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맞벌이 부부의 가사분담 눈치 싸움

[그렇게 나는 프리랜서가 되었다.] 아홉 번째 이야기

by 레메디오스

인정하겠다. 내가 일을 벌이는 사람이다.

특히 집안일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공동 양육과 맞벌이의 굴레에 신음하는 부부라면 응당 가사(家事) 분배도 정확히 반반이어야 하건만, 문득 깨달아보니 실상은 내가 80% 이상을 전담하고 있다. 한 주 간의 살림을 뒤돌아보니 청소부터 빨래, 설거지까지 내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더라는 것이다.


엄연히 말하자면, 분배가 아니라 자율의 문제이다. 나는 청소, 남편은 요리, 설거지와 빨래 평일 담당자는 나, 주말 담당자는 남편으로 명목상의 분배는 그럭저럭 공정하다. 그러나 앞에서도 서술했듯, 내가 일을 벌이는 사람인 것이 문제다. 무엇 하나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 가족이 사는 아파트는 30평이 조금 넘는다. 신축 아파트인지라 구조가 넓게 빠진데다, 방이 4개, 화장실이 2개로 구성되어 있다. 이 집안 구석구석을 살피며 물걸레질을 하는 것이 내 하루 일과 중 하나다. 누구 하나 강요한 사람이 없는데도 말이다.


나도 사람인지라 일을 하고 집에 오면 피곤하여 손가락 하나 까딱 하기 싫어진다. 보일러 온기가 감도는 따뜻한 방바닥에 엎드려 TV를 틀어놓고 멍하니 쉬고 싶기도, 거실 소파에 누워 DVD를 보다가 잠들고 싶기도 하다. 돌이 좀 지난 아가의 육아를 하다 보니 혼자만의 휴식은 이제 요원해졌다지만, 요지는 휴식에 대한 갈망은 나도 어느 현대인 못지않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단 10분이라도 휴식을 즐겨보자 눕는 순간, 바닥 위에 살포시 자리 잡은 생활 먼지들, 부스러기들과 눈을 마주친다. 물티슈를 뽑아들고 보이는 족족 닦아내고 쓸어내다 보면 어느새 온 집안을 청소하고 있다. 달콤한 휴식 따위 잊은 채 다시 노동의 현장으로 뛰어들고 마는 것이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온 집안의 먼지들을 다 제거하고 나면, 그 다음은 설거지와 빨래다. 아, 집안일이란.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맞벌이 부부의 가사 분담에 대하여, 책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가사 분담을 하려면 엉덩이부터 무겁게 하라고 조언합니다.” 요컨대, 집안일은 결국 ‘못 참고 일어나는 사람이 하게 된다’는 것인데, 내 경우와도 정확히 일치한다. 싱크대에 설거지거리가 있으면 바로 수세미에 세제를 묻히는 나와 달리 남편은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바닥에 먼지가 있으면 나는 몸이 먼저 나가는 반면, 남편은 보이는 내색조차 없다. ‘매번 먼저 일어나는 게 반복되면 가사 분담은 물 건너가는 것’이라는데, 우리 부부 역시 그런가 싶어 모골이 송연하다.


남편에게 분담된 업무는 남편이 할 때까지 기다리고, 집안일의 총량은 줄여야 한다는데 나에게는 이게 너무나도 어렵다. 아침에 사용한 그릇과 수저들이 늦은 오후까지 싱크대에 그대로 놓여있으면 이걸 도대체 언제 씻겠다는 건지 싶어 초조해지고, 세탁이 끝난 후 세탁기 안에 물기 젖은 채로 두세 시간 째 방치되어 있는 빨래를 보고 있자면, 도대체 저걸 언제 널겠다는 건지 싶어 천불이 난다. 가만히 손 놓고 있으면 내가 다 한다는 걸 알기에, 일부러 저렇게 느긋한가 싶어 울컥하기도 한다.


집안일의 총량, 특히 청소의 부담을 줄이고자 집안 청결 상태에 조금 더 관대해지려고 해도 결국 실패다. 하루 종일 두 손과 발로 온 집안을 헤집으며 기어 다니는 한 살배기 내 딸 때문이다. 대충 청소했다가 혹여 딸아이가 더러운 것을 손에 쥐고 눈을 비비거나 먹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에 결국 ‘열심히’ 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 수면 시간도 모자란 주제에 새벽 5시에 일어나 혼자 거실 바닥을 닦거나, 모두가 잠든 새벽 두세 시까지 서재 청소를 하거나.


이쯤 되면 ‘총체적 난국’이다.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집안일이란 놈의 타고난 속성도 문제고, 남편의 느긋함도 문제고, 그 중에서도 내 성격이 가장 문제다. 집안 청결 지키려다가 내 성격이 오염될 지경이다. 짜증과 신경질도 크게 늘어나는 중이다. 회사에서 치이는 것도 모자라 집안에서까지 ‘스스로에게’ 치이고 있자니, 번아웃 증후군으로 곧 이성 유지 퓨즈가 나가버릴지도 모른다 싶다. 조치가 필요하다, 진심으로.


그래도 죽으라는 법은 없나보다. 점점 더 죽상이 되어가는 내 눈치만 보던 남편이, 평일임에도 설거지를 본인이 하겠다고 자처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의 나였다면 “괜찮아요. 내가 하는 게 나아요.”라며 사양했겠지만, 이번에는 감사히 제안을 수락한다. 이 글을 쓰는 현재 시간은 오후 8시를 넘기고 있지만, 남편은 아직 부엌으로 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나저러나, 나도 싱크대에 쌓인 그릇들과 젖병들 따위 신경 쓰지 않기로 한다. 내 열정과 고집의 장렬한 최후이며, 바람직한 항복이다. 남편의 엉덩이가 언제쯤 소파 위를 떠나려는지 힐끔힐끔 보며, 집안일 절반 분배의 현실화를 다시 한 번 다짐하는 중이다. 부인의 음모를 꿈에도 모를 남편은, TV 토크쇼를 보며 웃느라 여념이 없다.

keyword
이전 08화8화. Personal Branding을 생각하다