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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글쓸러 Sep 12. 2024

사직 인턴이 사직 야구장에 의료 지원 간다고?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기에 즐거운 게 아닐까?

 안녕하세요. 드리님. 이번 편지도 잘 읽었습니다. 이미 예고를 하셨음에도, 2024년 개막전을 함께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섭섭하다는 감정을 쉬이 접을 수 없나 봅니다. 하지만 보내드려야죠. 어쩌겠습니까? 말씀하신 대로 2주 여행으로 롯데 자이언츠에 승리라는 새로운 루틴이 형성된다면, 나름대로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잊지 않고 칭찬 꼭 해드리겠습니다. 더불어 드리님을 매해 해외에 보내는 걸 고려해야겠습니다. 승리의 루틴이 완성된다면, 어쩔 수 없다는 걸 아셔야겠습니다. 아, 물론 제 돈으로 말고요! 드리님의 월급으로 가는 걸 말합니다. 


 이번 편지에서 가장 와 닿았던 문장은 ‘꿈은 크고 막연하게. 단, 그를 위해 오늘 하루에 최선을 다하자.’입니다. 이 말이 너무 공감됩니다. 북극성이란 각자만의 목표로 나아가기 위해, 처음에 생각한 바와 다르더라도 구상했던 바를 조금씩 수정하며, 최선의 결과를 위해 어떻게든 노력하는 것. 그게 제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기 때문에, 제시하셨던 문장이 제 마음속에 깊게 다가온 게 아닌가 합니다. 어릴 때는 계획에 집착했었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고자 합니다. 생각했던 바와 달라지면 어떻습니까? 원했던 방향으로 향하고, 그러기 위해 늘 분발하면 되는 거겠죠. ESTJ라고 매우 체계적인 건 아닙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변한 것도 있겠지만, 야구 덕분에도 스스로 많이 바뀌었습니다. 야구는 3시간을 하기도 하고, 길 때는 4~5시간 하기도 하면서, 경기 내용이 매번 다르고, 어떨 때는 우천 취소가 되기도 하니, 변동성을 익히기엔 야구 관람이 최고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덕분에, 100% J가 P를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죠.     


 계획하지 않음! 변동성! 변화! 예기치 못한 사건들! J였던 제가 가장 싫어하는 것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아닙니다. 여기서 비롯되는 새로운 일들이 J를 추구하던 제 인생을 좀 더 즐겁게 바꿔준다는 걸, 몸소 체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022년, 공중보건의사라는 37개월의 군 대체 복무를 마무리하고, 5월부터 인턴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어떤 병원에서 수련받을까 고민하던 찰나, 보건소, 보건지소 등 3년의 공공의료 생활을 이어, 이번엔 공공병원에서 일해보고 싶단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인턴은 보통 병원에서 잡다한 업무를 맡아서 합니다. ‘잡다하다’라는 말이 중요하지 않다는 걸 뜻하는 건 아니니 오해 마시고요. 관장을 통해 변을 보게 하고, 직접적으로 소변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관을 넣어 소변보게 돕고, 감염이 의심되면 무균 상태에서 혈액을 뽑아 배양하고, 심장이 멈춘 다급한 상황에선 심폐소생술을 하며, 필요하다면 환자를 응급차에 태워 부산에서 서울까지 전원을 하는 등 말 그대로 다양한 일을 하는 게 인턴입니다. 코로나19가 창궐하던 시기였기에, 이런 업무들을 방호복을 입고 진행하여 몇 배로 힘들었던 기억이 지금도 납니다. 이제는 그 또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인턴 생활을 하던 와중, 우연히 제안 하나가 들어왔다.     


“우리 병원에서 보통 야구 의료 지원 나갑니다. 지원하실 분 있나요?”

“그래요? 그렇다면 제가 갑니다. 무조건 갑니다!”     


 정말 몰랐습니다. 인턴으로 근무하게 된 이곳에서 야구 의료 지원을 나갈 줄이야! 지원 의사를 묻는 순간, 망설이지도 않고 바로 가겠다고 했습니다. 늘 생각이 많던 저로서는 엄청나게 빠른 반응이었어요. 왜냐고? 야구라고 하면 눈이 돌아가는 저에겐 의료지원은 일이 아니었던 겁니다. 덕질을 제대로 할 기회 중의 기회였는데, 이걸 마다할 리가? 드리님도 저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똑같았을 겁니다. 내기해도 됩니다. 금액은 100원 정도로…….     


 롯데 자이언츠 측 요청으로 경기 2시간 전부터 야구장에 머물렀습니다. 매일 지나가면서 보기만 했던 사직 야구장의 중앙 게이트! 선수들이나 관계자만 지나가던 그곳으로 들어갔을 땐, 설렘이 앞장섰습니다. 와! 여기로 들어간다고?  



 일찍 가니깐, 야구장에 아무도 없더라고요. 그래서 밖으로 나갔습니다. 관중석에서 바라보기만 했던 그라운드를 밟아볼 거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는데, 그걸 이뤘습니다. 그곳에 제 발을 밟아본 것만으로도 너무나도 행복하더라고요.     



 2022년 6월 17일 금요일은 SSG와 롯데의 경기였습니다. SSG 선수들, 롯데 선수들의 연습을 바라보기만 해도 좋았습니다. 이거야말로 야구를 좋아하는 자의 행복 아닐까요?     


 늘 에너지 넘치는 롯데 자이언츠 응원단장님, 조지훈 단장님과 사진을 찍었습니다. 사회생활 하면서 E가 되었지만, 여전히 저는 I의 기질이 강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단장님께 말을 거는 데는 셀 수 없이 많은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그 용기가 말로 나오기까지의 시간은 한참 걸렸고요!


 “사진 한 장 가능할까요?”


 그 말에 1도 망설이지 않고, 흔쾌히 응해주셨고, 순간 반할 뻔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다는 거 아나요? 우리 조지훈 단장님, 가까이서 보니깐 진짜 잘 생겼습니다!     



 선수들이 이용하는 구단 내부 식당을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의료지원 나왔다는 이유로 말이죠. 저녁으로 먹은 콩국수! 이곳은 콩국수 맛집입니다. 확실합니다. 틀림없습니다. 점수를 매길 수 있다면 100점 만점에 10,000점을 줬을 거예요! 이 맛을 다른 사람에게도 자랑하고 싶은데, 알릴 수 없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드리님도 꼭 드셔보면 좋을 텐데, 저만 먹어서 너무 미안하네요.      



 사실 제가 방심한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제가 간 건 야구 의료지원입니다. ‘야구’라는 단어에 눈이 돌아가서 지원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제가 해야 하는 업무, ‘의료지원’이 할 일이 꽤 많더라고요.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의무실을 방문했고, 드레싱부터 병원 이송까지 하다 보니, 야구 보는 게 안 쉽더라고요.      


 그러다 일이 없을 땐, 의무실에서 나름 치열하게 응원했습니다. 타자들이 다음 순서를 기다리며 배트를 휘두를 때마다, 신나서 손을 흔들었습니다. 사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 의무실 바깥의 창문이 선팅되어 있으리라 믿고 있던 탓이에요. 제가 손 흔드는 게 보이지 않으리라! 그러다 갑자기 롯데 자이언츠의 전 타자, DJ 피터스 선수가 열광적으로 응원하는 저를 보곤 씩 미소 지어주더라고요.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아! 안쪽이 밖에서도 보이는구나. 


 부끄러웠지만, 피터스 님의 웃음을 볼 수 있었으니 그게 또 어딘가요?

 쪽팔리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요.     



 이리저리 신경 쓰다 보니, 7회 초, 7회 말이었나요? 녹초가 되었을 무렵입니다. 갑자기 밖에서 웅성웅성 소리가 들렸습니다. 여성분들의 목소리였어요. 파스 뿌려달라거나 소독해달라고 의무실에 찾아왔던 사람들이 꽤 있었던 만큼, ‘또 누구 오시나 보다.’라고 여겼고, 반가운(?) 마음에 문을 열고 먼저 나가서 환영했죠. 그런데 저를 찾아온 손님이 아니네? 세상에서나 마상에나¨……. 롯데 자이언츠 치어리더의 맏언니, 이단비 치어리더님이었습니다. 저를 보고 인사해 주셨습니다. 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감조차 오지 않았는데 말이죠. 진짜 한순간이었다. 그런데,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예쁠 수가 있나? 빛난다는 게 뭔지 알겠더라고요. 제가 지쳤다는 사실조차 잠깐이나마 잊을 수 있었습니다. 그날부터 단비 누님의 팬이 되었다는 건 비밀입니다.     


 구단 내 식당에서 식사하다가 “안녕하세요!”라고 먼저 인사를 건네주신 선수가 있었습니다. 유일하게 먼저 인사를 건네줬던 그분은 바로 롯데 자이언츠의 마무리 투수, 김원중 선수였습니다. 그의 긴 머리를 보고, 언니라고 착각했던 때도 있었다는 건 비밀입니다. 오늘 기밀을 꽤 많이 말씀드리는군요. 경기 끝나고, 흔쾌히 같이 사진을 찍어주던 스윗가이 김원중 언니를 잊지 못할 거 같습니다. 참고로, 머리 짧았던, 잘 생겼던 원중 형님 시절이 이젠 기억나지 않아요……. 사실, 김원중 선수는 저에게 있어 언니나 형은 아닙니다. 검색 결과, 저보다 한 살 어리더라고요. 그래도 어떻습니까? 야구 잘하면 형이고 언니죠 뭐!     



 사직야구장 중앙탁자석, 1루 응원석, 외야석 등등 다양한 곳에서 경기를 관람했지만, 의무실에서 선수들의 경기를 보게 된 건 처음이었습니다. 이걸 말로 표현하는 게 가능할까 싶어요. 굳이 표현하자면, 그 어떤 자리와도 비교할 수 없다는 거? 야구광에겐 최고의 자리였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볼, 스트라이크 등 모든 걸 내 눈으로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고나 할까요? 동시에, 선수들 간의 치열한 경기가 확 와닿았습니다. 위에서 보던 거랑 차원이 다르게 느껴지더라고요. 달리고 슬라이딩하는 등 온몸을 던져 경기하는 모습을 통해 저 역시 열정이 타올랐습니다. 한편으론 걱정도 앞섰습니다. 그날도 슬라이딩하다 다칠 뻔한 선수가 있었습니다. 열정적으로 야구에 진심을 표하는 걸 싫어하는 게 아닙니다. 단지, 다치지 말고, 오랫동안 야구장에서 볼 수 있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오래오래 말이죠.     


출처, Pixabay


 예상치 못했던, 계획에서 벗어난 야구 의료지원을 겪으며 저에겐 새로운 꿈이 생겼습니다. 롯데 자이언츠 팀 주치의! 당시 자이언츠 직원에게 직접 물어봤을 때, 돌아온 답변은 이랬습니다. 롯데 자이언츠는 협약 맺은 병원들이 있어, 필요한 부위에 따라 관련 병원에 방문하기에, 따로 전담 의사는 없다! 하지만, 인생이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 아니겠습니까? 10년 뒤엔 롯데에 팀 닥터를 구하는 날이 찾아올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야구와 관련된 스포츠의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 분야에 대해 깊이 파고 있습니다.     


 야구 경기에서 목격한 세밀한 장면을 기억하기도 하고, 드리님이 말한 야구 자체의 느낌, 그 짜릿한 기분을 온전히 느끼기도 하지만, 야구 의료지원 이후엔 다친 사람들을 마주하거나, 경기 도중 선수들이 다쳤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한 시각까지 갖추게 되었습니다. 야구를 참 다양하게 즐기게 되네요.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진정한 덕업일치가 이루어지는 그날이 오기만을 바라며, 팀 닥터를 향해 달려보고자 합니다.      


 하여튼,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ESTJ라는 MBTI의 틀을 깨게 했고, 이젠 예상치 못한 사건들에 대한 기대도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계획대로 산다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인생은 원하는 대로 되지 않기에 즐겁다는 걸 여실히 느끼고 있는 요즘입니다. MBTI를 너무 맹신할 필요는 없다는 걸 매우 길게 설명한 거 같네요.      


 제가 겪은 특별한 경험에 관해서 이야기했지만, 드리님에게 있어, 특별했던 야구와 관련된 기억은 없는지 궁금합니다. 짜릿했던 승리의 직관이나, 유독 기억에 남던 패배의 경기 등 말입니다. 그 어떤 것이 되든 드리님의 이야기 또한 궁금합니다. 다음 편지 때 기대해도 될까요?     


 오늘 제 편지가 유난히 길었습니다. 쓰다 보니 너무 신나서, 분량 조절 대실패 했습니다. 이 긴 글을 읽어주시는 드리님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리며, 이번 편지도 마무리 지어볼까 합니다. 벌써 3월이 다가왔습니다. 따뜻한 봄엔 더 즐겁게 야구 이야기를 나누길 기대하겠습니다.    

  

 올해는 다를 거라고 외치는 드리님의 말에 동의하는 헤비한 팬 주니 드림.


자이언츠 화이팅, 영원하라!!!


[이전 편지]

http://brunch.co.kr/@drikim/23

[이후 편지]

http://brunch.co.kr/@drikim/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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