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어떤 인간관계는 때때로 폭력이 된다.

[그렇게 나는 프리랜서가 되었다.] 열네 번째 이야기

by 레메디오스

나는 ‘곁을 주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전 직장의 상사가 말하기를, 나는 사무실 내 다른 이들에게 보이지 않는 벽을 세워두고, 항상 스스로를 방어하는 사람이었다.


정확한 평가였다. 나는 직장에서 나를 꼭꼭 싸매어 감추기를 택했다. 나의 가정생활, 친구 관계, 주말 일정, 그밖에 개인적인 고민거리를 회사 동료들과 나눌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일로서 엮인 사람들끼리는 일에 관한 대화라면 적당하지 않은가. 업무를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한 소재들, 예를 들어 거래처 담당자에 대한 정보, 거래처와의 미팅에서 있었던 일, 새로운 고객의 평판, 고객 응대 시 주의할 점 등 얼마나 무궁무진한가.


그러나 직장 동료들의 의견은 달랐던 모양이다. 그들은 나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다가와줄 것을 주문했다. 직장 동료들이야말로 가족보다도 물리적으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존재들 아니냐는 게 그들의 논리였다. 가족만큼의 신뢰와 친구만큼의 친밀감을 그들과도 가져주기를 희망했다. 점심식사도 항상 함께 하기를 바랐으며, 시시콜콜한 데까지 내 개인사를 모두 말해주기를 원했다. 실제로 그들은 육아는 물론 부부 간 다툼까지 팀 내에서 공유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개인사 폐쇄주의’라는 나의 태도는 ‘조직문화를 해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런 요구가 처음은 아니었다. 바로 이전 직장은 더욱 강하게 옥죄었다. 전국구 컨설팅 회사였던 그곳은 광역 단위별로 지사를 두었는데, 지사 하나마다 직원 5~6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업무 특성상 주말, 휴일 근무도 빈번했기에 대개 일주일 내내 좁디좁은 사무실에서 동고동락했는데, 그러다보니 ‘관계’에 대한 강제적 친밀감 형성 요구는 더욱 강압적이었다.


하나하나 떠오르는 것들 중 몇 가지만 꺼내보자면, 이랬다. 먼저 점심식사는 물론 저녁식사까지도-정식 퇴근 시간이 6시였는데도-직장 동료들과 함께해야 했다. 연차를 쓴 이를 제외하고, 누구 한 사람이 외근으로 자리를 비운 경우 올 때까지 기다려 함께 식사하도록 했다. 가뜩이나 말을 많이 하는 일인지라 식사만이라도 좀 조용히, 마음 편하게 하고팠던 내게는 참 고달픈 나날이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휴일에 일하는 친구가 내 퇴근 시간에 맞춰 회사로 찾아왔다. 다른 지역에서까지 와 준 친구를 그냥 보낼 수 없어 동료들에게 오늘은 사정이 있어 먼저 퇴근해야겠다고 말하고, 친구와 저녁 식사를 했다. 그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팀장이 나를 불렀다. 그리고 엄한 표정으로 훈계했다.


“친구랑은 휴일에도 만날 수 있잖아요? 근무할 때는 사무실 사람들한테 집중합시다. 이런 식이면 팀 분위기 흐릴 수 있어요.”


지금에서야 이 얼마나 부조리한 일인지 항변할 거리는 차고 넘치지만, 그 당시에는 나 홀로 모난 돌이었으며, 외딴 섬이었다. 다수가 옳다고 확신하는 일에 나만 반기를 들기에 나는 어렸으며, 미숙했고, 겁이 많았다. 그저 고개를 조아리며 친구와 맞는 시간이 좀처럼 없었다고,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거라며 양해를 부탁드릴 뿐이었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당시 서울 본사에서는 매 분기마다 전국 모든 지사들이 참여하는 1박 2일 워크숍을 진행했다. 내가 속한 지사에서도 반드시 참석해야 했는데, 첫날 정오까지만 해당 장소에 집결하면 되는지라 KTX와 버스 예약을 알아보고 있었다. 워크숍 전날 늦은 밤까지 야근이 예정되어 있던 터라, 다음날 도로에서나마 편히 눈 좀 붙이자는 생각도 있었다. 자동차로 편도 5시간, KTX로 3시간여의 거리니 수면과 휴식시간으로 충분하리라 싶었다.


그러나 다른 직원들은 생각이 달랐던 듯했다. 다음날 오전 6시에 회사에서 모여 같은 차로 이동하자는 ‘명령’이 떨어졌다. 심지어 운전은 나와 다른 직원 두 명이 번갈아가며 하라는 것이었다. 황망한 기분에 급속히 스트레스가 머리 끝까지 올라왔으나,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하는 탓에 그저 발개진 얼굴 뒤로 말을 꾹 삼켜야만 했다. 결국 나는 야근 후 고작 3시간 정도 얕은 잠을 자고 나서, 다음날 3시간 가까이 고속도로 운전을 해야만 했다. 뒷자리에 앉아 곯아떨어진 상사들을 간간히 흘겨보며.


약 10여 년 간, 각종 회사에서 ‘정규직’이라는 계약 아래 ‘공동체 일원으로서의 의무’를 강요받으며 나는 생각했다. 아무래도 ‘정규직 계약서’에는 공동생활에 대해 내가 모르는 암묵적 조항이 있어 끊임없이 나를 옥죄는 것이 틀림이 없다고. 그리고 결심했다. 내가 만일 정규직 생활을 청산하고 나 홀로 프리랜서로 일어설 수만 있다면, 나의 본성을 거슬러 봉인해두었던 ‘개인주의’를 마음껏 펼쳐보리라고. 말 그대로 ‘프리(free)’라는 단어의 의미를 몸소 실현시키겠다고 말이다.


‘프리랜서’란 결국 업무라는 영역 아래 고용주에게 종속될 수밖에 없다는 면에서 완전히 ‘프리’할 수는 없음을 몸소 겪는 중이지만, 적어도 ‘인간관계’에 한해서만큼은 나의 결심을 실천하는 중이다. 계약상 정해진 업무를 충실하고 성실히 수행한 후, 퇴근 시간이 되면 뒤도 안 보고 퇴근할 수 있는 삶이란 얼마나 아름다운가. ‘정규직’이라는 이름 아래 묶여왔던 각종 워크숍, 회식, 식사들에 묶이지 않는 생활이란, 이 얼마나 크고도 자유로운 해방감인지.

공동체에 속한 이상 일정 기준을 충족시키는 범위 내에서 공동생활을 영위해야 함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전 직장 동료들의 주장처럼,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다 보면 저절로 친분이 생겨 새로운 우정을 형성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의 관계란 무릇 자연스러운 감정의 결과물이어야 한다. 같은 사무실에 있다는 이유로, 같은 업무를 한다는 이유로 강압적이고 무조건적인 가족주의를 요구하는 일부 공동체의 폭압에 나는 회의적이다. 또한 결사반대이다.


직장 동료란 업무를 통해 소속 회사의 비전을 함께 이루어나가기 위한 것. 또한 서로의 업무 역량 향상을 위해 상부상조하는 관계로서 있는 것이 가장 적당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대다수 직장인들의 스트레스 사유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인간관계라는 것, 이것은 일을 넘어 개인사까지 ‘선을 넘는’ 이들이 만들어낸 비극이 아닐까.


그리하여 나는 바로 내 앞에, 굵고 진한 선을 그어가며 오늘도 외친다.


여기까지. 우리 제발 ‘편하게’ 일 좀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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