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나는 프리랜서가 되었다.] 마지막 이야기
교복을 입고 하루 중 절반 이상을 교실에 갇혀있던 시절, 대학에만 가면 모든 것이 명확해지리라 믿었다. 대학에서 공부하며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하던 시절에는 취업만 하면 모든 것이 말끔해지리라 생각했다. 나의 미래를 위한 시간을 좀 더 벌어보겠다며 대학원에 갔을 때는, 나의 인생에 대한 고민이 더 이상은 없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방황에 열중한다.
취업 경쟁에서 살아남아 어엿한 직장에서 정규직의 반열에 처음 올랐을 때, 나는 이제야 내가 안정의 ‘궤도’에 올라섰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생각보다도 훨씬 더 사회의, 정확히는 조직이라는 규율의 부적응자였다. 상사에 대한 당연한 복종, 군대문화도 아니면서 군대문화를 따르는 회사 조직문화, 가족도 아니면서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구속을 시도하는 수많은 관습들은 나를 지치게 했고, 점점 더 구석에 숨게 했다.
한 번, 그리고 두 번, 세 번 나라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줄 수 있는 조직을 갈구하고 찾아다니다가 겨우 정착해가자마자, 이번에는 엄마로서의 역할과 사회인으로서의 역할 둘 중 하나를 양자택일하라는 압박에 시달렸다. 둘 중 하나를 포기하라니, 엄마가 되었다고 하여 왜 나의 ‘일’을 포기해야 한단 말인가. 내가 일을 택한다고 하여 왜 ‘나쁜 엄마’라는 비난을 두려워해야 하는가.
딜레마의 가운데에서 버티고 버티다가, 나는 결국 타협했다. 둘 다 놓치지 않는 대신, 둘 다 ‘적당히’ 잡고 있기로. 프리랜서라면 이것이 가능하리라 기대했다. 조금은 자유롭게, 조금은 여유롭게 일하며 내 아이와도 더욱 함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뛰어든 프리랜서의 삶이란, 안타깝게도 그리 녹록치는 않다. 나라는 브랜드는 누군가가 앞다투어 찾을 정도로 뛰어나지도, 유명하지도 않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나의 입지를 확고히 세울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어 두렵기만 하다. 이대로 아무도 찾지 않은 채 자의 아닌 타의로 주저앉아 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이기도 한다.
또한 어떤 것이라도 새로운 시작이란, 새로운 배움을 동반하는 것. ‘프리랜서가 되면 여유롭게 내 시간을 운용할 수 있을 거야’라는 예상과 달리, 매일매일 학습과 적응, 그리고 낯선 만남의 연속이다. 어쩌면 무지했던 탓으로, 나는 너무도 빨리, 너무도 고민 없이 나의 다음 걸음을 내딛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저질러 버린 일이며 퇴로는 차단되었으니 일단 나아갈 수밖에 없는 것. 살아오며 항상 그랬던 것처럼, 아주 견딜 수 없어 죽기 직전에 몰릴 때까지는 일단 나아가보기로 한다. 결국 길은 내가 만들어야 하는 것. 죽을 각오로 덤비면, 혹시 아는가.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모든 것이 명확해질지도.
그렇다.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