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오는 예의에 가는 예의 있는 법

[그렇게 나는 프리랜서가 되었다.] 열세 번째 이야기

by 레메디오스

“사진보다 별로네.”


첫 질문부터 참 강렬했다. 메이크업 숍에 들러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단장한 나와 달리, 대표라는 사람은 후줄근한 회색 티셔츠에 품이 남는 청바지를 입고 헝클어진 머리로 내 앞에 앉아 있었다. 왼손에는 내 이력서를 들고, 오른손 두 번째 손가락으로는 페이지 가장자리를 접었다 폈다 하며 내 이력을 훑어보고 있었다.


아나운서 지망생으로 산 지 수개월째, 몇 건의 인터넷 방송 리포터 활동 외 이렇다 할 경력이 없던 나는 슬슬 초조해지고 있었다. 스피치 학원 동기들 중 몇몇이 뉴스 전문 채널 앵커 합격, 종편 채널 기상캐스터 선정 등 눈에 띄는 성과를 내기 시작하자 조바심이 났다. 공중파나 종편 방송 공채는 선발 인원이 적어 경쟁률이 어마어마한데다 온갖 베테랑 방송인들이 몰리는 탓에 쉽사리 합격에 대한 청사진이 그려지지 않았다. 제대로 될 경력이라도 있어야 1차 서류 심사에서 심사관들이 거들떠보기라도 할 텐데, 나는 지원하는 족족 연달아 고배를 마시고 있었다.


지역 케이블 방송국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뉴스 아나운서를 뽑는 자리였다. 지망생은 많지만 제대로 된 자리는 드물었던 터라, 제대로 된 방송 장비 하나 없이 스튜디오와 카메라만 덩그러니 갖춰진 곳임에도 백여 명의 지원자가 몰렸다고 했다. 나 역시 그 중 한 명이었다. 방송을 할 수만 있다면 시설이나 환경 따위 뭐가 문제란 말인가. 내가 방송인으로서 제대로 경력을 쌓을 수 있는 곳, 정해진 시간에 정기적으로 방송할 수 있는 곳이라면 그저 감지덕지였다.


아나운서 선발 시험이란 대개 카메라 테스트와 자기소개서 기반 면접으로 이루어졌다. 나는 공들여 작성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이메일로 제출하고, 면접 당일 오전까지 하루 서너 시간씩 해당 방송국의 뉴스 낭독 연습을 했다. 면접일에는 오전 6시부터 메이크업 숍에서 10만원 짜리 메이크업을 받고, 카메라 테스트가 있을 때만 입는 고급 정장을 차려입었다. 이번에는 반드시 내가 자리를 차지하리라, 어떤 질문이 나오더라도 여유롭고 영리하게 대처하리라 마음을 다잡았다.


삼십여 분 정도를 기다린 끝에, 면접을 진행하는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섰다. 4명의 면접관이 카메라 뒤에 앉아 있었다. 명패를 보니, 왼쪽에서 두 번째 앉은 중년 남성이 대표인 듯했다. 긴장을 애써 가라앉히며 카메라 테스트를 무사히 마친 후, 바로 면접이 진행되었다.


첫 질문부터 ‘외모 품평’이라니, 불쾌한 감정에 울컥했지만 마음을 다스렸다. 최근 압박 면접이 유행한다고 하지 않던가. 방송을 하려면 모름지기 그 어떤 돌발 상황에도 의연히 대처할 수 있어야 하는 법. “사진이 잘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라며 웃으며 대답하고는, 다음 질문을 기다렸다.


“몸무게가 얼마나 나가요?”

“키가 170이라고? 비율이 별론데, 어깨가 좁은 건가 얼굴이 큰 건가?”

“이마가 좁아 보이는데 앞머리 한 번 올려 봐요.”

“피부가 좋진 않네. 요즘 지망생들 관리 안하나?”


계속되는 외모 비하 공격에 정신이 혼미해지고 입술이 씰룩거렸다. 눈앞이 흐려져 면접관들의 눈을 마주보기가 힘들었다. 행상 바닥에 놓인 마른 생선들이 된 기분이었다. 발가벗겨진 채 입맛에 맞게 난도질되는 것을 무력하게 견딜 수밖에 없었다. 면접이고 나발이고, 카메라라도 집어던져줄까 내적 갈등이 일어나던 중 겨우 면접이 끝났다. 스튜디오를 나와 방송국 정문을 통과하고 나자, 왈칵 눈물이 터졌다.


다시는 이런 취급 받지 않도록, 이를 악물고 성공하고 말리라. 그렇게 재차 다짐했다.


그날 면접에 대한 기억은 애써 지워버리고 여느 날처럼 스터디에 매진하던 때, 방송국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내가 합격했다는 소식이었다. 면접을 그 따위로 해 놓고 합격이라니 의구심이 들면서도, 바라고 바라던 방송 앵커로서의 한걸음이라는 생각에 설레 복잡하고 미묘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다음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 안개가 걷히며 나의 방향이 명확해졌다 .


“근데, 방송 투입 전까지 살은 좀 더 빼시는 게 좋겠대요. 특히 얼굴이랑 팔이요. 솔직히 더 예쁜 사람 많아서 OO 씨 뽑는 거 반대 많았는데, 그래도 우리가 가능성을 보고 채용하기로 한 거예요.”


채용 단계에서부터 이런 무례함으로 점철된 태도라니. 게다가 ‘너는 너무도 부족하지만 우리가 관대하여 너 따위를 품어주도록 하겠노라’라는 시혜적인 태도로 해석되는 것은, 과연 나의 피해의식이란 말인가. 아무리 꿈꾸던 직업으로의 진출이라지만, 첫 단추부터 이래서야 ‘제대로’ 일할 수 있을 것인가.


“아무래도 말씀대로 제가 많이 부족해서, 저는 가지 않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길게 말할 것도 없었다. 단번에 거절 의사를 피력한 후 끊어버린 전화에 이후로도 두세 번 더 연락이 왔지만 깔끔히 무시했다. 간절하다고 한들, 무례함을 참으며 숙이고 들어갈 필요는 없을 것이므로.


이후로도 수십 번의 면접을 보았다. 이 경우만큼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뭣 같은’ 경우는 얼마든지 있었다. 반대로 구직자를 존중해주는 면접관들도 많았는데, 이 경우에는 떨어져도 불쾌하지 않았다. 그저 좋은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음이 아쉬웠을 뿐이다.


온 세상의 구인자들이 유념했으면 한다. 선택이란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권한이 아니라는 것을. 자신들이 사람을 ‘고르는’ 입장이라고 해서 모든 결례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구직자에게도 마치 은혜처럼 내려지는 선택을 거절할 권리가 있을뿐더러, 어찌 알겠는가. 이 길고 긴 인생, 10년 후 아니 1년 후에라도 갑을 관계란 얼마든지 역전될 수 있는 것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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