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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샤할머니 Feb 06. 2020

3월이면 둘째도 어린이집에 간다

초조하다. 여유가 생기는 즉시 맘에 병이 생길까 봐....

이젠 감당하기 힘든 문제가 생겼다 해도 예전처럼 한 번씩 동굴로 들어갈 수가 없다.

출산 후엔 나한테 어떤 일이 생겼다 한들 의무를 소홀히 할 수 없는 엄. 마.라서..

그런데 얼마 전 31일, 1일 신정 연휴에 특별한 행사 없이 애 낳고는 처음으로 이불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아직 꼬박꼬박 낮잠을 자야 하는 둘째를 방으로 델고 들어와 낮잠을 재우면서 일어나고

하루는 방에서 애들 감을 깎아주러 잠깐 나갔었고 또 하루는 군고구마를 해주러 나갔던 게 다이다.

애들 간식까지는 챙기지 못하는 아빠지만 나에게 어떤 싫은 소리도 하지 않고 밥도 해 먹이며 묵묵히 애들을 돌봐주었다.

그렇게 나는 동굴 속에서 2020년을 맞이했다.




'내가 들였던 수고와 시간은 다 쓸모없는 것이었나 봐'


뾰족한 수도 없이 무작정 일을 해야 될 거 같다고 말하는 나에게 첫째 친구 엄마는 그랬다.

몇 년 동안 꼼짝 않고 애들 키우느라 힘들었는데 이제 운동도 좀 다니고 자기 시간도 가지며 좀 즐기라고.

언제 이런 시간을 누려보겠냐고. 지금부터 일하면 중간에 또 이런 시간은 없을 거라고. 계속 일하게 되는 거라고.

하지만 임신했을 때 다니던 산부인과에서 만나는 간호사들이 그렇게 멋있어 보였고

대학원을 다니면서 오랜 연인과 결혼하고 혼자 자취하며 병원에서 임상심리사 인턴생활을 하는 사촌 동생이 그렇게 대단히 보이고

결혼 안 하고 일하면서 자기 계발에 힘을 쏟고 고상한 취미와 멋들어진 운동 그리고 피부관리까지 받으며 본인에게 투자하는 삶을 사는 친구가 그렇게 부러운데..

어정쩡하게 공부하고 어정쩡한 대학을 졸업해서 어정쩡한 외국생활로 영어도 어정쩡하게 하고..

돌이켜보면 지금에 와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데 왜 그렇게 치열하게 살았나 싶다.

깊은 탄식과 함께 '그때 그걸 했어야 하는데...'라는 생각만 수만 가지 수백 번을 했다.




 '친구들아 역시 너희는 계획이 다 있구나'


몇 안 되는 내 진짜 친구들과 5개월 만에 만났다.

자주 못 만나는 만큼 일찍 만나 느긋하게 아점을 먹고 카페를 갔다가, 간단한 저녁을 먹는 것으로 끝난 아무것도 안 한 것 같은 하루였지만 우리가 나눈 대화의 양은 정말 어마어마했다.

그중 단연 이슈는 '제2의 인생'이었다고나 할까?

적어도 60까지는 바라보고 '할 일'을 찾아야 한다는 게 요지였다.

얼마 전 달리는 차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남편에게 인생 다 산 기분이 든다고 내 인생은 끝난 거 같다고 허무하게 말했던 나는 망치로 머리를 한대 꽝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처럼 몇 년째 애 둘을 육아하는 친구도 벌써 몇몇 전문적인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고 했다.

거기다 기간제 교사로 일하면서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친구에다가 육아휴직을 앞두고 있는 9년 차 직장인 친구는 내년 노무사 자격시험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했다.

정말 나만 완벽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에 순간 자존감이 땅에 떨어졌고

그렇게 친구들을 만나고 와서부터는 분명 그보다 편하고 즐거운 만남일 수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불나는데 기름을 들이부은 것처럼 아주 본격적으로 골치가 아팠다.  

어찌해도 헤어 나오지 못하는 늪에서 허우적거리기만 하는 기분이었다.

뭘 하지? 나는 어떡하지? 뭘 할 수 있지 내가? 난 정말 어쩌냐...

당장에 영어 공부라도 다시 제대로 해볼까,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살아보고 싶은 막연했던 꿈을 위해 일단 독일어부터 시작해볼까,

더 늙기 전에  나게 직장 생활 한번 해보고 싶은데 토익이랑 기본 자격증부터 준비해서 부딪혀볼까,

아 맞다 비현실적이지만 나 외국계 항공사 지상직도 해보고 싶었는데 지금이라도 도전하면 가망은 있는 걸까?

진짜 하다못해 성우(아이들 동화를 수없이 읽어주다 몰입되곤 하는 엄마들은 한번씩들 생각해봤을 거다)부터 리모컨을 돌리다가도 판매직 알바를 기가 막히게 했던 소싯적을 회상하며 수많은 홈쇼핑 채널의 쇼호스트까지 별의별 생각을 다해봤다.

하지만 자고 나면 다 웃기고 허황된 이야기일 뿐 아무 진전 없이 다시 주저앉고, 반복되는 좌절감과 우울함의 악순환이었다.

하지만 한 번도 그렇게 죽어라 공부를 파보지 않았던 내가 더군다나 나에게 허락되는 시간은 제한적인데 이제 와서 공부할 엄두가 나지 않는 건 당연했다.

근데 앞서 말한 노력들에 비하면 지금 상황에선 이것만 한 게 없지 않은가 싶었다.

그래 바로 이거다. 재. 택. 근. 무!

하고 싶던 작가놀이 브런치에서 제대로 해보자.

책 읽고 글 쓰다 보면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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