가 '이 가족의 방식이구나.. 막상 이 가족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내가 왜 이러지?' 싶었다.

애를 낳은 후 애들 없이 나올 때면 어김없이 나는 엄마들을 관찰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리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게 그렇게 슬펐다.

지난봄에 혼자 친구네 집에 갔을 때 나랑 계속 얘기하면서도 뚝딱뚝딱 애 둘을 돌보는 친구에게서 순간 내 모습이 보여 울컥했었고

밖에서 친한 동생과 점심을 먹으면서는 보채는 아가를 이리 달래고 저리 달래다 결국 아기띠를 하고 서서 밥을 먹는 엄마가 정말 안쓰러웠고

소확행으로 한 번씩 가는 목욕탕에서도 애를 데리고 온 엄마들은 대부분 여유 없이 씻고 나가기에 바빴고 가끔 아이 혼자 잠깐 놀게 하고 사우나에 들어가며 편치 않아 보이는 엄마가 있으면 애기랑 잠깐 놀아주며 시간을 끌어주기까지 할 정도로 오지랖을 떠는 나다.

그렇게 아무리 혼자 나올 땐 '엄마 스위치'를 끄고 집 생각은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보이는 건 이런 것뿐이고 그러다가 또 한참을 애들 생각으로부터 헤어 나오지 못하곤 한다.




하슬라 아트월드. 실망스러운 실내 공간은 과감히 제하고 자연과 어우러지는 조각공원에서의 여유를 더 누리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첫느낌을 좋게 만들었던 장작불이 있던 버드나무 브루어리 앞 마당/왼쪽.  술 잘 못하는 내가 세시간 만에 이뤄낸 성과/오른쪽.


여자 전용 도미토리 내 침대/왼쪽. 드라마로 유명해진 임당동 성당/가운데. 국가등록문화재 다운 멋스러운 내부/오른쪽.


리모델링 하기 전의 테라로사. 이렇게 아기자기한 내가 좋아했던 공간은 사라졌다.


오늘의 일정은 테라로사부터 시작했다.

첫째를 임신하고 처음 왔을 때 바에 앉아 테이스팅 코스로 커피를 조금씩 맛봤던 좋은 추억이 있는 곳. 그랬던 곳이 아예 다른 곳처럼 변해있어서 너무 아쉬웠다.

이렇게 내가 좋아하던 것들이 변하는 것을 얼마나 더 봐야 할까.. 잃는 만큼 또 좋아하는 것들이 계속 생겨나긴 할까.. 나도 모르게 슬픈 기운에 한참을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맛있는 빵과 커피를 마시면서 기분이 좋아지고 그러다가 결국엔 오빠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번졌고, 두 번째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옆의 기념품 매장에서 엽서까지 사 왔다. 그리고 내친김에 편지까지 썼는데 고마움을 잔뜩 표현하고 2020년도 잘 지내보자란 내용의 이 엽서는 후에 마법의 편지가 되었다.(두 달 정도만... 딱 두 달 정도 우린 사이가 참 좋았다!)

이렇게 느긋하게 엽서도 쓰고 맞은편에 허물지 않은 예전 테라로사 공장도 다시 가보고 또 구석구석 돌아보며 내가 좋아했던 공간을 떠올리기도 하고 그래서 테라로사에서 예정보다 오래 머물렀다.


다음으로 경치를 보러 갔던 하슬라 아트월드에선 멋진 하늘과 따뜻한 날씨 덕분에 행복한 숲 속 산책을 했다.

그리고 관광지로 변한듯한 시장의 분위기는 별로 였지만 그 지역 사람들이 포장해 가는듯한 분식집에서 먹었던 떡볶이도 맛있었고 꽃향기와 더불어 풍부한 향과 특색 있는 맥주의 맛에 감탄했던 버드나무 브루어리도 너무 좋아서 담에 남편과 꼭 다시 오리라 다짐하게 했다.


무엇보다 꽤 거리가 있었던 숙소와 버드나무 브루어리를 걸어서 왔다 갔다 한 게 신의 한 수였다.

해외여행할 땐 항상 이렇게 많이 걷는데 생각해보니 정말 오랜만에 이렇게 걷는 거였다. 마치 그때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고 걸으면서 본 거리 풍경들은 모두 나에게 특별한 장소가 되었다.

실력 있는 바리스타가 한다는 2평 남짓한 카페, 옛날 양옥집을 개조해서 만든 이쁜 가게들, 오래된 건물의 출판회사 등등 그곳을 걸으며 내가 했던 생각들이 그곳을 나에게 의미가 있는 곳으로 만들어주었다.

마치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나에게로 와 꽃이 되었듯이.

특히나 숙소가 있는 동네가 옛날 동네였는데 그날의 밤공기, 밤하늘에 떠있던 별들 그리고 오랜만에 본 골목길의 주황색 가로등 불빛, 이따금씩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가 그 순간 나를 위해 완벽한 조합으로 연출되고 있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꼬맹이들 수다 소리에 완벽히 조용한 휴식은 아니었지만 깨끗하고 감각 있는 도미토리 숙소도 이만하면 만족스러웠고 부담스럽지 않게 조식도 먹고 나와 전날 검색하다 알게 된 임당동 성당에서 늦은 판공성사도 하고 미사도 드렸다.

그리곤 휴게소도 한번 들르지 않고 곧장을 달려 도착한 동네 목욕탕에서 세신을 받고 탕에서 여독까지 푼 후에 기분까지 리프레쉬해서 집에 들어갔다.

현관문 번호를 누름과 동시에 들려오는 아이들의 엄마다! 엄마~~~~~ 하는 소리가 행복하게 '엄마 스위치'를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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