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회식 무용론(無用論)

[그렇게 나는 프리랜서가 되었다.] 열한 번째 이야기

by 레메디오스

먼저 묻고 싶다.


여러분, 회식을 왜 하는 건가요?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하여, 먼저 ‘회식’이란 무엇인가 알아보기로 한다. 포털사이트 검색을 통해 알아본 회식(會食)의 정의란 다음과 같다. ‘여러 사람이 모여 음식을 함께 먹는 행위 또는 모임’. 사전적 의미만 본다면 회식이란 단어는 즐겁고, 자유로운 행위임에 틀림없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즐겁게 담소를 나누며,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것이 좋지 않을 리 없기 때문이다.


정말, 그런가?


대다수 직장에서 매월 1회 이상은 부서 단위로 회식이 이루어진다. 이른바 팀원들 간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함이다.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를 맛있는 음식과 술의 힘을 빌려 해소하고, 일과 중에는 어려운 사담을 나누며 팀원들 간의 결속을 다지는 의식이다. 매우 즐겁고 의미 있는 자리여야 하건만, ‘회식’이라는 단어를 듣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단전부터 정수리까지 치솟는 것은, 과연 나뿐일까.


10년여의 직장생활을 통해 내 안에 정립된 회식의 개념이란, ‘강제 노역’의 개념과 동일선상에 있다. 먼저 자유의 박탈이다. 회식 당일 누릴 수 있었던 최소 네 가지 자유-정시 퇴근할 자유, 좋아하는 저녁 식사를 할 자유, 드러누워 편히 쉴 자유, 거절의 자유-를 빼앗기는 것이다.


아침 일찍 출근하여 근무 시간이 마무리될 때까지 점심식사도 제대로 못 하고, 화장실도 제 때 못 간 채 일했건만, 퇴근 후 달콤한 휴식은 허락되지 않는다. 피곤함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덕지덕지 붙이고, 동료들과 굴비마냥 얽혀 회식 자리에 도착하면 고기니 술이니 가득 차려진 상을 마주한다. 오늘은 속이 안 좋아 죽이나 샐러드를 먹고 싶어도 눈앞에 보이는 고기 외에는 선택권이 없으며, 술을 마시지 힘든 몸 상태라도 부장님, 과장님의 건배사 후 한 잔은 응당 ‘원샷’으로 맞이해야 한다. 온종일 몸을 조였던 정장을 벗고 다 늘어진 티셔츠와 반바지로 갈아입은 후 쿠션에 얼굴을 파묻은 채 아무 방송이나 보고 싶건만, 현실은 취해도 정자세로 상급자 말씀에 경청 모드이다.


회식이 무르익으면 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알코올 마냥, 불안감이 스멀스멀 커진다. 술만 마시면 할 말 못 할 말 다 꺼내놓는 사람들 덕분이다. 술이 무슨 ‘자백 유도제’라도 되는지, 평소 맨정신으로는 감히 늘어놓지 못하던 말들이 안주 찌꺼기들과 함께 여기저기 흐트러지고 분위기는 롤러코스터를 탄다. 어색함을 타파해보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춰도 이날 생긴 크고 작은 감정의 골은 남는다.


인사불성으로 취한 사람, 구석에 앉아 다 식은 안주를 젓가락으로 툭툭 건드리며 이리저리 눈치만 보는 사람, 어느 새 사라진 누군가까지, 대개는 새벽까지 이어지는 아비규환이 장이 대강 마무리되면 남는 건 숙취와 피로뿐이다. 쓰린 속을 부여잡고 업무 자료를 보며 키보드를 두드리다 주위를 둘러보면, 다들 감겨오는 눈을 끔벅끔벅 하며 정신력의 사투를 벌이고 있다. 도입부터 결말까지, 무엇 하나 엉망 아닌 것이 없다.


그렇게까지 불편하다면 애당초 거절하면 되지 않느냐고? ‘피치 못할 사정’으로 업무는 쉴 수 있지만, 곧 죽을 지경이라도 회식을 빠지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 대한민국 직장의 불문율 아니던가 말이다.


혹여 성공적으로 회식에서 탈출한다고 해도, ‘분위기를 망치는 사람’이라는-내 참여 여부가 회식 분위기를 망칠 수 있을 만큼, 내가 그리 큰 존재였는지는 의문이지만-꼬리표를 달기 십상이다. 혹여 인사고과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끼칠까, 상사가 나에게 불만을 갖지 않을까, 나에 대한 상사의 평가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각종 ‘을의 불안’을 가득 체감하며 씩씩하게 귀가해도 마음이 불편하다. 내가 없는 회식 자리에서 무슨 말이 오고 갈지 신경 쓰이기 시작한다. 술기운을 빌려 속마음을 털어놓는 이들이, 나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이리 저리 썰어댈까 불안하다. 이래서야, ‘회식’이라는 두 글자 따위에 내 영혼마저 저당 잡힌 기분이다.


그렇기에 회식이란 내게 너무도 강력한 스트레스 요인이었다. 매월 회식 날짜가 가까워질 때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과중한 업무를 마무리한 후 맞는 회식은 너무도 무겁고 피로했으며, 상대적으로 일이 적은 날은 내 남은 기운들을 회식에나 쏟아야 하나 싶은 생각에 억울하기만 했다. 회사나 소속 부서에 나쁜 일이라도 생기면, 가뜩이나 우울한 날 상사를 위시한 각종 불만과 성토들에 둘러싸여야 했다. 내게는 악몽 그 자체였을 따름이다.


프리랜서가 된 지금, 나는 적어도 그것으로부터 자유롭다. 조직 내 위계질서로부터의 해방감이며 퇴근 후 내가 누릴 자유는 그 자체로서 온전하다는 안도감이다. 내 시간과 감정에 대한 주도권을 돌려받았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손에 꼽을 만한 장점이 아닐 수 없다.


방송, 온라인 등에서 ‘회식’이라는 개념과 사례를 접할 때면 생각하곤 한다. 회식에서 즐거울 자 과연 누구인가. 회식을 통해 얻는 것이 진정 무엇인가. 시간도, 돈도, 어쩌면 감정도 모두 버려야 하는 게임, 승자도 수익도 없는 이 판을 통해 이 나라 기업, 기관들은 왜 이리 집착하는가. 내게는 영원히 아리송할 수수께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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