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게임이 매번 J처럼 흘러가면 얼마나 좋을까요?
안녕하세요. 드리님! 오늘 하루도 잘 보내고 계실까요? 이번 편지도 읽는 내내 즐거웠습니다. 우선, 드리님이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만큼, 저 역시 쏟아내고 싶은 이야기들이 넘칩니다. 그래서 쓰고 싶은 글에 대해 고민하고 어떤 방향으로 쓸지 틀을 먼저 잡습니다. 개요를 쓰는 거죠. 그 틀에 맞춰서 적고 싶은 걸 모조리 다 써내려 갑니다. 그리고 하나하나 지워나가죠. 어떻게 보면 드리님의 편지 쓰는 방식과 비슷하다고 봐요. 그러나 ‘제 색깔을 잃어버리는 느낌이다’라는 말엔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방향만 제대로 잡는다면, 수많은 이야기를 쓰고 삭제해도 그게 드리님의 글이 아닐 이유가 없잖아요? . 드리님의 색깔이 물씬 묻어나는 편지를 읽는 독자로서,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계신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방금 앞의 이야기에서 ‘틀을 잡는다’라고 했는데, 여기서 감이 좀 왔으리라 생각합니다. 드리님은 눈치 100단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저는 사전에 계획 잡는 걸 무척이나 좋아하는 스타일입니다. 원하시던 제 MBTI에 대해 하나는 맞추셨을 겁니다. 바로 J입니다. 제일 친한 친구가 100% J라며 저를 J 킴이라고 부르더군요. 심지어 전화번호, 카카오톡에도 그렇게 저장했더라고요. 참고로 그 친구는 P 공이라 부르는데, 놀랍게도 100% P이기 때문입니다.
7시에 일어나서 7시 10분까지 씻고, 7시 20분까지 커피 한 잔 내려서 마시고, 7시 30분까진 옷을 골라 입고 예쁘게 꾸민 후 밖으로 나가, 7시 50분까진 직장에 도착하자! 그리고 8시부터 6시까지 나의 업무를 완벽하게 해내자. 6시부터 9시까지 운동을 힘들게 한 후, 9시부터 10시까지 독서하고, 10시부터 11시까지 글 쓰고 난 다음, 11시부터 취침!
이 정도의 J는 절대 아니지만, 막상 적으니 어느 정도 결은 비슷하네요. 하여튼 하루에 무엇을 할지 명확히 정리해서 실천하는 걸 좋아합니다. 좀 더 정확히는 1년 동안 무엇을 할지 목표를 잡고, 그럼 매달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정리한 다음, 매주, 매일의 계획까지 적어 행동하고자 하는데, 드리님은 여기까지 읽으면서 소름이 돋을지 모르겠습니다. 친구 P 공도 자기는 절대 못 한다고 손사래를 치더라고요.
그러나 날마다 J처럼 사는 건 아닙니다. 계획 따위를 잡지 않는 날들이 있으니, 그건 바로 ‘야구장 가는 날’입니다. 실제로 계획표에도 이렇게만 써놓습니다.
야구장 간다! 가서 이기자. 지는 건 용납할 수 없다.
평소라면 어떻게 계획표를 쓸지는 앞에 극단적 예시(?)를 들어놨으니, 참고하길 바랍니다. 그날만큼은 너무 신이 납니다. 야구장에선 알 수 없는 이벤트가 늘 많이 터지니까요. 사직 야구장 앞에 있는 먹거리 중 무엇을 사서 야구장에 들어갈지, 오늘은 야구장 안에서 어떤 응원 이벤트가 있을지, 날씨는 지금처럼 화창할지, 아니면 예상치 비가 찾아와 중단될지,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들도 궁금하며, 가족들, 연인들, 친구들의 오순도순한 모습들도 기대됩니다. 야구장에서의 모습들은 그날마다 다르니, 분위기에 몸을 맡기면 행복하더라고요. 야구장 갈 때만큼은 계획적이어야 한다는 저만의 강박에서 좀 벗어날 수 있게 됩니다.
생각하자면, 야구도 P의 성격이 매우 강합니다. 모든 게 계획대로 다 되면 이미 롯데 자이언츠는 전 경기 승리하고, 가을야구 가서도 우승을 차지했어야 합니다. 제가 직관 갈 때마다 완벽하게 이겼어야 했고요. 하지만 그러지 못했죠.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은 그 내용들을 제 나름대로 정리했습니다. 2022년, 6경기 기준입니다.
5/17 (화), 기아와의 경기에서 9회 말을 지키지 못하고 4:3 패배
5/28 (토), 키움과의 동점 상황. 9회 말 노아웃 만루에서 1점 더 내지 못했고, 10회 초 이정후 선수에게 3점 홈런을 맞아 6:3으로 패배
6/8 (수), 삼성에 두들겨 맞다가 기회가 찾아왔을 때, 돌부처 오승환에게 막혀 4:0으로 무너지는 걸 목격.
6/11 (토), 안타 딱 5개 치고, 점수 1점도 내지 못하며, 상대 투수에게 완봉승을 선사하는 경험을 겪음. (완봉승 : 상대팀에게 점수를 주지 않은 승리 투수에게 주어지는 기록)
6/17 (금), 시즌 내내 단 한 번도 1위를 내주지 않은 SSG 형님에게 따끔하게 6:2로 혼남.
6/25 (토), SSG 맏형에게 덜 혼났다고 느낀 키움 둘째 형님이 16안타 13점으로 롯데에 몽둥이찜질을 가함.
2022년 직관은 총 20경기라 14개가 더 남았습니다. 더 적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계속 기록하다간 드리님이 뒷목 잡고 쓰러질 수도 있기에 여기서 멈추겠습니다. 사실, 제가 열불 나서 더 이상 못 하겠습니다. 값진 승리도 많죠. 직관에서 목격한 승리도 다른 편지에서 이야기하겠지만, 원하는 대로 할 수 없는 게 야구이고, 야구도 MBTI로는 P가 확실하다는 걸 말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여기까지 말하니, 또 다른 한 가지 사실을 확실히 알 수 있을 겁니다. 아마 속으로 생각하실 건데, 제가 직접 말해볼까요?
‘이놈은 이런 것조차도 정리해? 역시 J이구만!’
제가 생각보다 사람의 마음을 잘 읽는데, 딱 잘 맞췄죠? 하여튼 MBTI에서 J는 이런 방식으로 야구를 즐깁니다. 앞으로도 철저한 직관 분석하는 J 킴의 모습 자주 보여드릴 예정입니다.
TMI지만 저는 E면서 I이기도 합니다. 집에 있는 걸 좋아하지만, 야구장 가는 걸 좋아하고 드리님을 만나 수다 떠는 걸 즐기기도 하죠. E와 I 중 꼭 하나로 표현할 필요는 없잖아요? 그게 제 모습이기도 하고요. 저의 MBTI는 ESTJ입니다. 대표적으로 공무원의 MBTI라고 하는데, 가까이서 보는 드리님의 의견도 궁금합니다. 제가 정말 그렇게 보이나요? 제 절친인 P 공은 ESTJ가 100% 맞다고 하지만, 드리님은 또 다르게 볼 수 있으니, 다음 편지에서 답변 부탁드립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한 번 더 말하겠습니다. 드리님의 글에 자신만의 색이 없다고 하는 의견에 매우 강하게 부정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받은 편지들도 너무 잘 쓰고 있다고 생각하나, 하나 약속하겠습니다. 필요할 때는 P 공에게 하는 것처럼, 냉철한 피드백을 할 것을 말입니다! 편지를 주고받는 입장에선, 독자로선 와닿는 글이라 굳이 강하게 피드백할 게 보이진 않네요. 지금까진 확실합니다.
야구와 관련하여 이것만큼은 J의 자세를 갖춰야 할 게 이번 드리님의 편지에서 생겼습니다. 바로 사유서입니다. 야구장 직관에서 조금이라도 늦을 시, 독자의 심금을 울리는 사유서를 직관 1시간 이전에는 필히 제출하도록 하겠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드리님의 인성이 좋지 않은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인성이 그다지 좋지 않기 때문이죠. 유유상종이란 말 그대로, 서로를 알아본 걸로 칩시다. 그렇지만 아드레날린 대신 세로토닌이 올라오도록 사유서를 쓰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사이에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말이죠. 아! 과한 세로토닌 분비로 야구장에서 우는 사태가 일어나진 않도록 하겠습니다. 원하신다면, 이기는데도 울고 있는 드리님의 모습을 유발할 수는 있습니다!
개막전 같이 못 가는 건 좀 아쉽습니다. 하지만 야구는 개막전만이 전부는 아니니, 드리과 함께 가는 야구 기대하겠습니다. 저 역시 새로운 유니폼 하나를 고민하는 와중입니다. 빨간색의 동백 유니폼이 너무 탐이 나지만, 가격대가 만만치 않아 깊게 고민하고 있어요.
오늘은 여기까지 쓰겠습니다. 글을 쓰는 게 늘 쉽지 않습니다. 설렁설렁 쓰더라도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그건 영 저랑 맞지 않습니다. 우리 드리님에게 마음이 담긴 글을 쓴다는 게 매우 어렵습니다. 진실한 제 마음이 전달될 수 있도록, 오늘도 어떻게든 최선을 다하긴 했습니다. 이 마음이 닿길 바라며, 부탁하고자 하는 건 20장도 좋으니, 편하게 길게 써주면 주니킴이란 독자는 좋아할 게 확실합니다.
2024년 야구장 가는 날들은 벌써 계획하고 있는 헤비한 팬 주니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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