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생각보다 답장이 많이 늦어진 것에 대해 죄송함과 함께 감사함을 전해드립니다. 저는 남미 여행을 준비하면서 조금 골골대고 있었습니다. 우선 황열병 주사를 맞은 후 상태가 좋지 않았거든요. 사실 예방접종을 맞기 전 과로로 인해 조금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볼리비아 비자를 받기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강행했습니다. 대한민국의 비자 파워가 센 걸로 유명한 거 아시죠? 남미의 여러 나라 중 볼리비아는 무려 '한국'이 비자가 필요한 나라더라고요. 심지어 재고가 많이 없어 무려 연차를 쓰고서 맞으러 가야 하므로 날을 미룰 수 없었습니다.
황열병 접종 증명서
두 번째 변명은 회식입니다. 대개 예방접종은 그렇듯 황열병 주사도 하루 이틀정도는 안정을 취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회사에서 존경하는 선배의 진급이 있었고 소수와 함께한 진급 파티에 제가 초대되었다지 뭡니까. 개인적으로는 즐겁고 귀한 시간이었지만, 여러모로 컨디션을 관리해야 하는 프로의 관점에서는 서툴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사유로 일주일이나 늦게 답장을 하게 되었네요. 오랜 기다림에 대해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마지막 이유는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최근 기타를 독학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황열병 예방접종 이후 현저히 줄었지만, 그전까진 하루에 거의 세 시간에서 다섯 시간 정도 기타를 치고 있었으니 완전히 빠져 살았던 거죠. 뭐든 하루에 그 정도 시간을 투자하면 실력이 늘긴 하겠다 싶을 만큼 정진했었습니다. 체력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10분이라도 기타를 만졌고 사택으로 들어가면 뻗어버렸습니다. 체력이 떨어진 걸 사전에 알려드리고 걱정을 끼쳤음에도, 다른 분야로의 외도로 인해 늦었다는 점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기타 연습하는 방
지난 편지에서 주니님의 신남이 느껴지는 글을 보면서 같이 텐션이 올랐던 것이 잊힐 만큼 2주라는 시간이 빠르게 지났습니다. 사실 글에서 흥분하고 있는 당신을 보다 보면 가끔은 '이분 왜 이렇게 텐션이 좋아졌지? 정말 야구에는 헤비 한 팬이구나.'라며 다름을 느끼곤 했는데, 지난 편지의 일들은 사석에서 들었던 내용이라 그런지 생생하게 그려져 재밌게 읽었습니다. 의료지원은 저로서는 발 디딜 수 없는 목표이기 때문에 더욱이 부러움을 느끼면서 말이에요.
저는 기계공학을 전공했습니다. 다만, 주특기를 살려 취직할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던 시간이 꽤 길었었죠. 일명 하고 싶은 일을 해보겠다는 의지가 넘치던 20대를 보냈거든요. 그리고 취직을 결심했을 땐 여러 회사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중 당연히 롯데자이언츠도 있었죠. 우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지 않아도 되는 큰 장점과 함께 좋아하는 걸 업으로 삼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겹쳤습니다. 결국 이력서도 쓰지 않고 포기했지만 말이죠.
가장 큰 원인은 높아진 눈높이였습니다. 지인들의 말로는 수익을 창출하는 곳이라기보단 그룹 회장님의 스포츠에 대한 사랑이 기반되는 회사다 보니 아무래도 높은 급여를 기대하긴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배부른 소리였죠. 마치 중학교 때 서울대는 아무나 가는 줄 알았던 때처럼 말이에요. 이를 차치하고도 하나의 걱정이 더 있었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것에 대한 두려움 말입니다. 만약 자이언츠에 합격했더라도 지금처럼 경영지원에서 일할 수 있다는 가정을 해보면, 마냥 팬의 마음으로 선수를 대하지 못하면 어떡하냐는 걱정이 생기더라고요.
이번에 선임된 구단주께선 예전부터 자이언츠에 대한 사랑이 엄청난 분이었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올해를 기대하는 이유 중 하나도 구단주의 선수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잘하게 되어 구단주가 되셨다니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요. 흥미를 잃기는커녕 두 번 다시 프로야구를 안 보겠다고 다짐했을 수도 있는데 말이죠.(아마 일을 그만 두면 다시 볼 수도 있겠지만요.) 그래서 주니님이 스포츠 분야의 의료인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시는 것이 멋있고, 한편으로는 연관 지을 수 있는 일을 하시는 게 부럽기도 합니다.
개막 전에는 어떤 마음이었던가
일에 대해서는 방향성을 잡으신 듯한 주니님에게 문득 궁금한 점이 생깁니다. 평소에 어떻게 보내시나요? 저와의 편지를 주고받는 것 이외에도 다양한 측면으로 꾸준히 글을 쓰시는 걸로 기억합니다. 이전에도 짧게나마 언급했었지만, 글 쓰는 습관을 길러보려 '블로그 100일 글쓰기 챌린지'를 하는 중입니다. 참 꾸준히 한다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심지어 잡다한 주제로 글을 적는 저와는 다르게 야구라는 주제만으로 꾸준히 글을 쓰실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입니다. 무언갈 하는데 지속하는 힘이 약해 매번 새로운 취미를 가져버리는 사람으로서 부럽기도 합니다.
다시 변명이 시작되는 듯합니다. 하지만 고충을 좀 토로하고 싶네요. 우선 그냥 들어주세요. 글쓰기를 꾸준히 한다는 게 힘든 이유는 또 있거든요. 기타는 사실 잘 안 되는 부분을 계속 반복하면 다음날이나 다음다음 날 우연하게 성공하는 순간을 맞이합니다. 그 우연 같은 시간이 쌓이면 실력이 되고요. 이런 과정이 쉽게 체감이 됩니다. 물론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초보이기 때문에 성장하는 게 눈에 보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글쓰기는 성장하는지가 눈으로 보이지 않은 것이 큰 허들 같습니다.
하루 3~5시간씩 연습을
하나만 더 말해보겠습니다. 오랜 시간 키보드를 잡고 한자리에 앉아있는 것도 고역일 때가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더 이상 써지지 않는데도 그걸 잡고 있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실 겁니다. 그때 막혀있던 문장을 풀어낸다면 무언가 한 단계 성장한 느낌이 들 수도 있을 거예요.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말입니다. 집중력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얼굴에 열이 나기 시작하면서 이젠 일어설 때가 되었다는 신호가 온몸에서 들려옵니다. 컨디션이 좋은 날은 두 시간 반, 보통은 한 시간 반 내외가 한계인 듯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얼마 전 주니님이 아프신 와중에도 편지를 써주시는 걸 보면 저와는 다른 종족이라는 생각까지 들정도입니다.
그래서 프로야구나 글쓰기 외 또 다른 취미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우리 선수단에도 야구 이외에 멋진 취미를 가진 선수들이 많습니다. 등산을 즐기거나 맛집을 찾아다닌다거나 독서가 취미라거나 노래 실력이 수준급이거나 한 선수들 말입니다. 자이언츠 TV라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선수들의 취미를 알 기회가 생깁니다. 한 분야에서 대한민국 상위 1% 이내에 드는 선수들이 다른 분야에서도 수준급으로 잘하는 취미가 하나씩 있다는 건 놀랍습니다. 한편으로는 다른 취미로 스트레스를 풀 수 있기 때문에, 최고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우리 선수들 자랑하는데, 작년 자이언츠가 몇 등이었냐는 서운한 이야기는 넣어두셔요.)
제 커리어의 3년은 '채용'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래서 가끔 신입사원들과 만나는 자리도 생기곤 하는데요. 그때마다 시간을 할애해서 취미를 만들라는 말을 강조하곤 합니다. 이전에도 말씀드렸던 것 같은데 취미가 있다는 것은 참 중요하거든요. 특히 다양한 취미라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 같고요. 다양한 활동으로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이 초반 회사생활에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주변 지인 중 한 분은 스트레스의 종류나 원인에 따라 다른 활동을 하더라고요. 직장 상사에 대한 스트레스는 헬스와 같이 순간 폭발적이므로 힘을 내는 운동을 하고요. 자신에 대한 스트레스면 드라이브나 러닝을 하면서 생각을 비우고 다시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다고 합니다. 연인 관계의 문제가 생기면 등산을 가거나 영화를 본다더라고요. 친구들과의 다툼에는 노래방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악기를 연주하고 말이죠.
이처럼 다양한 원인에 맞게 스스로 처방할 수 있을 만큼은 아니더라도 다양한 취미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경우는, 아마도 최근 생긴 스트레스를 벗어나기 위해 기타를 배우는 것이 취미로 정착했을 수도 있습니다. 힘차게 줄을 튕길 때의 그 쾌감이 있더라고요. 소위 말하는 F코드의 벽을 우선 넘어섰습니다. 모든 손가락에 굳은살이 생긴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요. 대신 너무 열심히 억지로 해서인지 인대에 작은 문제가 생긴 느낌도 듭니다. 언제 한번 겪어본 적 있는 유사한 아픔이 느껴지더라고요. 미쳐도 적당히 미쳐야 하는데 늘 선을 잘 지키지 못해 아쉬울 따름입니다.
지금은 멕시코의 수도인 멕시코시티에서 페루의 수도인 리마로 넘어가기 위해 MEX 공항에서 기다리는 중입니다. 이번 여행이 이런저런 문제들을 치유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재미난 이야기를 많이 쌓아서 풀어볼 생각이고요. 그동안 주니님은 어떤 취미를 가지고 계신지에 대한 대답을 준비해 주세요. 그래도 알고 지낸 시간이 꽤 길었던 것에 비해 참 서로를 모르는 듯하네요. 그 귀한 시간을 이렇게 연기한 것에 대해 사죄하는 것보단, 스무스하게 말을 돌려 질문을 던지는 게 우리에겐 더 이로운 거겠죠?
공동 항공편이라 자리 지정이 안 된 이야기, 대한항공 승무원의 잘못된 정보로 길을 헤맨 이야기, 멕시코시티에서 노숙한 이야기, 노숙하며 알게 된 새로운 친구 이야기, 유심에 이상이 생겼는지 와이파이로만 살아가고 있는 이야기 등 아직 2일 차이지만 벌써 소소한 이야깃거리를 모으고 있습니다. 여행을 시작한 지 72시간째. 아직 누워서 잔적이 한 번도 없어 체력이 이미 바닥이 나고 있는 상황이지만, 야구를 핑계로 들려드릴 수 있는 재미난 이야기를 쌓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멕시코시티 공항 인증삿(멕시코인이 찍어준)
현지인이 데려간 타코 맛집
인터스텔라에 영감을 주었다는
- 처음에 미안하다는 말을 너무 많이 쓰는 바람에 미안하는 말을 지우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버린 라이트 한 자이언츠 팬 드리킴 올림 -
P.S. 사죄의 의미로(?) 우리가 전화로 이야기했던 것처럼 제가 해외에 있는 동안 연승을 한다면 올해는 해외여행 일정을 추가로 잡아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