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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국 Oct 16. 2024

사랑이라는 이유로_24.10.15

나는 결국 이 삶을 사랑할 수 있을까?

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정확히 어떤 부분에서인지 모르겠지만. 계속 듣게 된다. 남편이랑 헤어진 것도 아니고, 예쁜 아이들 잘 자라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삶을 슬프게 생각한다. 적당한 돈을 벌고, 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럼에도 나는 이 삶은 모순이 가득하고, 매 순간 딜레마에 빠지는 느낌이다. 이 부분이.. 나이가 들어도 해결이 되지 않는 삶에 대한 내 느낌이다. 날마다 딜레마.


한강 작가의 수상소식이 낯설었다. 이유는 이 사람에 대한 나의 첫 느낌 때문이었다. 몽고반점을 처음 20살 때 읽었다. 그런데.. 사실 제대로 기억도 안 나지만, 그 나이 때 나는 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더럽고 역겹다 느꼈던 것 같다. 그 이후로는 기피했다. 그분 소설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그게 다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 도처에서 이 분 소설이 여기저기 추천작으로 나오기 시작했는데.. 읽지 않았다. 이미 내 마음에 <이상한 사람>으로 각인되어 있었나 보다.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를 중학교 때 접해도 난 이해할 수 없었다. 머릿속에 참 야하다.라는 것밖에. 그런데 느낌이 한강 작가의 소설도 그렇게 느껴졌다. 더 당황스러운 건 어떤 면에서 수상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야하다는 것밖에. 남는 게 없었다.


추상적으로 써놓은 글들은 10대인 나에게, 20대인 나에게 무슨 말인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이제 보라고 하면 느낌이 전혀 다르겠지. 전혀 추상적이지 않는 말들과 소재겠지.) 당시 나는 현실감이 제로인 느낌이었다.


그런데 난 이제 <사랑이라는 이유로>를 듣고 우는 나이가 되었다. 40을 바라보는 이 나이가 되고 보니 무라카미 하루키, 한강 작가가 새삼 위대하다. 추상적인 게 아니라 나는 삶을 더 살아보지 못했고, 희만  알았던 10대와 20대는... (그렇다고 꼭 희만 있었던 건 아니지만...) 알 수 없는 것들이 30대, 40대에 기다리고 있다.


살아봐야지 아는 것들. 실패해야지 아는 것들. 후회해야지 아는 것들. 슬퍼봐야지 아는 것들.

헤어져봐야지 아는 것들. 떠나야지 아는 것들.

싸워봐야지 아는 것들. 아파야지 아는 것들.

없어야 아는 것들. 아쉬워야 아는 것들.

참아봐야 아는 것들. 서러워봐야 아는 것들.

포기해 봐야 아는 것들. 비참해봐야 아는 것들.

현실에 타협해 봐야 아는 것들.

사랑해 봐야 아는 것들...


지금 보면 보일 것들이 그 당시에는 보이지 않았다. 삶의 모순이라는 게 그런 거다.  잔인하게도 겪어봐야 안다. 머리로 가 아니라 피부로. 전쟁을 어떻게 이해하겠는가. 우울증에 대해서는. 죽음에 대해서는. 고통의 경중을 따질 수 있나. 어느 쪽이 더 하루가 급한 상황인가. 사랑이 뭘까. 슬픔이 없어야 사랑인가. 실패가 없는 삶만이 좋은 삶인가. 10대인 나는, 20대인 나는, 이런 소설이나 노래에 울지 않을 거다. 마음 아파하지 않겠지. 그런데 나는... 비겁함을 등에 업은 채 꾸역꾸역 하루하루 살기에... 결국 울고야 만다.


사랑이라는 이유로 하얗게 새운 많은 밤들

이젠 멀어져 기억 속으로 묻혀

함께 나누던 우리의 많은 얘기 가슴에 남아

이젠 다시 추억의 미소만 내게 남겨주네

나의 눈물이 네 뒷모습으로 가득 고여도

나는 너를 떠날 수는 없을 것만 같아

사랑이라는 이유로 많은 날들을 엮어가고

언젠가는 우리가 함께 나눌 시간들을 위해

나의 눈물이 네 뒷모습으로 가득 고여도

나는 너를 떠날 수는 없을 것만 같아

사랑이라는 이유로 많은 날들을 엮어가고

언젠가는 우리가 함께 나눌 시간들을 위해


이게 내 신앙 같다. 꾸역꾸역 하루하루 이어진 날들의 연속이 내 믿음이고, 삶이고, 신앙이다. 결국 살아보니...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에 불안한 마음으로 한걸음 내딛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나의 최선인 거였다. 한낱 얕은 수로 내딛는 걸음의 최후가 무엇이 될는지는 모른 채 가는 게 인생이더라는 거다. 인생이 소설이라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인생은 실전이고, 결말은 알 수 없기에 하루가 불안하다. 그런데 뒤돌아보니 내가 목표하는 무언가는 다 헛것이 더라는 거다. 그건 모래성을 쌓는 일 일뿐이었다. 그 공허함과 무너져 내림을 견뎌야 하는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공과금 앞에 비참해진 나의 몸뚱이를 견뎌야 하는 삶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뿐인 배려 없는 공감 때문에 개인을 더 소외시켜 버리는 폭력만이 난무해진 사회생활에 대해서는. 신앙을 떡칠한 채 하루도 제대로 살지 못하는 슬픔에 대해서는.


머리로 아는 게 아니라 피부로 아는 느낌은 눈물을 동반했다.


이 모든 걸 묵묵히 견뎌야 하는 거다. 나의 무너져 내림의 끝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비참함은 사실 인생의 진짜 얼굴이 아닐까. 그 모습조차 난 사랑할 수 있을까. 삶을 산다는 건 그 비참함을 껴안는 일이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어떤 방식으로 살아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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