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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uin Oct 03. 2024

VI - 뭄바이, 숨은 그림자 그리고 고아, 아잔타

사람들과 만남을 통해 여행의 재미를 느낀다.

뭄바이로 가는 기차에서, 새로운 만남

18시간에 걸친 기나긴 기차 여행. 운 좋게 2층 침대칸을 배정받았다. 기차가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앞자리에 앉은 청년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들은 동양에서 온 나를 신기해하며 연신 질문을 던졌다. "왜 인도에 왔어요? 어디가 가장 좋았어요?"라며 궁금해했다. 대부분 영어를 잘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그들의 호기심 가득한 시선이 약간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대화는 여행에 새로운 재미를 줬다.

기차가 뭄바이에 도착했을 때, 도시의 모습은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달랐다. 상업화된 대도시라고는 하지만, 여행자로서 매력을 느끼기엔 조금 부족했다. 사실, 나는 고아로 가는 길에 잠시 들른 것뿐이다. 뭄바이의 거리는 인구 밀집이 심각했고, 천국과 지옥이 공존하는 듯한 양극화가 눈에 띄었다. 거리의 가난한 모습은 무겁게 다가왔고, 아이들을 보며 현실의 어려움을 실감했다.

도심 중앙에 자리 잡은 숙소는 외국인 여행자들로 붐비는 1인 하우스였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교류할 기회가 많았지만, 그때까지 한국 사람은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숙소를 정한 후 가장 먼저 큰 서점에 들렀다. 여행할 때마다 도시의 서점을 찾아가는 것이 나만의 작은 즐거움이다. 서점에 가면 마음이 안정된다. 어떤 책이 좋은지 모르면서도, 묘하게 위안을 얻는다. 그러면서도 두꺼운 책들을 욕심껏 골라 가방에 넣는다. 어디를 가든 그 책들을 들고 다니며, 시간이 나면 펼쳐 읽는 그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 그날도 몇 권의 책을 샀지만, 오래전 어떤 여행에서 기억에 남았던 책 한 권을 찾을 수 없었다. 제목조차 기억나지 않아 아쉬움이 남았다.


뭄바이에서 유명한 관광지를 둘러보다 영화에 등장했던 고급호텔에 도착했다. 오래전 파키스탄 테러로 수많은 목숨이 희생된 그곳은, 인도 사람들에게 여전히 깊은 상처로 남아 있었다.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의 종교적 갈등은 테러의 원인이 되었고, 그런 이유로 대중교통이나 백화점에서 철저한 보안 검사가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매번 이동할 때마다 느끼는 그 불편함은 우리나라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낯선 경험이다.


며칠 후, 드디어 고아로 떠났다. 고아는 바다가 아름답고 "히피의 성지"로 알려져 있어 기대가 컸다. 도착한 고아의 해변은 에메랄드빛은 아니었지만, 넓고 고요했다. 해변가에 자리 잡은 숙소는 저렴하면서도 바다가 보이는 멋진 장소였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미국 여성을 만났다. 그녀는 나와 비슷한 키에 늘씬한 체형을 가졌고, 수영을 잘했다. 나는 바다 수영을 잘 못해 부럽게 바라만 봤다. 그녀와의 대화는 재미있고 편안했다. 우리는 친구처럼 이야기를 나누며 소소한 담소를 즐겼다. 처음으로 백인여성과 오랜 시간 대화를 주고받은 경험은 조금은 마음의 벽을 허문 느낌이다. 내 안에서도 대화하는데 계급이 존재했다. 고아에 와서는 크게 이동 없이 이곳 숙소에서 사람들과 얘기하는데 시간을 보냈다. 점점 여행자로서 사람들과 친해지는데 익숙해졌다.


마지막 여행지로 계획했던 바라나시로 향하는 길에서, 실수로 잘못된 기차를 타게 되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인도 사람들의 도움으로 결국 아잔타로 이동하게 되었지만, 바라나시는 결국 가보지 못하고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바라나시는 인도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이었지만, 그곳까지는 20시간이 넘는 먼 곳이다.

아잔타에 도착했을 때, 나는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지 못했다. 도착하자마자 아잔타 동굴 벽화 근처의 숙소를 정했다. 광활한 대지 위에 나 홀로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주변에는 인적이 드물어 약간의 두려움이 감돌았다. 숙소 2층 건물에는 나 혼자였다. 샤워를 하던 중 수십 마리의 도마뱀이 벽을 타고 다니는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델리에서도 본 적 없는 광경에 처음엔 놀랐지만, 그 작은 몸집이 점차 귀엽게 느껴졌다. 너무 빨라서 잡을 수도 없었다.

숙소에서 오토바이 투어를 제안받아 작은 마을을 지나 아잔타 동굴로 향했다. 거대한 불교 벽화가 눈앞에 펼쳐졌고, 그곳에서 고대 인도의 역사와 불교문화의 흔적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밤이 되어, 나를 안내한 사람이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동굴처럼 생긴 집에 그의 대가족들이 모여 집안에는 열다섯 분 정도 있었다. 나는 그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며 가까이서 그들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었다. 그들은 영어를 잘하지 못하며 웃음으로 인사만 할 뿐이었다. 기존 인도의 집과 달리 고대 원시집처럼 느껴지는 낯선 환경과 사람들 속에서 알 수 없는 긴장감이 스며들어, 마음 한편으로는 경계심을 놓지 않았다.

이 여행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지만, 그 속에서 인도의 여러 면모를 발견하고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모든 여행을 끝내고 다시 델리로 향한다.





한 달간의 혼자 떠난 여행은 나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는 여정이었다. 사람들과의 만남과 그들이 들려준 이야기 속에서, 나는 영어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씩 극복할 수 있었다. 인도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광활했고, 모든 곳을 경험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 그러나 그 짧은 기간 인도의 복잡하고 여러 면모를 조금은 알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점점 진짜 여행자로서 눈을 뜨게 된다.





왼쪽: 뭄바이 행사장에서 교수님과 사진 / 오토바이를 타고 언덕에 올라 해가지는 아잔타 동굴벽화 모습 오른쪽: 아잔타 동굴앞에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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