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일이 없으면 초조한 나, 비정상인가요?
[그렇게 나는 프리랜서가 되었다.] 열두 번째 이야기
내 첫 직장은 졸업한 대학원의 단기 프로젝트 보조 연구원이었다. 여성어사전 편찬 사업이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로 계약 기간은 6개월이었다.
재직 중 나는 상당히 불안정한 상태였는데, 그것은 일에 대한 열정이나 업무의 난이도와는 별개의 문제였다. 계약 기간이 끝난 후 재계약이 되지 않으면 다시 ‘백수’가 되고 말리라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이는 매사 업무에 대한 과다한 헌신과, 그에 비례하는 미숙함을 드러내는 결과로 나타나곤 했다. 결국 나는 계약 기간이 끝난 후 재계약에 실패한 채 나오고 말았다.
그 이후 나는 언론사 시험을 준비하면서 리포터, 주간지 프리랜서 기자 등 ‘비정규직’의 형태로 일을 이어나갔다. 업무 특성상 항상 수입은 불안정했는데, 극단적으로 일거리가 없는 달은 통장 잔고가 만원 밑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생계에 위협을 느끼자 꿈이고 뭐고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소설 교열•교정 업무부터 블로그 원고 작성, 학원 강의까지 도맡아야 했는데, 한 가지 일만 하기에는 급여가 너무 적어 생활이 어렵기 때문이었다. 주말, 휴일까지 가리지 않고 이것저것 하던 중, 결국은 야간 강의 중 수강생들 앞에서 쓰러지고 마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응급실에서 말하기를 철분 부족으로 빈혈이 극심한 수준이며, 피로의 누적으로 최대한 많은 시간 휴식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아픈 것보다도 더 비참했던 것은, 나의 부재(不在)는 빈자리로서의 가치조차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단 한 번의 고려나 협의도 없이, 바로 계약 해지를 통보받았으니 말이다. 일의 종류를 막론하고 눈 깜짝할 사이 대체되고 마는, 딱 그 정도의 부속품. 당시 내 존재가 가진 가치는 고작 그 정도였다.
어느 지방 방송국의 아나운서로 취업하기 전까지 약 1년여 간의 저임금의 열혈 프리랜서 생활 끝에 깨달은 것이 있다. 이 사회에서 내가 제대로 먹고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내 일이 있어야 한다는 것, 내가 속한 이 사회가, 나를 필요로 하도록 해야만 한다는 것. 즉 나를 지켜줄 수 있는 것은 그 무엇도 아닌 나의 능력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지금까지도 일이라는 데 꽤나 강박적인 태도를 취한다. 어떤 직장을 가든, 퇴직 후 재취업까지 1개월 이상 공백기를 가진 적이 없다. 퇴사하기로 마음 먹은 직후 바로 이직을 준비하며, 바로 이직할 곳이 정해진 이후에야 퇴사 절차를 협의하는 수순이다. 퇴직 후 휴식 시간을 가질 여유도 없이 바로 다른 업무에 투입되는 상황이지만, 몸은 힘들지언정 마음은 편하다. ‘이곳이 아니어도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확인에 대한 안도감 때문이다.
이는 구인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인데, 각종 취업사이트에 내 이력서를 올려놓으면 신경이 곤두선다. 내 이력서가 아무에게도 눈길을 끌지 못한 채 수많은 구직자들의 흐름에 휩쓸려 가버리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다. 각종 헤드헌팅 기업들이나 구인처에서 내 이력서를 열람하거나 연락처를 확인했다는 알람이 오기 시작하고서야 기분이 좀 나아진다. 모르는 번호에서 전화가 걸려오면 면접 제의일까 싶어 설레기도 한다.
나도 안다. 얼굴도 모르는 불특정인의 인정을 갈구하는 것은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그러나 나는 본디 인정 욕구가 비대한 사람이다. 내 가족이나 친구들만으로는 모자라다. 사회의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특히 수익 창출이라는 분야에서 ‘없어서는 안 될’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다. 나사처럼 금세 소모되고 대체되어도 좋을 인력이라고,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남편은 날더러 ‘매사 전투 모드인 사람’이라며 혀를 차고는 한다. ‘병사들도 전투 안 할 때는 창칼 내려놓고 늘어져 쉰다’, ‘기계도 날마다 켜 놓으면 금세 고장난다’며 휴식을 적극 권장하지만, 일주일만 일이 없어도 초조한 내게는 ‘쇠귀에 경 읽기’일 따름이다. 오죽하면 “노는 게 제일 좋아.”라며, 딸아이에게 들려주는 뽀로로 동요 가사를 따라 부르면서 나를 힐끗거리지만 어쩔 것인가. 옛 시트콤의 유행 대사처럼, ‘청년 실업이 30만에 육박하는 이 때 미래에 대한 철저한 준비 없이’ 어떻게 살아남겠느냐는 말이다. 이게 다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생존 전략인 것을.
일분일초 치열한 ‘노동에의 갈망’ 속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수년 전 어느 용한 점집에서 본 사주팔자다. 다른 건 몰라도 ‘일복 하나만큼은 타고났다’는 것인데, 내가 일 하기 싫어 이리저리 달아나도 기어코 어떤 일이건 끈덕지게 내게 달라붙을 팔자라는 것이다. 혹자는 ‘이게 웬 저주인가’라며 절규할지언정, 나에게는 위안이 되는 말이다. 아무렴 백수 될 일은 없겠구나-하고.
요즘 SNS상으로 ‘적게 일하고 많이 버시오’라는 말이 유행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아직은 ‘많이 일하고 많이 벌고’ 싶다. 30대 중후반을 지나는 이 나이에 열정이 조금은 사그라들 법도 한데, 나는 아직은 많이, 더 많이 바빴으면 좋겠다. 나의 쓸모를 인정받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나라는 인간이란, 어쩌면 현대 경쟁사회가 낳은 생존지향형 인간 1, 2쯤 되는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