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나는 프리랜서가 되었다.] 열 번째 이야기
매일 밤, 나는 딸아이를 내 품에 꼭 안아 재운다.
아빠나 어린이집 선생님 곁에서는 바닥에 눕기만 하면 금세 잠드는 아이가, 내 곁에서 잘 때는 유독 품에 파고들며 투정을 부리고는 한다. 나는 그게 참 좋다. 아이가 나에게 의지하는 그 몸짓이 좋다. 품에 안긴 아이 특유의 살 내음이 좋다. 내 왼쪽 가슴에 살짝 얹은 아이의 작은 손이 좋다. 새근새근 들려오는 아이의 숨소리가 좋다. 아이와 나 사이에만 존재하는 이 교감의 순간이 참으로 황홀하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회사에 복직했을 당시, 내 퇴근 시간은 7시였다. 출퇴근 시간이 편도 1시간 30여 분에 육박하므로, 8시 30분이 넘어서야 겨우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당시 첫 돌도 맞지 못한 내 아이는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품에 안겨, 졸린 눈을 비벼가며 나를 기다리곤 했다. 말도, 생각도 아직 명확하지 않은 그 아이에게도 엄마의 존재는 너무도 그리웠나보다.
“아가, 안녕? 엄마 왔어.”
반갑게 다가서는 나를 향해 두 팔을 벌리며 바동거리는 아이를 품에 꼭 껴안으면, 아이는 절대 놓지 않겠다는 듯 내 옷깃을 두 손으로 꼭 붙잡았다. 그 모습이 참 애틋하고 예뻤다. 한편으로는 안도감도 들었다. 하루 고작 2시간도 채 마주하기 힘든 우리 두 사람, 그럼에도 탯줄로 이어져왔던 우리의 교감은 계속되고 있다는 것에 대하여. 미안하기도 했다. 회사에 가느라, 다른 어머니들처럼 오랜 시간 있어주지 못하는 데 대하여. 그래서였으리라. 나는 매일 밤, 내 아이를 내 품에 꼭 안아 재웠다. 내 아이에 대한 일종의 속죄 의식인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1년 간, 성장의 각 단계들을 완수했다는 지표들은 여러 가지 형태들로 나타난다. 뒤집기, 옹알이, 기어 다니기, 스스로 서기까지, 아이의 키가 자라고 점점 더 무거워지는 순간순간마다 새롭고 경이롭다. 모든 시간들을 함께하며 아이의 모든 성장들을 지켜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워킹맘의 삶을 선택한 내게 이는 포기해야만 하는 영역이다.
딸아이는 생후 8개월부터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너무 이른 시기라 걱정했건만 아이는 다행스럽게도 놀라운 적응력을 보였다. 첫날엔 엄마에게 떨어지지 않으려 엄마 옷을 꽉 붙잡고 굵은 눈물방울을 떨어뜨리던 녀석이, 다음 날부터 어린이집 선생님들과 절친 모드를 뽐냈던 것이다. 인간관계 형성과 친밀감 과시라니, 나에게는 없는 내 아이의 첫 재능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어린이집에서는 매일 오후 3~4시경 아이의 사진, 영상을 전송했다. 사진과 영상 속 아이는 눈을 힘껏 휘며 환하게 웃기도 하고, 데시벨을 한계까지 끌어올린 돌고래 소리를 내며 즐거움을 마음껏 분출하기도 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모습을 보며 안심하면서도, 때로는 못난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엄마인 나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내 아이와 공유하는 이들에 대하여 느끼는 질투였다. 내 아이가 하루 종일 즐겁게 웃기를 바라면서도, 엄마를 찾으며 울기를 바랐다. 내 아이가 선생님들, 다른 아가 친구들과 즐겁게 놀기를 바라면서도, 엄마와 함께할 때만큼은 아니었으면 했다.
엄마로서 일을 한다는 것은 내 아이와의 시간을 대부분 포기해야 한다는 것. 그로부터 파생되는 모든 것들은 내 선택에 따르는 대가들임을 알면서도, 나는 상반된 감정들의 충돌에 시달렸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애를 보면, 낯설게 보일 때가 있어.”
매일 최소 10시간 이상 회사에 매여 분투한 후에야 만날 수 있는 딸의 존재는 일상의 가장 큰 활력이지만, 아주 가끔은 쓸쓸함이기도 하더라. 그렇게 남편은 말했다. 불과 어제까지도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는 것밖에 할 줄 모르던 아이가 집에 오니 몸을 뒤집고 있을 때, 낯선 목소리로 옹알이를 하고 있을 때, ‘엄마, 엄마’ 하며 첫 말을 하고 있을 때, 문을 열고 들어서니 기어오며 맞아줄 때, 부모로서 대견함과 첫 순간을 함께해주지 못한 데 대한 미안함, 아쉬움 등 여러 가지 감정들이 교차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첫 걸음마도, 처음으로 숟가락을 들고 밥을 먹는 순간들도 나는 함께하기 힘들 걸 아니까, 더 안타깝지.”
일을 포기하지 않는 한 앞으로도 놓칠 수밖에 없을 내 아이와의 시간들. 일하는 양육자들끼리의 쓸쓸한 공감대이다. 용감하고 씩씩하게 워킹맘의 길을 선택했으면서도, 더 늦기 전에 나를 온전히 아이에게만 던져야 하는가 고민의 순간은 수시로 찾아온다. 여러 가지 기회비용들에 대한 저울질, 아직도 내겐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고난이도의 인생 과제이다. 해답을 찾을 날이 과연 올 것인가. 아직은 요원하기만 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