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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쁨문고 Sep 10. 2024

저의 MBTI는 정상입니다.

맹신론자는 아니지만, 왠지 아니라는 변명을 하는 중이고요.

 안녕하세요 ESTJ킴님. 깜짝 놀랐습니다. 어느 정도 계획적인 편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소스라치게 놀랄 정도로 계획적인 삶을 살고 계시군요. 무슨 일이 닥쳐도 그렇게 사는 것까지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혹시 주니님은 업무용 다이어리를 써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매일 아침 출근해서 하루 할 일을 정리하고 급하게 들어오는 일을 추가하는 그런 공책 말입니다. 저에겐 이마저도 충분히 버거운 행위이지만, 바쁘다거나 귀찮다는 이유로 미뤄버리면 무조건 업무에 공백이 생기는 걸 여러 차례 느낄 기회가 있었거든요. 건설적인 행위라기보단 구멍이 나지 않기 위한 차선책으로써 계획표를 사용하는 편이라고 할 수 있죠.


 이렇게 J와는 거리가 한참 있으면서도 '계획'과 관련된 신조를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꿈은 크고 막연하게. 단, 그를 위해 오늘 하루에 최선을 다하자.' 해석하자면 이렇습니다. 예를 들어 매일 운동을 하자는 다짐을 했을 때, 갑작스러운 회식이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술을 잘못하는 저한테 하루 과음은 이틀의 휴식이 필요하더라고요. 이렇듯 오늘, 이번 주, 이번 달로 범위를 넓혀도 계획에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들어오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바로 앞에 있는 것 같으면서도 잡히지 않는 목표나 상황들은 사람을 환장하게 만들더라고요. 할 수 있다고 믿던 것을 놓쳐버리는 거니 무기력하게 한다는 게 맞을 듯합니다.


 북극성을 향해 방향을 잡는 선원 같은 마음으로 살고 있는 거죠. 오늘 하루 조금 다른 방향으로 한 걸음 나갔다고 해도 다음 날 방향을 수정해서 북극성으로 나아가면 되는 거니까요. 그래서 즉흥적이라는 P스러운 특성도 괜찮은 것 같아요. 지금까지 삶을 돌아보면 무계획적인 모습이 불편하진 않았습니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늘 서울에 도착했던 걸 보면 말이에요. 아마 즉흥적인 결단력을 기를 수 있는 좋은 연습이었다고 자위해 봅니다. 하루하루가 임기응변을 숙달하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즉흥적임을 내일의 내가 고쳐줄 거라는 믿음. 다소 일방적이지만 꽤 유기적이고 끈끈한 관계거든요. '꿈은 크고 막연하게. 단, 그를 위해 오늘 하루에 최선을 다하자'는 문구는 이렇게 저의 신조가 되었습니다.

낮에 바라본 북극성




 가끔은 계획을 세워야 할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야구 개막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엔 1년의 야구 시합 스케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곤 언제 야구장을 갈 수 있을지 체크해 두는 것이죠. 우선 일정만 미리 체크해 놓는다면, 당일이라도 주니님과 같이 마음 맞는 사람이 있다면 야구장으로 갈 수 있거든요. 즉흥을 감당하기 위한 계획이랄까요? 그래서 올해도 마찬가지로 달력에 미리 일정을 체크해 두었습니다.


 아쉽게도 개막 시점에 저는 외국에 있을 예정입니다. 주니님과도 개막전 시리즈를 함께하고 싶었는데 너무 아쉬울 따름입니다. 몇 년간 지켜온 루틴을 어기는 느낌이 들거든요. 하지만 새 술은 새 잔에 받아야 하는 법. 새로운 루틴을 만들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모든 스포츠가 그러하듯 야구 선수들에게는 각자의 루틴이 있다고 합니다. 최강야구를 보시더라도 이겼던 날과 같은 패턴으로 하루를 준비하는 김성근 감독과 선수들처럼 말이죠. 작년까지 좋지 않은 결과가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루틴으로 2024년을 시작하는 셈 치면서 위안을 삼으려 합니다. 올해 시즌 초반 자이언츠에 좋은 결과가 있다면 제 덕분이라는 걸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매번 팬들은 이야기하죠. 도대체 팬은 무슨 죄길래 '내가 봐서 진 건가. 내가 직관 왔기 때문에 진 건가. 오늘은 새로운 루틴을 해볼까.'라며 각자를 탓해야 하는 거냐고. 또 이런 밈도 있습니다. 프로야구를 보기 시작했다는 것이 원죄라는 식의 짤들 말이죠. 틀린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겨도 화를 내고 져도 화를 내는 팬들의 모습 말입니다. 그럼에도 직관을 가는 이유는 묘한 카타르시스 때문이 아닐까요? 현장에서 함께 소리 지르고 팀, 선수들과 성장하는 느낌이 드는 것까지 말입니다. 참 매력 있는 스포츠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야구에서는 계획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일정을 미리 메모해 두는 것 외에는 딱히 없을 것 같습니다. 주니님 말이 맞습니다. 그 외는 모든 것이 즉흥이 될 것 같습니다. 간다는 목표만 있으면 되는 거니까요. 당일에 상사의 부름에 쫓아가야 할 수도 있을 것이고, 갑작스러운 업무 마감으로 인해 자발적으로 늦게 가야 할 때도 있을 겁니다. 이 모든 경우의 수를 다 이겨낸다면 무엇을 먹거나 마실지는 당일에 정해도 되는 소소한 문제가 되겠죠. 만약 같이 보러 가기로 한 날 지각하게 되신다면 A4용지 3장 정도의 사유서만 들고 오신다면 크게 문제 삼지 않겠습니다.

밤에 바라본 남반구의 달
개막 때 바라본 남미의 하늘


 아, 그러고 보니 주니님은 ESTJ라고 하셨죠? MBTI에 대한 맹신론자를 보면 고개를 저었던 사람이 저입니다. 네, 그런 사람이 있었는데요. 지금은 꽤 믿는 편입니다. 사실 믿는다는 표현은 틀린 것 같습니다. 본인이 어떤 성향인지 체크해서 나온 결과물이니까요. 기호화해서 대략의 성향을 구분해 놓은 것이니 '과학'이라기에 애매하고, '맹신'한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결괏값이죠. 개인이 대답한 설문의 답으로 나온 결과이기 때문에, 본인이 되고 싶은 성향(MBTI)을 고르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꽤 정확도가 있어서 그런지 소개팅할 때(사교모임의 첫 만남 때)도 MBTI를 물어보곤 하더라고요.


 회사의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그중 확증편향에 가까울 정도로 맹신하는 것은 STJ라는 성향을 보인 사람은 애증의 관계에 있다는 것이고요. 우선 부럽습니다. 일을 잘하는 사람들의 성향이 대부분 STJ를 가지고 있거든요. 일을 놓치지 않고 깔끔하게 하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모든 STJ들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일을 잘하는 사람들의 성향이 STJ일 확률이 높긴 하더라고요. 갖지 못한 성향이라 그런지 부러움의 크기가 꽤 큽니다.


 한편으로는 저와 잘 맞지 않는 경우를 많이 겪어봤습니다. 최소 공적으로 일을 하는 데서는 말이죠. 아마 대화의 핀트가 좀 다를 수도 있었겠단 생각이 듭니다. 게다가 저는 회사에서 막내입니다. 모든 STJ가 저보다 선배였으니,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대화했기 때문일 것도 같네요. 조금의 선입견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일적으로'는 말입니다. 사적인 영역에 계신 분들께는 상대를 이해하는 데 주로 사용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MBTI는 “쟨 저런 성향이라더라.”가 아니라 “아, 다른 성향이니 내가 잘 맞춰야지.”라며 끄덕여주기 위해 만들어졌으니까요. 돌아보니 MBTI가 유용한 도구라는 것을 설명하는 글을 적은 것이 아닌가에 대한 생각도 듭니다. 아직은 잘 모르는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참고할 수 있는 하나의 자료라 강조했다는 셈 쳐보시죠. 덕분에 주니님의 아주 철두철미하고 계획적인 모습도 알 수 있었으니까요. 즉흥적임을 보완해 줄이 있는 신조이자, 오랜 기간 잊고 있던'꿈은 크고 막연하게. 단, 그를 위해 오늘 하루에 최선을 다하자.'를 되뇔 수 있게 해 준 시간이었기도 하고요.

기울어지지 않은 그라운드




어쩐지 프로야구를 너무 헤비하게 좋아하신다고 할 때부터 눈치챌 수 있었던 기회는 많았던 것 같네요. 주니님의 글을 볼 때면 각 경기가 어땠고, 어떤 장면들이 있었는지에 대한 세세한 묘사가 신기했었단 말이죠. 드디어 이유를 찾았네요. 오히려 객관적인 데이터보다 느낌으로만 저장하는 저에게는 큰 배울 점이라 생각됩니다. 저는 주니님과는 다르게 야구 경기 직관 이후 느꼈던 희열과 셀카만 남기는 편입니다. 곧 휘발될 만한 기억들이라고 할 수 있죠.


 휘발성은 야구장을 또 찾아가게 만듭니다. 그 어느 곳에서도 느낄 수 없는 희열을 느낄 수 있는 곳인 건 알고 있거든요. 그래서 무언가를 남긴다기보다 그 순간을 즐기는 곳이 되었습니다. 물론 자이언츠의 성적을 보면 매번 즐기진 못했던 것 같지만, 귀한 만큼 이겼을 때의 달콤함이 더 크기도 한가 봅니다. 너무 과한 해석이려나요. 아닙니다. 주니님을 포함한 대부분의 팬이 비슷한 이유로 야구장을 가는 게 아닐까 합니다. MBTI에 P와 J만으로도 계속 차이점과 공통점을 찾아내고 있네요. 활용이 아니라 맹신하는 건 아닌지 반추해 봅니다.


 이번 주는 한국의 롯데자이언츠와 일본의 치바롯데마린스의 연습경기가 있었습니다. 결과는 2연패로 아쉬움이 컸습니다만, 다양한 약점 중 하나인 수비가 아주 좋아진 모습에 마냥 아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올해의 자이언츠에는 새로운 변화가 찾아오려나요? 한순간에 역동적인 변화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큰 목표가 있기 때문에 오늘 최선을 다하는 자이언츠가 되길 빌어봅니다. 그리고 우리의 오늘이 빛나길 빌어봅니다. 물론 하루하루가 그럴 수는 없겠지만, 이왕이면 다홍치마잖아요. 열심히 보낸 이번 주를 마감하며 글을 줄여보도록 하겠습니다. 새로 다가오는 한 주도 힘내시길 바랍니다.



- 올해는 다를 거라고 또 외쳐보는 라이트 한 팬 드리킴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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