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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쁨문고 Sep 03. 2024

뻔뻔한 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디서든 당당하고 싶은 드리킴이기도 하고요.

 안녕하십니까 주니님. 잘 지내셨나요? 여전히 격주로 글을 쓴다는 것이 가볍게 생각이 들지 않은 시간이 돌아왔네요. 왠지 주니님은 글을 술렁술렁 써 내려갈 것만 같다는 생각에 시기를 느끼며 편지를 열어봅니다.

 

 사실 저는 글을 크게 생각하지 않고 쓰는 편입니다. 하고 싶은 말이 많거든요. 대신 지워내야 할 부분이 늘 많아지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걷어내다 보면 처음 적었던 편지의 절반 이상이 덜어지면서 골머리를 싸게 되죠.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그럴싸하면서 보편적인 이야기를 쓰게 됩니다. 제 색깔을 잃어버리는 느낌이 들면서 더 이상 글이 써지지 않게 되죠. '누구나 그렇게 글을 쓰다 보면 막히는 거야'라는 말을 듣고 싶은 마음입니다.


 비슷한 결로 주니님은 참 많은 칭찬을 해주는 사람이세요. 사람이 간사한 게 늘 좋은 이야기를 듣다 보니 진심의 여부를 따지게 됩니다. 대가 없는 호의를 받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뜻 없이 오가는 선심은 성인이 되면서 차차 사라지게 되더라고요. 이건 마냥 받기만 해서 생긴 경계는 아닌 듯합니다. 제가 호의를 주는 상황에서도 비슷하게 겪습니다. 오랜만에 전화한 친구가 경계한다거나, 호의를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쳐내는 표정을 보면서요.


 물론 우린 그런 이해관계없이 시작된 관계지만, 익숙지 않아 겸연쩍은 마음에 최근 들었던 생각을 적었나 봅니다. 늘 좋은 이야기만 해주시니까요. 저는 가끔 주니님에게도 쓰다 생각되는 소리를 하는 입장이라 '나는 좋은 이야기만 해주는데, 저 사람은 왜 계속 한 마디씩 태클을 걸지?'라는 생각도 들고 말이에요. 여하튼 쓴소리가 없이 둥가둥가 해주는 게 저를 다루는 방법이라 생각했다면 너무 좋은 방법입니다. 다만, 필요할 땐 다소 쓰더라도 하고 싶은 말을 부탁드립니다. 기본을 다지고 초심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몸에 좋은 약일테니까요.



다소 뻔뻔하게 피아노를 치는 척하는


 혹시나 느끼셨을 수도 있는데, 저는 다소 뻔뻔한 면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너의 스무 살에 비해 가장 달라진 점을 하나만 말해줘'라는 질문을 한다면 '예전보다 뺀질거리는 것 같지?'라고 대답할 겁니다. 저는 뻔뻔함이라 표현했지만, 다르게 표현하면 당당함일 것 같습니다.


 '너 오늘 되게 멋있다.', '못 하는 게 없어. 진짜 잘한다.', '오늘 피부가 엄청 좋은 것 같은데?'와 같이 칭찬받을 때면 '하핫. 감사합니다 :)' 라며 웃으며 받아버립니다. 잘한 부분에 대해 인정합니다. 못한 부분에 대해 질책하는 만큼 말이에요.


 삶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의 장점을 짚어서 세워주는 만큼 나를 향해 오는 칭찬을 받아들이는 것이요. 저의 진짜 장점이라면 더더군다나 잘 받아들이는 자세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노력에 대한 피드백을 거절할 이유는 전혀 없으니 자연스럽게 받는 것입니다. 물론 적당한 겸손과 함께 상대방에 대한 칭찬을 잊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만, 그건 한국인의 기본 소양이니 중요성을 강조하진 않겠습니다.


 대부분의 스포츠에서는, 특히 야구에서는 많은 세레머니가 존재합니다. 투수는 타자의 헛스윙을 끌어내어 삼진을 만들거나, 상대방을 아웃시키며 위기를 벗어날 때 포효합니다. 타자의 경우는 득점의 기회를 만들거나 득점하는 경우 세러머니를 합니다. 가장 짜릿한 때를 꼽으라면 전세를 뒤집어 버리는 홈런이 아닐까 싶습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많이 보기 힘들지만, KBO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빠던(배트 던지기)이 그중 하나겠죠.


 개인적으로 그렇게 시원한 스윙으로 공을 쳐본 적이 없어 감각은 잘 모르겠지만, 선수들의 말을 빌리면 '걸렸다'는 느낌과 함께 담장을 넘어감(홈런)을 직감한다고 하죠. 그리고 이어지는 것이 빠던. 일종의 세레머니입니다. 자이언츠에는 이를 잘하는 대표적인 타자들이 몇 있는데, 저의 최고 애정하는 빠던 타자를 꼽으라면 2024년 캡틴을 맡은 전준우 선수입니다. 자이언츠 팬이 아니라도 전준우 선수를 월드 스타로 만들어준 빠던은 유명한 짤입니다. 아시다시피 홈런이 아니라 아웃이었거든요.


 물론, 이건 전준우 선수를 좋아하는 이유 중 극히 작은 부분입니다. 넓은 어깨, 신체 조건으로 뭐든 해내는 듯한 강인함, 언제든 결과를 만들어 줄 거라는 믿음 등이 전준우 선수에게 끌리는 이유겠죠. 근데 왠지 전준우 선수를 보면 적당한 뻔뻔함도 있는 것 같습니다. 결과가 좋지 않아도 크게 표정을 구기지 않고 '다음엔 친다.'라는 느낌을 받거든요. (빠던을 하는 모습도 얼마나 당당합니까) 다시 도전하고 어쨌든 그걸 해내는 모습이 매력적입니다.


 원클럽맨으로 자이언츠에 남아준 것도 고마운 부분이고요. 프랜차이즈가 될 줄 알았던 강민호, 손아섭 선수가 떠나면서 자이언츠에 몇 남지 않은 롯데맨이지 않습니까. 매년 시즌이 시작하면서 야구장을 찾을 때면 울컥하는 느낌이 있습니다. 조금 일찍 야구장을 들어설 때 바람이 머리칼을 스쳐 지나가면서 크게 들리는 응원가와 넓은 그라운드, 채워져 가는 좌석을 보면서 그리운 곳에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그리운 곳에 남아준 선수에게 고맙단 말 대신 어떤 말을 전하겠습니까.



왜 못가게 되었냐면요


 아, 주니님. 올해는 비보가 있습니다. 제가 직장인으로서는 조금 긴 여행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여행은 즐거운 일이지만, 개막전을 볼 수 없게 일정을 짜버린 겁니다. 취미생활이 삶에 큰 버팀목이고 동력원임을 아는 사람이 큰 결심을 해버렸습니다. 이유는 없습니다. 그냥 떠나고 싶어 졌습니다. 물론 야구 개막전이 끼어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회사의 사이클을 고려한다면, 3월이 지나고선 갈 수 없는 일정이더라고요. 장소는 남미의 페루와 볼리비아로 떠날 것 같습니다. 표를 이미 예약해 버렸기 때문에 물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드니 개막을 못 가는 것이 더욱 아쉽네요.


 다 똑같은 144경기 중 한 경기일뿐이겠지만, 거의 7~8년의 개막전을 함께했었기 때문에 상징성을 잃어버리는 느낌이라 마음이 괜히 헛헛합니다. 주니님은 개막전을 가시나요? 가지 않으신다면 4월 초를 한 번 노려보시죠. 못 간다는 것을 글로 써보니 더욱 야구 개막이 그리워집니다. 작년 시즌 막바지에 새로운 유니폼을 샀기 때문에 얼른 실착(실제 착용) 해 보고 싶거든요. 그리고 수천 명이 하나 되어 응원가를 부르면서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끼고 싶습니다.


 대신 늦게 된다면 미리 이야기를 해주세요. 짧은 사유까지. 일하다 늦어지는 데 별 이유가 있겠냐 싶지만, 그래도 아드레날린으로 올라온 감정을 누르려면 명분이 필요합니다. 업무가 사유라는데 그것에 대해 한 소리할 만큼 인성이 나쁘진 않으니까요. 물론 검증은 할 테지만 말입니다. 아, 그러고 보니 주니님은 MBTI가 어떻게 되시나요? 이것도 참 할 말이 많은 주제이긴 한데, 저 혼자 개막 후 야구장에 있는 상상을 하다 보니 문득 궁금해집니다.


 수다의 끝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늘은 글을 여기서 멈추려 합니다. 갑자기 스무 장이 되는 글을 써 보내면 주니님의 부담이 커질 테니 짧게 줄여보겠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설날 당일이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 가끔 출근길에 음악 대신 응원가를 듣기도 하는 라이트 한 팬 드리킴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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